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변종헌/ 제주대학교 교육대학 교수

제주를 드러내고 보여주는 이미지나 브랜드는 다양하다. 구체적 사물에서부터 추상적 개념에 이르기까지 제주를 떠올리게 하고 제주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세계평화의 섬은 대표적인 제주의 브랜드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세계평화의 섬의 이른바 브랜드 가치에 대한 도정의 인식이나 도 내외의 이해는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제주도정은 제주의 100년을 내다보면서 제주의 미래 가치를 청정과 공존으로 제시하였다.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청정도시 그리고 모두가 행복한 공존도시가 제주가 지향해야할 미래의 모습이라는 시각이다. 평화가 보이지 않는다.

제주 세계평화의 섬 프로젝트의 출발은 매우 독특한 배경을 지니고 있다. 중앙 정부에 의해 평화 도시로 지정되었다는 것이 그렇고, 무엇보다도 그 과정이 제주 사회의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노력을 통해 가능했다는 점이 그렇다.

이렇듯 세계평화의 섬 지정은 제주의 역사 그리고 제주 지역과 평화 관념 사이의 독특한 관계를 전제하지 않고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 점에서 평화는 매우 중요한 제주의 브랜드 자산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제주가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된 지 10여년이 지나고 있지만 여전히 세계평화의 섬은 제주의 현실 그리고 제주도민의 일상과는 유리된 것처럼 느껴진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평화 관념이 지닌 추상성이 그 원인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다. 세계평화의 섬의 함의에 대한 도 내외의 다양한 시각은 차치하더라도, 평화라는 말 자체가 지닌 추상적인 성격이 세계평화의 섬 프로젝트의 도민 친화성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평화는 종교적 차원에서부터 일상 수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정의될 뿐만 아니라 그 의미를 포섭하거나 파악하기 쉽지 않다. 이렇듯 평화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며 세계평화의 섬이 도대체 어떠한 모습인가에 대한 분명하고 뚜렷한 이미지 메이킹이 쉽지 않다. 그로 인해 어쩌면 그것은 추상적 담론의 대상일 뿐 제주도민이 실감하는 현실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문제는 도민의 삶과 친화적인 일상에서의 평화를 지향하고 확산하는 것이다.

제주의 브랜드로서 평화나 세계평화의 섬의 가치를 되살리고 확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평화의 의미를 구체화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평화는 인간이 삶의 다양한 차원에서 서로 공존하며 조화를 이루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말하자면 평화는 자신과의 관계, 다른 사람과의 관계, 공동체와의 관계 그리고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공존과 조화의 모습이다.

요컨대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깨닫는 것, 나와 다른 타인과의 상호소통과 공존의 지혜를 발휘하는 것, 제주 공동체와 제주의 현안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참여와 사회적 연대를 실천하는 것, 제주 자연의 생태적 가치를 인식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구체적인 평화의 모습일 것이다. 그리고 이는 유엔에서 강조하고 있는 일상화된 평화, 평화문화와 다름이 없다.

평화문화의 창출과 확산을 위해서 중요한 것이 바로 평화교육이다. 전쟁을 피하는 일이 근본적으로 정치적인 일이라면, 평화문화를 창조하고 유지하는 것은 교육의 사명이다. 평화교육은 평화문화에 대한 이해와 내면화를 통해 관용과 상생의 생활을 일상화하고, 여러 가지 갈등과 대립 요소들을 민주적 합리적 방식과 절차에 따라 해결할 수 있는 시민으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배양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평화교육을 통해 평화문화가 확산되는 조용한 혁명이 진행될 때 비로소 제주는 동북아 그리고 전 세계인들이 함께 모여 ‘평화를 이야기하는’ 섬을 넘어 제주와 제주인의 삶과 환경이 ‘그 자체로 평화로운’ 공동체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세계평화의 섬 지정 13년을 맞이하면서 제주는 법적·제도적 차원에서 평화를 창출하기 위한 노력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제주 사회에 평화문화를 뿌리내리기 위한 실천적 노력에 보다 집중해야 한다. 그와 같은 노력이 결실을 거둘 수 있을 때 비로소 제주의 르네상스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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