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저녁, 체감온도는 영하 10도 안팎이었다. 그런데도 춥지가 않았다.

2018년 2월 9일 저녁 8시에서 10시 사이,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열기는 올림픽 스타디움 한파를 몰아내고 추위를 녹여냈다.

‘혹독한 추위가 몰아 칠 것’이라던 일기예보를 무색케 했다.

개막식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내외의 반응이 그랬다.

외신들은 격찬했다. ‘모든 공연이 세밀하고 세련됐고 매우 멋졌다“고 했다.

“생동감 있고 화려한 불과 얼음의 개막식”이라는 찬사도 이어졌다.

다양한 첨단 기술을 동원한 퍼포먼스는 ‘IT강국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1218대의 드론을 띄워 밤하늘에 오륜기를 새긴 드론서커스 융합 퍼포먼스는 경이로웠다.

‘드론 공중 동시 비행 기네스 기록’을 경신한 장관이었다.

한반도기를 앞세운 남북한 선수들의 공동 입장은 하이라이트였다. 세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행동하는 평화(Peace in motion)'라는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주제에 맞는 ’평화올림픽 행진‘이었다.

“한국은 평화를 포지하지 않았다”는 외신이 나온 배경이었다.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을 인용하자면 ‘개막식 성공’은 ‘절반의 올림픽 성공’이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그동안 평창 올림픽의 성공을 기대하고 기원하면서도 ‘평창 이후’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림픽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는 경기외적 보여주기 식 이벤트가 일각이 우려 했던바, ‘평창 올림픽’을 ‘평양 올림픽’으로 변질시키고 있다.

이른바 삼지연 관현악단장 현송월이 이끌고 있는 예술단의 현란한 무대가 ‘평양의 눈요기 감’이었다면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깜짝 내민 히든카드 ‘평양 초청’은 평창올림픽분위기를 한방에 날려버렸다.

여기에다 소위 미녀 응원단의 호기심 자극, 태권도 시범단의 격파 묘기 등으로 평창은 뒷전이 되어버렸다.

“평창이나 서울이 평양 놀이터가 되어 버렸다”는 씁쓸한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 이후 40여 일 간 북의 대남 대화 평화 공세는 거침이 없다. 일사불란한 속도전이었다.

남북 여자하키 단일팀 구성, 남북선수단 개회식 공동 입장, 예술단, 응원단, 태권도 시범단과 고위대표단 파견 등에서 보여준 일방통행 식 파격 행보가 그랬다.

땅으로, 바다로, 하늘로, 보란 듯이 육해공을 휘저으며 다녔다.

고위급 대표단원인 김여정의 느닷없는 김정은 특사 변신도 외교관례에서 보기드믄 파격이 아닐 수 없다. 파상적 대화 공세다.

북한 김정은의 이러한 남북관계 개선 조급성에 대한 전문가 그룹의 분석은 대동소이하다.

북은 궁지에 몰려 있다. 거듭되는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가 체제의 숨통을 옥죄고 있다.

중국과의 무역도 거의 막혔다. 빈사 상태에 놓여 있다.

미국에 의한 ‘4월 한반도 위기설’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다고 쉽사리 핵을 포기할 수는 없을 터이다. 돌파구를 찾아야 할 입장이다. 이를 위한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국제사회의 압박과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간벌기는 북의 입장에서는 마지막 몸부림일 수도 있다.

여기서 평창올림픽과 한국은 기회의 끈이다. 북으로서는 한국을 국면전환용 전략의 지렛대로 활용할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는 핵 포기가 아니라 핵을 지키려는 마지막 수단이다.

이를 위해 한국을 인질로 삼으려는 생각이다.

문대통령을 평양에 초청하는 ‘정상 회담 미끼’도 출구를 찾으려는 절박감의 표출이다.

물론 남북대화는 필요하기도 하고 중요하다. 정상회담도 그렇다. 한국의 집권층 입장에서는 구미가 당기는 유혹이다.

그렇다고 뒷감당 없이 북이 던지는 미끼를 덥석 물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다.

그러기에 ‘평양 초청’과 관련한 문대통령의 대응은 신중했고 적절했다.

북의 김위원장 초청에 문대통령은 “앞으로 여건을 만들어서 성사시키자”는 뜻을 밝혔다고 했다.

문대통령이 언급한 ‘여건’은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라도 북미 간 조기 대화가 필요’하고 ‘남북만의 문제로 다 풀리는 게 아니기 때문에 한반도를 둘러 싼 전체 환경과 여건이 같이 무르익어야 한다’는 것이다.

‘북미 대화’가 전제 조건이다. 이는 바로 ‘북한의 비핵화’와 연동되어 있다.

‘북핵 문제’를 매개로 한 북미대화가 남북대화 또는 남북 정상회담의 전제 조건인 셈이다.

이는 사실상 ‘북핵 문제’가 남북 정상회담의 최대 걸림돌이요 아킬레스 건 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여기에 한국 정부의 고민이 깊다. 북한과 미국을 어떻게 설득하고 북미 대화 성사를 위해 한국이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할지는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대목인 것이다.

문대통령이 평양 방문이나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하여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북핵 포기나 비핵화’ 담보가 없는 정상회담은 무모하고 무의미 한 일이어서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평창 이후’ 북핵 리스크 관리는 한국 입장에서는 선택이 아닌 필수적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북핵’은 남북정상회담 또는 북미 회담의 블랙홀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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