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김봉현/ 16회 외무고시 합격, 전 호주대사, 국립외교원 겸임교수, 제주대학교 초빙교수

필자가 주일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하였던 1988년 무렵은 일본 경제가 피크였다. 미국에서는 하버드 대학 에즈라 보겔 교수의 저서 ‘Japan as No. 1’ 이라는 책을 교재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 당시 일본의 경제적 부상은 미국에게조차 위협적일 정도였다. 일본의 도요타 자동차, 소니 워크맨, TV 등 전자 및 가전제품들은 미국과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Japan as No. 1’이겠는가?

그 이후 일본을 알고자 하는 것은 필자의 과제가 되었다. 일본 근무를 마치고 뉴욕에서 근무하면서 일본인들과 서양인들, 그리고 한국인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비교해 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지난 2016년 5월 주 호주 대사를 마치고 한국에 도착한 후에 지난 30여 년 간의 이러한 관찰을 바탕으로 한국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하였다. 지하철과 버스 애용자가 되었다.

한국인들에게는 다른 나라에서 발견할 수 없는 많은 장점들이 있다. 지하철과 버스에서 어르신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광경을 많이 목격하게 된다. 우리에게는 자연스럽고 흔한 일이지만, 외국인들에게는 매우 특이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한국인들의 이러한 행동에 대해서 부럽다고 한다. 사회 전체에서 가족과 같이 훈훈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오죽하면 식당에서 종업원들에 대한 호칭이 ‘이모’, ‘언니’ 혹은 낯선 어르신들에게 ‘아버님’이라고 할까.

그리고 한국하면, 단합된 힘을 떠 올리기도 한다. 1997년 외환 위기에서 보여준 한국인들의 단합은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지는 2010년 그리스 외환위기 시에 그리스인들이 보여준 파괴적인 행동에 대하여, “한국을 보라”고 충고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힘은 지난 해에 평화적인 ‘촛불집회’로 발휘되었고, 또다시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이 뿐만이 아니다. 한국인들은 진취적이며 과감한 행동으로 새로운 도전을 거듭하여 산업을 발전시켜 나갔다. 섬유산업에서 중화학, 조선 등 중후 장대 제조업에서 IT 산업, 반도체, 휴대폰 등 기술집약 산업으로 계속 발전시켜 나갔다. 이는 우리에게 큰 자부심을 심어 준다.

또한 한국의 K-Pop, 영화, 드라마, 클래식 음악 등 문화적인 힘, 박세리, 박인비, 박성현을 비롯한 여자 골프 선수들, 김연아 선수 등 세계적인 수준의 스포츠 활동에 대하여 외국인들은 도대체 이러한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필자에게 묻곤 하였다. 필자가 호주 대사로 재직 시에는 연설기회가 있을 때마다 세계 무대에서 선전하는 한국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언급하곤 하였다.

한국인들의 장점을 한 가지 더 보태보면, 한국인들의 해외봉사를 들 수 있다. 해외에서 봉사하는 한국인들의 숫자가 미국인들 다음으로 많다고 한다. 이 점도 경이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이 점에 대해서도 가끔 연설에서 인용하곤 하였다.

필자는 이러한 한국의 성취가 한국만의 성취인지 아니면 다른 나라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일반적인 현상들인지 생각해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교육 중시 문화, 그리고 매뉴얼을 뛰어 넘는 자유분방함과 과감함을 그 성공요인으로 들고 있다. 물론, 거기에 한국인들의 개인적인 우수성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다른 나라들 중에도 우리와 비슷한 요건들을 갖춘 나라들이 있다면 우리와 같은 성취를 할 수 있을 것인가? 필자는 베트남이 그러할 것으로 생각하였다. 베트남도 교육열이 대단하며 개인들도 우수한 편에 속한다. 호주에서도 베트남 학생들이 우수한 성적들을 거두고 있다. 그러나 한국과 비교하면 무언가 부족한 점이 있어 보인다.

우리는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나고 폐허 속에서 분발하여 30년이 경과된 1984년경에 우리 고유의 자동차 ‘포니’를 미국에 수출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베트남은 1975년 전쟁이 끝난 후 30년이 지난 2005년에도 우리와 같은 고유 브랜드를 갖춘 제조업을 발전시키지 못하였다. 그리고 전쟁이 종료된 지 4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국민소득이 2200불에 불과하다.

세계에서 유례없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고 있는 우리에게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비극이 닥쳐왔다. 그 이후에도 지하철 스크린 도어에 끼여 승객이 사망하거나 수리하던 직원이 사망하는 안전사고가 몇 차례 있었고, 금년 12월 7일에는 낚시 배가 급유선과 충돌하여 15명이 사망하였다. 급기야 지난 12월 21일 제천에서는 화재사고가 발생하여 29명의 인명이 희생당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한국에서 끝없이 일어나고 있는가?

