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이 계속됐던 제주영상위원회(이하 제주영상위)가 결국 해산됐다. 지난 29일 제주영상위 이사들은 제주영상위 임시총회에서 표결을 통해 영상위의 해산을 결의했다. 2명의 반대가 있었지만 20명 중 17명이 찬성표를 던져 사실상 대부분의 이사들이 제주영상위의 해산에 손을 든 것이다.

▲지난 29일 열린 제주영상위원회 임시총회의 모습. 이날 총회에서 제주영상위원회 해산이 결의됐다.@제주투데이

‘사단법인 제주영상위 해산 반대대책위(이하 반대위)’에 속했던 제주영상․영화계 인사들도 사실상 해산 반대의사를 상당부분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제주영상위원회는 해산 절차를 거쳐 내년에 설립되는 ‘비영리 재단법인 제주영상·문화산업진흥원(제주문화콘텐츠진흥원)’으로 흡수·통합된다.

◎문화콘텐츠가 아닌 영상·문화산업진흥원으로

앞으로 제주영상위의 업무는 제주영상․문화산업진흥원에서 인수받아 운영하게 된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이 진흥원에 2018년에만 79억9천만원의 예산을 투입해 경영의 효율성을 높이고 민간자원과 역량을 최대한 활용하는 민간협력기구로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도는 제주문화콘텐츠진흥원을 설립하려던 계획을 변경해 명칭을 변경하고 제주영상위원회를 진흥원 내부에 설치하는 정관을 마련키로 했다. 초기 사업도 영상 및 영화산업에 집중할 것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이는 반대위와 전국 영화계의 반발에 따라 의견을 수렴한 결과라는 것이 도의 설명이다.

반대위에 속했던 제주독립영화협회는 도에게 ▲영상위의 전문성 등 영상산업발전을 위한 방안으로 진흥원의 명칭 변경, ▲진흥원 임원 선임 시 영상전문관계자 포함, ▲지역영화인들과의 정기적 간담회 통한 소통강화, ▲진흥원 보유시설 사용 및 개방시간 확대 등 탄력적 이용 방안 마련, ▲진흥원 내 영상미디어센터 예술극장의 리모델링 등을 요구안으로 제시했다.

이에 도는 이같은 요구안을 전면 수용하기로 결정했으며 이외에도 진흥원장을 영상․문화산업 전문가로 명시하고 인력강화와 교육확대, 100억원 규모의 실내영상스튜디오 설계 등도 약속했다.

이에 제주영상위 많은 이사들은 “이 같은 도의 노력이라면 어느 정도 믿고 갈 수 있다고 본다”며 찬성 의사를 던지기로 결정했다.

▲지난 12월 11일 반대대책위 주최로 열린 한국영화계 인사들의 설명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김홍두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체육대외협력국장(오른쪽)@제주투데이

◎정해져있던 일정과 급격한 계획 수정 등 '밀어붙이기'는 아쉬워

하지만 이같이 도가 제주영상․영화계의 의견을 전면적으로 수용한 데에는 올해를 넘기면 안 된다는 초조함도 한몫했다. 따라서 이 문제를 공론화해 제대로 지지와 이해를 얻어내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지난 29일 열렸던 임시총회에서도 제주영상․영화계 이사들은 마지막까지 도의 이같은 문제점을 지적했다. 제주씨네아일랜드 이사장인 현충열 이사는 “절차가 허술하고 부위원장을 뽑지 않는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한번도 고쳐지지 않았다”며 “차라리 진흥원과 제주영상위가 따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영화감독인 김무은 이사도 “도가 일방적으로 해산을 정해놓고 이사들은 여기에 휘둘리기만 했다”며 “그동안 반론을 제기했지만 도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해명만 했지 반대 의견을 동의한 적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지난 29일 열린 제주영상위원회 임시총회의 모습@제주투데이

빨리 제주영상위를 해산시켜야 하는 목적 때문에 명칭을 하루아침에 바꾸고, 일정을 몰아세웠다는 비판이었다.

