전영웅 새론의원 부원장

지난 8월, 서울의 어느 대형병원 로비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발표한 ‘문재인 케어’의 내용을 접한 뒤 개인적으로는 무척 허탈했다. 뭐랄까, 예상되었던 진부한 느낌 때문이었달까?

정권은 바뀌었지만, 어째 의료정책만큼은 이전 정권 하에서 우려했던 내용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다. 단지, 추진속도만 조금 빨라진 느낌이었다. 국가 복지의 한 축인 의료제도를 국민들에 더 많은 혜택이 되도록 조정한다는 것이 절대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의료제도의 중심에서 활동하는 의사의 입장에서 답답하고 착잡한 기분이 드는 것은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2017년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63.4%로 OECD 평균인 78% 수준에 비해 낮은 편이다. 문재인 케어는 미용성형 분야를 제외한 전 의료영역의 비급여 항목을 획기적으로 줄여 건강보험 보장률을 OECD 평균에 가깝게 올리겠다는 정책이다. 사실 여기까지만 보면 누구나 두 손 들고 환영할 만한 정책이다.

하지만, 정책은 공공영역에 속하나 실제 영역은 자유경쟁이나 다름없는 의료시장에서 활동하는 의사들은 우려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의료는 저수가 정책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용역으로 분석한 우리나라의 의료수가는 원가의 73% 수준이다. 말하자면, 운영을 할수록 적자만 쌓여 망할 수밖에 없는 사업을 의사들이 떠안는 구조다. 그 손실을 비급여 진료비로 충당하고 대형병원의 경우는 의료외적 영역인 식대나 상급병실 사용료 등으로 적자를 충당한다.

대표적 비급여 진료과목인 성형시술이 성행하는 것과 '병원 적자의 주범'으로 내몰린 이국종 교수의 처지는 이 나라의 의료현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다. 대한민국 의료체계의 근원적인 문제는 이런 구조에 기인한다.

이와 같은 병폐의 뿌리는 매우 깊다. 1977년 실질적인 의료보험 제도가 실시될 때, 주로 약국에서 이루어지던 일차 진료를 병원이나 의원으로 유도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 그 과정에서 부족한 재정을 우선적으로 해결하고자 당시의 독재정부는 의사들에게 저수가 정책을 강요했다. 나중에 원가 이상의 수가를 보장해주는 조건으로 말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대한민국은 보편적 원가 수준의 의료수가를 보장지 않고 있다. 이것이 의사들의 고질적인 불만이었고, 역대 정부들은 그런 의사들의 불만을 애써 억누르고 감추어 왔다. 그런 와중에 문재인 정부는 의료종사자들과의 어떠한 협의도 없이 갑작스레 ‘문재인 케어’를 발표했다. 앞서 말한 의료인들의 불만에 대한 대책이나 의사들을 위한 배려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결국 2000년도 의약분업 사태 이후로 가장 큰 불만이 터져 나오는 사태에 이른 것이다. 

여기까지가 문재인 케어에 대해 의사들이 반발하는 이유다. 비유하자면 국가의 정책이라고 짜장면을 원가 이하로 팔 수 밖에 없어서 탕수육에 가격 좀 붙여 팔며 근근히 운영하던 식당이, 이제는 국가가 탕수육도 싸게 팔라고 아무런 상의 없이 정책부터 발표해버리면 식당 주인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최근 의협에서 국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내놓는 ‘세금폭탄, 재정파탄’이나 ‘미래세대의 부를 미리 쓰는 무리수’ 등등의 구호들은 여기서는 논외로 한다. 정책을 어떻게 펼쳐 가느냐에 따라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현재 의료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입장에서, 병원의 운영을 걱정하며 환자에게 비급여 항목을 선택하게 하고 싶지 않다. 또는 환자에게 정말 필요한 처치나 처방임에도 불구하고 비급여 항목인 관계로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두고 ‘돈만 아는 의사’라느니 ‘돌팔이’니 하는 불필요한 비난을 듣고 싶지도 않다. 환자가 임의로 요구하는 치료나 처방을 두고 원칙과는 거리가 있는 동의를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현재의 의료현실에서는 모두가 피할 수도 없고 당당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내가 문재인 케어에 반대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이러한 답답한 의료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아주 작은 희망조차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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