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이유근/ 한국병원과 한마음병원 원장을 역임하시고 지역사회 각종 봉사단체에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현재는 아라요양병원 원장으로 도내 노인들의 의료복지를 위해 애쓰고 있다.

얼마 전 제민일보에 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강주영 교수님의 “이른바 ‘걸린 죄’ 유감”이란 글이 실렸다. 그 내용인즉, “다양한 죄목에도 불구하고 시쳇말로 대한민국에는 오직 하나의 죄만 있다고 하니 그 죄는 ‘걸린 죄’라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죄의 경중과 피해의 크고 작음을 떠나 우리나라에는 무슨 죄를 짓더라도 재수가 없어 걸리는 것이지 걸리지만 않으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정말 법학자다운 신랄한 비판이다.

필자의 생각도 같다. 주위를 둘러보면 법을 위반하는 경우를 하루에도 수십 번은 본다. 특히 교통법규 위반은 법을 지키고자 애쓰는 필자라고 예외가 아니다. 만일 우리나라 운전자들이 모두 법을 철저히 지킨다면 어떤 사태가 올까? 아마 교통마비가 초래될 것이다. 오죽하면 교통법규 지키기가 버스 회사 노조의 투쟁 수단이 될까! 강 교수님도 지적하셨지만 고위공직자들의 청문회를 보다 보면, 과태료를 낼 정도가 아니라 벌금이나 금고 이상의 형을 살만한 법률 위반을 하지 않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정도이니, 다시 말해서 무엇 하랴.

의료계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병-의원에서 미국이나 영국에서처럼 환자를 보다가는 병원이 마비되고 얼마 안 가 모두 망할 것이다. 대학병원들이 3대 부조리(특진비, 비급여, 상급병실 차액)와 장례식장 운영으로 그나마 적자를 줄이고 있는데, 문재인케어에서 특진비와 비급여를 없애겠다고 하니 의료계가 발칵 뒤집히고 있다. 이런 부조리를 없애는 것은 옳은 것이다. 그러나 그런 부조리를 없애기 전에 그런 부조리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환경을 먼저 고쳐야 하는 것이 순리다. 즉, 부조리를 저지르지 않고도 병원을 운영할 수 있도록 의료수가를 현실화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의료수가는 국가도 인정하다시피 원가의 80% 수준이다. 즉, 100원짜리 물건을 80원에 팔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다른 방법으로 20원을 보충하여야 하는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듯이, 병원이 망한 다음에 수가를 현실화 하려고 하면 결국 의료대란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개인 의원이야 정 안되면 예전처럼 청진기 하나 가지고 하여도 될지 모르지만, 병원은 짓는데 1년 이상 걸리고, 설사 망한 병원을 인수하여 개원하려고 하여도 몇 개월을 족히 걸리니, 그 기간 어떻게 참고 지낼 수 있을까?

국민 입장에서는 의료비가 쌀수록 좋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을 우리는 곱씹어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쌀값을 한 가마에 10만원 한다면 농부들이 농사짓는 것을 포기할 것이다. 그리 되면 어떻게 될까? 국민들이 굶든가, 아니면 외국에서 쌀을 수입해 와야 할 것이다. 이런 사태를 국가가 견딜 수 있을까? 우리나라 의사들이 진료를 못 하겠다고 하면 후진국의 의사들을 데려다가 진료하라고 해야 할까?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어떤 물품을 구매하든가 용역을 제공 받으려면 그에 합당한 값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값은 결국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수요가 적으면 값이 내려가고, 공급이 적으면 값이 올라간다. 쌀의 수요가 전보다 줄어드니 다른 물가에 비해 쌀값이 올라가지 않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국민 의료비를 줄이는 방법도 있다. 의사 수를 줄여서 3분 진료를 2분으로 줄이고 환자들의 병원 출입도 줄이면, 국민 총 의료비도 줄일 수 있다. 문제는 국민들이 그런 불편함을 감내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국가가 하여야 할 일을 개인들이 하고 있는데, 그 개인들에게 손해를 감수하라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법은 지키라고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킬 수 없는 법을 만들든가 지키지 않아도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면, 그런 법은 고쳐야 한다. 일본의 한 잡지에 “한국인은 숨 쉬듯이 거짓말을 한다”라는 글이 실렸다고 한다. 다시는 이런 부끄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이제부터라도 지킬 수 있는 법을 만들고, 지키지 않으면 꼭 처벌 받는 풍토를 조성하도록 우리 모두 노력하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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