애초 도는 지난 5월 정부로부터 제주문화콘텐츠진흥원 설립을 승인받은 이후, 제주영상위 해산을 추진하고자 했다. 하지만 지난 7월 제주영상위 이사진들이 바뀌고, 도에서도 문화체육대외협력국 인사들도 교체되면서 제주영상위 해산은 그동안 이사회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채 붕 떠버리고 말았다.

결국 제주영상위 이사진들은 임명과 동시에 제주영상위가 해산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도의 급박한 해산 추진에 적잖게 당황했다. 한 이사는 “만약 내가 제주영상위를 해산하는데 동의해야 하는 것을 알았다면 이사진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홍두 도 문화체육대외협력국장도 “지난 7월 업무를 인수인계받을 때 이사진이 변경되는 과정에서 제대로 이야기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해 영화계의 반발이 있을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며 “미리 이같은 사실을 확인하지 못한 점은 도의 잘못”이라고 인정하기도 했다.

이에 김 국장은 일정을 미루는 한이 있더라도 충분히 이해를 구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도 실무진 사이에서는 “내년을 넘기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못박고 있었다. 내년 예산에 제주영상위 예산이 잡혀있지 않아 사실상 제주영상위 활동이 중단되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제주영상위 직원들의 업무승계나 생존권도 위협받게 되며, 진흥원 설립으로 내년 업무를 계획했던 다른 분야의 업종들도 모두 타격을 받게 된다.

실제 이같은 문제를 우려해 제주영상위 직원들이 진흥원 설립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으며, 제주ICT기업협회 역시 기자회견을 열 준비까지 했다고 막판에 취소했다. 제주ICT기업협회의 한 관계자는 “영상․영화계의 의견만 들어서 일정을 미루고 명칭을 바꾸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는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제주영상위원회가 위치한 제주영상미디어센터의 모습@제주투데이

◎제주영상과 문화의 미래상 찾는 일 시급

사실 제주영상위는 제주영화·영상계를 위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일단 지난 14년간 예산이 19억원에 그쳤다는 점은 영상위 활동에 대한 기대감이 적었다는 의미다. 또한 그동안 운영된 이사진 역시 제주영상계의 전문성을 대표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대개 예술계 인사거나 제주에서 거의 활동을 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제주출신이라는 이유로 이사직을 맡게 된 경우다.

아울러 제주영상위를 맡고 있는 직원들의 전문성도 부족하며, 지난 3년간 실제로 제주영상위를 이끌어갈 부위원장 없이 운영됐다는 점도 큰 문제였다.

지난 29일 열린 제주영상위 총회에서 제주 영상계 이사들도 이같은 문제점을 지적했다. 한국영화감독협회 이사장인 양윤호 이사는 “그동안 제주영상위는 이사회의 동의도 없이 행정편의에 따라 정관을 마음대로 수정하는 모습을 봐왔다”며 “그동안 역할이나 비전이 명확하지 않았던 점은 돌아봐야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번에 도는 제주영상․영화계의 의견을 수렴한다는 명목으로 제주문화콘텐츠진흥원의 명칭을 갑자기 바꿔버렸다. 문화콘텐츠는 영화와 애니메이션, 만화, 음악, 게임, 전시, 축제, 테마파크 등 문화의 모든 영역을 아우르는 융복합적 개념이다. 즉 이번 제주영상․문화산업진흥원의 설립은 그 개념과 사업분야의 축소를 뜻한다. 산업이나 예산의 측면이 아니라 문화라는 본질과 철학에 대한 부재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따라서 도가 앞으로 제주영상 및 영화계와 함께 제대로 된 비전과 방향성을 공유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양윤호 이사도 "영상․문화산업진흥원이라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진행되는 것”이라며 "순수영상예술과 영상산업이 함께 갈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반드시 제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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