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허상수/ 고려대 대학원 졸업 사회학 박사,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 역임, 성공회대 교수 역임 현재 한국사회과학연구회 이사장, 제주4·3 제70주년기념사업범국민위원회 공동대표, 주권자전국회의 공동대표

지난 10월 17일은 송요찬 제9연대장이 통행금지를 위반하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총살에 처하겠다는 포고령을 발표한지 꼭 69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제주 해안에서 5킬로미터 밖으로 나가면 절대 안된다는 무시무시한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제주섬의 모든 중산간 마을 주민들은 하루아침에 이동의 자유와 사람을 만날 권리를 빼앗겼다.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되고 정부가 수립된 지 불과 두 달밖에 안되었고, 어떤 계엄령도 내려지지 않은 시점이었다. 물론 아직 계엄법도 제정되지 않은 때였다.

2개월 뒤 미 육군준장 로버츠 미군사고문단장은 이범석 국무총리와 육군참모총장에게 연대장의 지휘능력을 거듭 칭찬하고, 대통령 성명을 통해 널리 알리라고 권고하였다. 미군사고문단은 처음부터 모든 군사 작전권을 행사함으로써 신생 대한민국 정부와 국방부, 육군 최고 지휘부를 장악하고 있었다고 볼 대목이다. 불난 집에 불을 끄려고 나타나서 그 집을 차지한 꼴이었다.

그리고 지금부터 꼭 70년전 3월 1일 오후 미군정 산하 육지경찰은 3·1독립선언 제28주년 기념식을 거행하고 나온 행렬을 구경하던 사람들을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이날 미군정 산하 경찰의 무차별 총격으로 대낮에 관덕정 앞 광장대로에서 6명이 죽고 8명이 부상당했다. 관덕정학살이었다. 이때부터 제주섬에서 민간인학살 광풍이 몰아치는 대비극이 시작되었다.

미국은 태평양전쟁 직후부터 소련과 함께 한반도를 분할점령하고 지배했다. 그들은 하루아침에 민족을 분단했다. 뿐만 아니라 미군정은 통일독립국가 수립을 열망하던 한국인들의 꿈과 희망을 총칼로 억압했다. 미군정은 1947년 3월 관덕정학살사건 이후 진상조사와 사과보다는 제주도민들을 불온시하고, 모든 진보인사들과 민주주의세력을 압살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미군정 최고위 간부였던 조병옥 경무부장은 제주도민들은 ‘비국민’으로 취급하는 망언을 주저하지 않았다. 당시 남한 단독선거를 반대했던 흐름은 제주섬 안팎에서 전국적으로 벌어졌었다.

그래서 미군정 3년간 자행된 정책실패와 오류에 대해 당시부터 많은 논란이 제기되고 문제시 되었다. 리처드 로빈슨과 그란트 미드, 조지 매큔, 그레고리 헨더슨 등이 그런 미국인들이었다. 존 메릴과 브루스 커밍스도 터놓고 미군정의 실책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정부와 미군 당국은 70년 동안 철저하게 제주도민학살에 대해 침묵하고, 문제제기를 묵살하였다. 너무나 깊은 상처를 받은 피해자들인 제주도민들에게 학살의 모든 진실들을 잊으라고, 망각을 강요하는 셈이다.

한국군의 중산간 지역 출입금지령을 발동했던 그날 제주4·3희생자유족회와 제주4·3제70주년 기념사업회, 제주4·3제70주년범국민위원회에 참여한 전국 178개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은 광화문광장에서 제주도민학살에 대한 미합중국의 중대한 인권침해 책임을 묻고자하는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우리는 앞으로 미국 독립선언과 수정헌법이 명시하고 있는 인간 존엄의 보편성과 인류애, 자유와 정의, 인권과 평등을 중시하는 핵심가치와 민주주의 정신에 따라 미군정이 저지른 인도에 반하는 범죄행위, 제주도민 학살 책임을 따져볼 것이다. 이를 위해 한미 양국정부의 공동조사를 요구하고 제주도민학살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묻기 위하여 국제사회와 국제연합의 책임 있는 조치도 촉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서명 작업을 벌여나갈 것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모든 지역과 세대, 종교와 계층을 상대로 국내외 서명을 벌여 나가게 될 것이다. 그래서 1차로 2018년 3월까지, 2차로 내년 10월말까지 서명작업을 계속해 나갈 계획이다. 그래서 미합중국 정부와 의회에 직접 제출하여 제주도민학살의 중대한 책임을 미합중국에 묻을 것이다. 진실과 정의는 허위와 불의보다 강력한 위력임을 증명할 것이다. 더 이상 반공주의나 패배주의, 피해의식이라는 동굴에 갇혀있지 않을 것이다. 어떤 장애물과 난관이 가로막더라도 이를 극복하고 더 이상 억울하고 슬픈 이야기를 남기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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