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양길현 교수/제주대학교 윤리교육과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고 제주담론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다.

특별자치란 무엇을 뜻하는 걸까? 자치란 말 그대로 ‘자기 일을 스스로 다스리는 것’을 뜻한다. 민주주의의 고전적 정의에 따르면, 자치는 ‘by the people’(주민에 의한)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특별을 붙이면 그 자치는 어떤 것이 되는 걸까? 다시 말해서, 제주도에 주어진 특별한 자치란 무엇일까?

한 해가 저물어가는 엊그제 송년회 모임에서, 슬쩍 지나가는 대화중에 문득 떠오른 근본적인 의문이다. 제주가 특별자치를 한다면서, 사실상 시-군 기초자치단체를 없앤 것이 과연 어떤 의미로 특별자치인지, 새삼스럽지도 않은 의문이 그것이다. 아마도 선한 의도가 반드시 선한 결과를 갖다 주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 가운데 하나가, 바로 특별자치를 한다면서 기초자치를 없앤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기초자치단체를 없앤다는 건, 누가 보아도 자치가 아니다. 그런데도 제주도민들은 투표로 이를 확정지었다. 무엇을 기대해서일까? 설마 정부가, 그것도 참여정부의 이름으로 도민들을 사기치지야 않겠지 하는 순박한 믿음에서, 제주도민들은 2005년 7월 ‘고도의 자치권 부여’라는 특별자치의 취지에 공감하여 찬성표를 던졌다.

그 이후 제주 특별자치는 도민에게는 기대와 좌절의 대명사였다. 도지사는 신나고, 제주도청과 제주도의회는 몸집을 대폭 키우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도민이 안 보인다. 제주의 공공 영역은 이름도 거창한 제주특별자치도청과 제주특별자치도의회로 단순화-협애화-공룡화-독불화 되었다. 애초에 목표로 삼았던 효율화마저도 크게 의문시된다. 이게 지난 10년에 걸친 특별자치의 내면이다.

1년 전 쯤인 2016년 12월-2017년 1월 때로 기억된다. 제주도 행정체계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를 놓고, 백가쟁명이 한 창일 때이다. 잘하면 2018년에는 기초자치가 부활하여 지난 10년과는 다른 방식으로 특별자치의 새 출발을 은근히 기대하고 바라던 때였다. 도민들의 열기도 뜨거웠고, 언론도 한껏 고무된 때인 것으로 기억된다.

2006년 7월 1월 이후 11년이 지나는 동안, 제주도민들은 현행의 ‘자치권 없는 행정시’ 체제에 큰 불만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제주 MBC가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가 그렇게 나왔다. 시장과 시의원 모두 직선제로 뽑아야 한다는 의견이 47%이고, 시장만 직선하는 게 24.2%이다. 현행 행정시 체제에 대한 지지는 17.3%에 불과했다.

그 이후 어느덧 1년이 지나고 있지만, 현행 행정시 체제에 대한 도민들의 불만이 크게 해소되었을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런데도 2018년 6월 제주도민들 10명 중 7명 정도는 이렇게 별로 내켜하지 않는 현행 행정시 체제를 존속시키기 위해 투표장에 가야 한다. 이게 제주의 특별한 자치의 민낯이다. 그러니 자치권 없는 제주행정시-서귀포행정시에 대해 불만을 토하는 게, 송년회에서 만났던 필자의 지인들만은 아닐 것이다.

이 시점에서 또 하나의 의문이 있다. 도민 대다수가 ‘제주특별자치식 행정체계’를 선호하지 않는 데에도, 제주의 정치권은 무사안일로 지내도 되는 것일까? 지방선거가 5개월밖에 남아있지 않은 데에도, 누가 하나 제주도민의 특별한 자치를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고 나서는 정치인이 안 보인다. 왜 그럴까?

설마 그렇지는 않겠지 생각하면서도, 혹 제주의 정치인들에게 있어 특별자치란 도민에 의한 특별자치가 아니라 바로 선출된 대표자인 자신들에 의한 특별자치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제주에 특별한 자치란 ‘by the people’이 아니라 ‘by the elected’(당선인에 의한) 민주주의라는 것. 그것이 제주 정치인들의 속마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선거에서의 유리함만을 생각하면서 이당 저당으로 옮겨 다니는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만약 그렇다면, 큰 문제다. 제주 특별 자치라는 게 다른 지역과는 달리 제주도민에게 특별하게 스스로 다스리도록 하기 위해서 무언가 기회를 제공하고 제도적 뒷받침을 해 주겠다는 게 아니었다는 것인가. 그게 아니고 제주 도지사와 도의원들에게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제주를 다스리도록 해 주겠다는 것이었다는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제주특별자치라는 건 대사기극이 아닐 수 없다.

만약 그런 게 아니라면, 문재인 정부와 제주도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특히 2018년 6월 지방선거에 출마하고자 하는 도지사-도의원 후보들은 이 문제에 대해 무언가 자신의 입장을 피력해야 할 것이다. 공천 여부나 선거에서의 유리함만을 생각하면서 이당 저당으로 옮겨 다니는 일이 시급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도록 언론과 제주도민 모두 나서야 할 때이다. 도민 10명 중 7명이나 반대하는 현행의 ‘자치권 없는 행정시’ 체계를 언제까지 끌고 가려는 것이지, 이에 대한 정치권의 답을 요구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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