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이 훈/ 제주출신으로 제주일고와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현재 목포대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글쓰기는 중요하다. 사회가 합리적으로 갈수록 학연이니 지연이니 하는 비민주적이고 불합리한 기준보다는 말이나 글로 평가하게 된다. 개인 주체의 이성적인 판단을 존중하는 경향이 강해질 것이라고 바꿔 말해도 좋다. 한마디로, 사람을 판단하는 데 글이 아주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러니 교육 현장에서는 글쓰기를 어느 공부보다도 우선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혹시 공부와 글쓰기를 대립적으로 생각하는 것같이 읽힐 수 있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글쓰기 자체가 진짜 공부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자면 읽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게 공부가 아니고 뭔가! 당장 글쓰기를 독립 교과목으로, 그렇지 못하면 한국어 과목의 가장 중요한 영역으로 대접해야 마땅하다. 단단한 내면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세상을 보는 눈을 갖자면 글을 써야 한다.

이런 교육이 제대로 안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외면을 지나치게 중시하고 유행에 민감하며 남의 눈을 의식하는 사람들로 자랐다. 이런 부정적인 현상이 전적으로 글을 안 쓰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라고 하면 물론 폭력적인 단순화이지만, 교육 현장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고민해 봤다면 그 누구도 둘 사이에 아무 관계가 없다고는 하지 못할 것이다.

즐겁게 글을 쓰게 하는 방법은 뭘까? 되풀이하여 쓰는 것, 이게 답이다. 쓰다 보면 새로운 생각이 생긴다. 이미 가지고 있던 생각만으로는 절대로 좋은 글을 짓지 못한다. 글감을 골똘히 들여다보면서 따지면 따질수록 평소에는 하지 못하던 생각이 신기하게도 떠오른다. 좀 과장하면, 글이 글을 부르는 경우도 있다. 시인들이 말하는 영감도 아마 이와 비슷할 것이다.

얼른 보기에는 뜻하지 않게 얻은 것처럼 보이는 멋진 표현은 평소에 많이 생각한 결과일 뿐이다. 그러므로 글도 농사와 마찬가지로 뿌린 대로 거둔다고 해야 옳다. 글을 의식적으로 쓰게 되면 그냥 지나치던 것도 주의 깊게 돌아보고 책도 이전과는 다른 태도로 읽게 된다.

되풀이하여 글을 쓰는 것이 이런 결과를 가져온다면, 그 과정이 힘든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글을 쓰면 나를 돌아보고 반성하고 심지어는 부정해야 하므로, 고통스럽지만 새로운 나를 만들어 가는 기쁨도 그 고통 못지않게 크다. 이렇게 하여 내 마음은 넓어지고 깊어진다. 그런데 참 놀랍게도 마음의 넓이와 깊이에는 한계가 없다. 빈 항아리는 물이 가득 차면 더 담을 수 없지만, 사람의 마음은 채울수록 빈 데가 늘어난다.

글을 쓰는 습관을 들이자면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 독립적인 인격을 갖춘 존재로 대접해야 한다. 그래야 자유롭게 질문하고 스스로 답을 찾아 낼 수 있다. 이런 습관이 잘 쓸 수 있는 바탕이 된다.

그러면 어떤 글이 좋은 글일까? 여러 가지로 대답이 가능하지만 필자의 의도를 성공적으로 드러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물론 그 의도가 뻔한 것이어서는 안 되고 깊이와 보편성을 갖춰야 한다.

그런데 이런 내용은 평생에 걸쳐서 끊임없이 배우고 읽고 쓰고 해야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좋은 글 못 쓴다고 가만히 앉아서 한탄할 것이 아니라, 부지런하게 읽고 생각하고 써 보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읽을 만한 글을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성의와 노력이다.

내용을 제대로 갖추는 일은 위에서 말한 대로 평생에 걸쳐서 해야 할 일이니까 각자의 노력에 맡기기로 하고, 여기서는 그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점을 얘기하고자 한다. 이것은 비교적 짧은 시간에 익힐 수 있다.

좋은 글이 갖추어 할 가장 중요한 요건은 구체성이다. 여기 내 앞에 아름다운 꽃이 있다고 하자. 내가 아무리 아름답다고 얘기해도 여러분은 무슨 말인지 모를 것이다.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독자의 공감을 얻는 글이 되려면, 꽃의 모양이나 향기를 마치 눈앞에서 그 꽃을 보고 냄새 맡듯이 보여 줄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다루는 대상을 눈이나 귀에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듯한 느낌을 주게끔 제시해야 한다. 이것이 구체성이다.

글의 교훈적인 성격은 주로 이 구체성에서 나온다는 점을 명심하자. 예를 들어, 열심히 공부하자는 말 대신에 그렇게 하는 모습과 그렇게 하여 얻은 결과를 구체적으로 보여 주면, 독자들은 ‘아! 이러니 열심히 해야겠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좋은 글의 또 다른 조건은 복잡성이다. 대상을 이루는 여러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대상을 단순하게 어떤 하나의 성질만을 가진 것으로 간주한다든지 긍정적인 요소만을 일방적으로 부각시킨다든지 하면 안 된다. 특히 주장을 내세우는 글에서는 이 복잡성을 고려하는 일이 아주 중요한다. 내 주장이 옳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 주장에 반대되는 측면을 무시하거나 아예 없는 것처럼 굴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복잡성을 파악하는 눈을 가지려면 무엇보다도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겸허한 태도를 길러야 한다. 내 신념이 무너지는 한이 있더라도 사실을 존중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인간은 너나없이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존심을 버릴 수 있을 정도로 무한히 열려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답이나 결론을 바로 제시하는 것보다 그것에 이르는 논의의 과정이 훨씬 더 중요하다. 답보다는 풀이 과정이 제대로 되어 있느냐 하는 것에 훨씬 더 많은 점수가 매겨지는 것은 수학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모든 글은 그 종류에 관계없이 논리가 그 바탕을 이룬다.

이런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는 것은 어렵다. 정확히 말하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이런 경지에 쉽게 이르는 길도 나 있지 않다. 앞에서 말한 대로 쉬지 않고 읽고 생각하고 쓰는 게, 겨우 그 길의 입구에 들어설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도 위에서 말한 몇 가지 조건을, 읽고 생각하고 쓸 때마다 의식적으로 고려하는 습관을 들인다면 읽을 만한 글을 지을 수 있다. 문제는 앞에서 말한 대로 성의와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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