어느 한 일본 경제학자가 일본 언론에 한국인들은 ‘숨 쉬듯이 거짓말을 한다’고 칼럼을 게재하였고, 이 칼럼이 한국 언론에도 소개 되었다. 관광지에서 값을 속이는 일들은 다반사이며, 음식물 규정을 속이고, 소방관련 규정을 어기고, 안전 규정들을 지키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지하철에서 백팩을 손에 들거나 선반에 올려놓으라고 끝없이 반복하여 주의를 주는데도, 이를 지키는 사람을 거의 본 일이 없다. 버스에 앉아 있다가 백팩을 등에 맨 사람이 돌다가 내 얼굴을 치기도 하였다. 공원에는 담배 피지 말라, 소란피지 말라, 애완동물 간수 잘 해라 등 플랭카드가 곳곳에 걸려있다.

동네 헬스장에는 신발을 신발장에 넣으라고 아무리 경고문을 붙여도 막무가내다. 수건은 사용 후에 반드시 통에 넣으라고 해도 바닥에 널부러져 있다. 뷔페 식당에서 음식물을 남기지 말라고 그렇게 써 붙여도 너무 많이 남긴다. 쓰레기, 담배 공초를 아무 곳에나 버리는 것도 자주 목격된다. 구세군 자선남비의 짝퉁도 등장했다고 한다.

일본은 어떤가? 일본인들은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을 신조로 하고 있다. 따라서 공동의 약속으로 만들어진 모든 매뉴얼과 규정은 철저하게 지킨다. 2011년 4월 14일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에서 보여준 일본인들의 질서의식은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다. 어느 학교 운동장에 막대기로 아무렇게나 그린 줄을 따라서 질서 정연하게 서서 물 배급을 기다리는 일본인들을 서구 언론이 상공에서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은 서구 언론에 크게 게재되었고, ‘인류지성의 극치를 보고 있다’는 표제를 달았다.

어디서나 규정을 지키지 않고 반칙하면 이익을 보게 되어 있다. 일본도 그렇고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이 죄수의 딜레마가 남겨준 결론이다. 그러나 이 딜레마에 빠지면 결국 공동체는 붕괴하고 만다는 것이 그 교훈이다.

누구나 공동체에서 반칙을 함으로써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일차원적인 이익 추구이다. 반면에 규칙을 지키는 것이 당장은 불편하고 비용이 들어가더라도 사회 공동체가 정한 규정을 준수하게 되면 결국 내 자신과 사회전체에게 이익이 된다. 이를 이차원적인 이익이라고 한다.

일본과 서구사회에서는 바로 이차원적인 이익을 추구하며, 이것이 일차원적인 이익보다 결국 훨씬 크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이것을 실행하려는 의지가 있다. 이것이 선진사회의 시민의식이다.

우리가 일차원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세계 속에서 살고 있는 한, 우리는 되풀이 되는 비극을 막지 못할 것이다. 약삭빠르게 규정을 어기고 반칙함으로써 이익을 챙기거나 다른 사람보다 먼저 가려는 꼼수들이 없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선진국으로 진입하지 못한다.

이 꼼수들을 없애려면 강한 처벌규정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나은 방법은 ‘내가 먼저’를 실행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탓할 필요가 없다. ‘나 혼자만 지키자’를 습관화 하면 된다. ‘다른 사람들이 어겨도 나는 지킨다’하는 자기만의 원칙과 고집이 우리 사회를 이차원적인 사회로 탈바꿈하게 만들 것이다. ‘나 혼자 지킨다’는 어렵지 않다. 습관을 들이면 너무나 편안해 진다. 습관은 제2의 천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편안하게 규정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철학자 칸트가 말한 도덕법칙이다.

한국에서 지하철을 이용할 때마다 경이롭게 생각되는 것은 에스컬레이터에서 모든 사람들이 오른쪽 한 줄로 서 있는 것이다. 왼쪽 줄은 급한 사람들을 위하여 비워 주는 것이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키지도 않았을 텐데 모두 약속한 듯이 그렇게 행동한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지하철 경로석이 비어 있어도 젊은 사람들이 앉지 않는다. 이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내가 먼저’, 아니 ‘나 혼자만’ 질서와 규정을 지키려고 마음을 먹으면 된다. 자리 양보하기, 금모으기와 ‘촛불집회’에서 우리는 그 가능성을 증명해 보였다. 가능성이 현실이 되는 새해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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