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이양재 (李亮載) / 20세 때부터 고서화를 수집한 민족주의 경향의 ‘애서운동가’로서, 서지학과 회화사 분야에서 100여 편의 논문과 저서 2책, 공저 1책, 편저 1책 있음. 현재 ‘포럼 그림과 책’ 공동대표, ‘고려미술연구소’ 대표.

제주4.3의 70주년을 추념하기 위하여, 내가 6~7년 전에 어느 현장경매에서 구입한 낡은 문건 하나를 아래에 전재한다.

1948년 9월 4일

서울시 중구 다동 62

조선교육자협회

위원장 박준영(朴俊永) (조선교육자협회지인)

조선일보 편집국장 귀하

긴박한 제주도 사태에 관하여

제주도에 또다시 800명의 무장토벌부대가 파견되었다고 전한다.

어느 때 보다도 결정적이고 처참한 민족상잔의 비극을 꾸미려고 발광한다. 이것이 대한민국이니 정권이양이니 떠들기 좋아하는 매국 멸패족의 무리들이 나날이 심각하여 가는 민생고는 본체만체 수해이재민의 참상에도 귀를 막고 인민에게 보내는 최초의 선물인 것이다.

폭력으로서 자주독립의 민족의지가 말살되는 것이라면 어찌하여 파시스트 독일과 일본은 패망하였느냐? 조국의 통일과 독립을 위하여 싸우는 제주도(濟州島) 인민에게 학살로서 임하는 것은 결단코 조선인민의 의사일수 없다. 외제(外帝)와 파시스트와 그에 맹종하는 괴뢰들 외에는 아모도 이 반족적인 처사를 묵인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몇 놈의 특권배를 위하여 조국을 열애하는 죄 없는 인민의 수많은 생명이 외제의 최신식 무기 앞에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애국인민이여! 사태를 정시합시다. 이것이 누구를 위한 살상이며 또 뭣 때문에 동포의 생명이 짓밟히어야 하느냐?말입니다. 조국의 통일과 독립을 쟁취하여야 할 엄숙한 이 순간에 조선최고인민회의에 결집한 애국인민들이여! 망국 멸족적 괴뢰군정의 기도를 일축하고 통일적 중앙정부의 깃발 밑에 구국의 성업을 완수할 시기는 닥쳐왔다. 단결하여서 양군(兩軍)의 물리치고자 양군이 나가는 날부터 삼천리 강산에 독립과 평화가 올 것이다.

이 문건은 여러 부의 사본을 만들기 위하여 얇은 종이에 먹지를 대고 쓴 글의 사본이다. ‘조선일보’라고 명기한 부분은 청색잉크로 쓴 것을 보면 아마도 조선교육자협회가 다수의 사본을 만들어 당시의 언론사에 배포한 것으로 보인다. (글자가 매우 흐리게 보이지만 판독은 가능하다. 옮기면서 한자는 한글로 바꾸었다.)

이 문건이 1948년 9월 4일 날 만들어진 것은 남한이 정부를 수립한 8월 15일로부터 20일 후이고, 북한이 정부를 수립한 9월 9일로부터 5일전이다. 이 시기는 제주에서 무차별한 살육이 벌어지던 초기이다. 이 문건을 만든 조선교육자협회 위원장 박준영이 아무리 좌파라고 하더라도, 이 문건이 주목되는 것은 “자주독립의 민족의지……, 조국의 통일과 독립을 위하여 싸우는……” 등등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이 문건은 제주4.3을 비록 좌파들이 일부 선동하기는 하였지만, 4.3의 기저(基底, 밑바닥)에는 통일과 독립을 향한 의거적(義擧的) 성격이 있음을 말하여 주고 있는 것이 아닌지?

중요한 사실은 미국이 1950년 전쟁 중에 평양에서 노획한 문건에 의하면 ‘김달삼은 1948년 8월 25일 해주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 ‘입후보자에 대한 토론’ 시간에 토론자로 나서 제주4·3 무장봉기의 발발원인과 관련,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독선거실시에 따른 분노가 폭발해 벌어진 자연발생적인 총궐기”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제주4.3은 남로당의 선동 영향보다는 도민들의 저항과 분단에 대한 분노로 인하여 발생한 것으로 보아야 하므로 제주4.3은 사태가 아니라 ‘제주4.3의거’로 불러야 마땅한 것은 아닌지!

한편, 이 문건을 만든 조선교육자협회는 1946년 2월에 조선교육혁신동맹을 모체로 하여 결성된 전국 규모의 교원단체였는데, 이 협회를 주도한 인물은 학자, 학교장, 일반 교원 등 다양하였다. 창립 전반기의 핵심인물은 조선인민당의 이만규와 조선공산당의 김택원이었으며, 윤일선, 조용욱 등 중도인사도 함께 활동하였으므로, 창립 전반기에는 이념적 색채를 강하게 띠지는 않았다. 그러나 1946년 후반 이후의 후반기를 주도한 것은 김택원, 박준영, 정갑, 최종환 등 좌파 인사들이었고, 그들은 미군정의 교육정책을 비판하고 견제하였으므로, 1947년 8월 미군정의 좌익 대검거로 인하여 협회가 크게 약화되었고, 이후 한국전쟁 초기에 사실상 해체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내세운 교육이념은 '진보적 민주주의 교육'이었다. '진보적 민주주의 교육'은 교육기관의 국가관리, 민주적・과학적 교육을 통한 민주주의 국가건설, 과학・기술・직업교육, 여성의 해방과 계몽을 위한 교육 등을 강조한 것이었다.

그들의 활동은 일제 식민지 교육을 청산하고 새 국가에 맞는 교육개혁을 이루고자 한 진보적 교육자들의 실천이었다. 즉 요즘의 전교조와 그 이념이 매우 흡사하다.

제주는 이미 13년 전에 ‘평화의 섬’임을 선언하였다.

남북화해의 새로운 지평선이 열리는 지금, 평화의 섬 제주는 어떻게 나가야 할 것인가? “통일과 독립선언을 주도하는 섬이 될 것인가?”는 도민들의 선택에 달려있다.

제주4.3이 극히 소수의 남로당원들의 선동보다는, 다수 도민들의 민족자주의식에서의 조국 통일과 독립을 향한 염원을, 무자비하게 탄압한데 저항한 의거로 제주4.3을 새롭게 정립하여야 한다. 이는 지금의 제주도가 민족화해의 시대를 선도하여 나서는 명분이 될 것이다.

지금 제주도민들 일부는 조미(북미) 정상회담이 제주에서 열리길 희망하고 있다. 나도 그것을 열망한다. 나는 “지금이 우리의 열망을 백악관에 청원하는 운동을 시급히 시작할 때”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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