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살까지 드러난 발바닥 물집부상 투혼(鬪魂)은 안타깝고 눈물겨웠다.

그러나 흐르는 땀방울은 보석처럼 빛났다. 열정은 뜨거웠고 도전 정신은 아름다웠다.

한국선수로는 최초로 테니스 메이저 대회 호주 오픈 남자 단식에서 ‘4강 신화’를 쓰고 어제(28일) 금의환향한 정현(22, 한국체대)선수 이야기다.

113년 전통의 호주 오픈은 꿈의 테니스 무대다.

프랑스 오픈, 윔불던, US오픈과 함께 세계 4대 메이저 대회로서 감히 아무나 넘볼 수 없는 선망의 영역이다.

여기에 여드름투성이 스물두 살 한국 청년 정현이가 도전 했다.

지칠 줄 모르는 그의 끈기와 투혼은 거침이 없었다.

본선 3경기 승리를 시작으로 20일에는 32강전에서 랭킹 58위 정현이

세계 랭킹 4위 즈베레프를 꺾어 16강에 진출했다.

22일에 있었던 16강전에서는 한때 세계 랭킹 1위였고 현재 14위인 세계 최강 조코비치를 만났다.

그런데도 정현은 세트스코어 3대0으로 완승해 8강 진출의 역사를 새로 썼다.

24일 8강에서는 복병으로 알려졌던 샌드그렌도 가볍게 물리쳤다. 메이저 ‘4강 신화’를 기록한 것이다.

호주오픈이 열리는 멜버른의 경기장 이름은 ‘로드 레이버 아레나(Rod Laver Arena)'다.

1960년대 호주 테니스의 살아있는 전설, ‘로드 레이버’의 이름을 딴 것이다.

로드 레이버는 호주인으로서는 최초로 메이저 4개 대회를 휩쓸어 그랜드 슬램을 이룩했다. 그것도 두 차례에 걸친 그랜드 슬램 우승이었다.

세계 테니스 역사상 유일한 기록이다.

이 전설의 주인공인 ‘로드 레이버(80)’가 정현의 8강전을 관람했다.

그러기에 여기서 정현이 승리하고 4강에 진출한 것은 그만큼 뜻 깊은 역사의 기록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26일은 세계랭킹 2위 로더 페더러와 결승 진출을 향한 한 판 승부였다.

그러나 정현은 2세트 중반 기권을 선언했다.

물집이 터져 생살이 드러날 정도로 정현의 양쪽 발바닥은 심한 부상이었다. 너덜너덜 했다.

중계 영상을 보는 이들의 가슴은 먹먹했고 뭉클했다.

16강전부터 진통제로 견디었지만 더 이상 통증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안타깝고 아쉬웠지만 기권을 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테니스의 재미있는 부분은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것”이라는 로드 레이버의 어록을 떠올린다고 해도 라켓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정현에 대한 응원과 격려는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졌지만 잘했다”, “감동적이었다”, “대단했다”. 모두가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찬사였다.

메이저 4강에 빛나는 정현의 투혼이 주는 메시지는 의미심장하다.

젊은이들에게 고난을 딛고 일어서는 도전 정신과 긍정의 힘을 보여준 것이다.

그것은 아름다운 도전이었고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20대 초반의 한국 테니스 선수가 메이저 대회 4강에 오른 것은 위대한 도전의 결과였다.

정현은 일곱 살 때부터 ‘고도근시 약시’ 판정을 받았다. 운동선수로서는 견디어내기 힘든 신체적 핸디캡이었다.

당시 “책을 읽는 것보다 초록색을 많이 볼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 의사의 조언이었다.

테니스 코트는 초록색이다. 시각 교정을 위한 것이라 해도 정현이가 테니스와 인연을 맺을 수밖에 없는 숙명이었다.

테니스에 대한 정면 도전은 불리한 여건이나 신체적 결함을 극복하기 위한 처절한 자기와의 싸움에서 출발했다.

경기 중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기 위해 안경을 수백 번 벗었다, 썼다 하면서도 라켓을 던져버릴 수는 없었다.

주저앉고 싶고 포기하고 싶었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을 터였다.

여기서 정현은 신체적 약점을 강점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초인적인 정신력을 담금질 했던 것이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좌절하지 않고 꿈을 향해 달려 나가는 도전 정신은 여기서 나왔다.

메이저 4강은 그러한 ‘땀과 눈물의 결정체’다.

그런데도 정현의 표정은 구김살이 없었다. ‘유쾌한 아우라’가 몸 전체에서 뿜어 나오는 듯 했다.

인터뷰는 꾸밈이 없었고 상쾌했다. 발랄하고 스스럼이 없었다.

“기권은 아쉬웠지만 지난 2주간 잘해 왔고 앞으로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이렇게 유쾌하고 긍정적 사고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정현 신드롬’이 확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현의 패션, 사용했거나 착용했던 라켓, 신발, 시계, 고굴 등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고 한다.

테니스에 대한 관심과 문의가 넘쳐나는 등 덩달아 ‘테니스 붐’이 일고 있다.

한국 테니스의 희망이자 간판스타 정현이 뿜어내는 신드롬이 절망적 상황에서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희망과 도전 정신을 일깨우는 기회가 되고 사회전반을 압도하는 불신과 분열과 갈등 현상에 대한 각성제가 되고 해독제로 작용할 수 있다면 이 또한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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