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강광일/ 전직 교사, 전 재외제주도민회총연합회 사무총장, 전 서울제주도민회 상근부회장

“나 이래봬도 수도꼭지 물고 자랐어.”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요즘 젊은 세대가 이 말의 뜻을 안다면 어이없어 하겠지만, 도시에서 수돗물 먹는 걸 크게 자랑하던 1960년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이 말은 충분히 말이 되었습니다. 이 말은 도시 사람들이 도시에서 자란 것을 으스대면서 시골 사람들을 면박줄 때 쓰는 말입니다.

수도 시설이 시골까지 보급되지 않던 지지리 가난했던 시절의 얘기입니다.

이 땅의 70~80%가 깡촌이던 시절, 당시 도시는 시골 젊은이들의 로망이었고, 그래서 큰 도시로 나갔다가 멸시 받으며 대체로 이런 말을 듣게 되었었죠.

또한 ‘촌놈’이라는 말이 엄청난 욕이었다는 것을 아십니까? 지금은 ‘촌놈’이라는 단어가 순진하다는 의미의 별로 큰 욕이 될 수 없는 말로 쓰이지만, 그 시절에는 상대에게 싸움을 걸 때나 쓰는 아주 모욕적인 욕으로 여겼었죠.

오늘날은 누구나 자기 고향이 시골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그러나 그 시절에는 제주도뿐만 아니라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사람 할 것 없이 모두 고향 콤플렉스가 심했습니다. 고향 사투리를 안 쓰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다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오히려 대도시가 고향인 사람들이 고향이 벽촌인 사람들을 부러워합니다. 완전히 역전된 셈이죠.

고백하건데, 당시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을 때 상대가 너무 놀랄 것 같아서 ‘제주도’라는 말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하면, 무시당할 것 같아서 고향 밝히기를 꺼려했던 못난 그 시절을 고백합니다.

시골에서는 ‘서울 가본 사람은 고사하고, 서울 가본 사람을 본 적이 없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서울에서 만난 사람이 ‘제주도 사람은 처음 만났다’라는 말을 듣던 시절을 요즘 젊은이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요?

고향 가는 길은 최소한 한 달 이상 준비해야 하고, 이틀 이상의 여정을 각오해야 하고, 일주일 이상 여독에 빠져야하는 장기간의 고향 나들이. 그야말로 그 시절 고향은 지금의 미국보다 훨씬 멀게 느껴지는 너무 먼 피안의 세계였습니다. 머나먼 타관 객지에서 만난 향인들이 서로 아끼는 마음은 각별할 수밖에 없었지요. 당연히 그 당시의 향우인들의 모임은 참으로 애틋하였습니다.

어쩌다 제주 출신을 우연히 만나면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합니다. “제주도 어디꽈?”에서부터 “아, 거기 누게 알아지쿠과?”를 거쳐 “가이 나 친구 아니꽈”로 이어지는 통성명 과정은 너무 빤한 레퍼토리이지만 그 반가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거개가 우리 제주 향우들은 한 사람만 건너면 다 아는 사이인 괸당이었으니까요.

그 시절 어떤 지역 향우인 모임에서는 묘지용 산지를 회원 공동 명의로 구입하기도 했답니다. 죽어서는 고향에 묻히고 싶지만, 고향이 너무 멀어서 고향에 묻히기는 실제로는 어려우니 현지에 묻힐 땅을 미리 마련하는 겁니다. 이런 구구절절 사연을 들어보면 가슴이 먹먹하지요.

지금이야 비행기 타고 ‘호록허민’ 한 두 시간이면 고향 갑니다. 조반 먹고 고향 가서 일 다 보고 돌아와서 저녁 식사하는 지근거리가 되었으니,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그 시절에 비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만큼 향인들끼리의 애틋함도 엷어질 수밖에 없고, 그만큼 향우인 모임의 취지도 많이 퇴색하였음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들 가슴 속에 고향은 아직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수돗물 못 먹고, 촌놈으로 태어났지만, 타향에서 여생을 보내는 신세지만, 내 고향은 아름다운 제주도임을 당당히 자랑합니다.

 

#관련태그

#N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