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이 훈/ 제주출신으로 제주일고와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현재 목포대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추억의 정수는 음식에 있지 않을까? 식구(食口)는 같이 밥을 먹는 사람인데, 이들과 어울리면서 잊히지 않는 기억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고향과 가족을 생각하면서 떠올리는 것 가운데는 돼지고기가 있다. 돼지는 집에서 직접 키웠던 덕분에 환갑을 몇 년 넘긴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남아 있어서 할 말이 좀 있다.

고향에 가면 어머니한테 꼭 주문하는 것이 삶은 돼지고기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같은 처지인 동생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뭐, 요리라고 할 것도 없다. 고기를 삶아서 큼직하게 썰어 김치와 같이 먹기만 하면 된다. 고기를 삶은 물은 아주 맛있는 국이 된다. 쪽파를 띄운 국물에 삶은 고기를 넣고 잘 익은 김치로 간을 하여 먹으면 속이 다 시원하다. 이런 습관에 완전히 젖어서 나는 지금도 곰탕이나 설렁탕도 반드시 김치만으로 간을 맞춘다.

고기를 큼직하게 얹어 놓은 국수도 뺄 수가 없다. 돼지고기를 삶은 국물에 굵은 면을 넣는다. 그때는 마을에 면을 만드는 공장이 있었다. 오일장이 열리는 시장통에 있었는데, 긴 면발을 가지런히 널어 말리던 장면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이 음식에도 김치를 곁들여야 제 맛이 난다.

고기국수는 제주도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져서 육지 사람들도 많이 찾는다. 그런데 문제는 어린 시절부터 먹어 버릇한 사람에게는 옛날의 맛보다 아주 못하다는 데 있다. 고기가 힘이 없어 흐물흐물해지는 통에 씹는 맛이 영 안 나는 것이다. 짐작건대, 좁은 우리에서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고 사료를 먹이므로 근육이 발달하지 못한 대신에 기름기가 많아서 그럴 것이다. 국물에도 영향이 없을 수 없겠다. 담백한 맛이 덜하고 느끼하다. 과거를 아름답게 기리고자 하는 마음이 만들어 낸 맛도 끼어들어, 요즘 돼지고기를 사실 이상으로 깎아내리게 했을지 모르겠다.

이런 얘기를 하자니 고향으로 달려가 어머니의 손맛이 밴 국수를 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옛날보다 떨어지는 맛은 추억과 어머니의 사랑으로 보태어 채우면 될 것이다.

도시에서 자라거나 젊은 사람에게 돼지는 어떻게 떠오를까? 흔히 오가는 말에서 짐작해 보면 대체로, 먹성이 좋아서 살이 찌고 더러운 동물 정도가 그 답이 되지 않을까? 그런데 어린 시절에 집 바로 옆 우리(돝통)에서 키워 본 사람에게 돼지는 친근한 존재다. 사람에게 가까운 순서로 늘어놓으면 아마 소, 돼지, 닭, 개 정도가 될 것이다. 요즘의 젊은 감각으로 보면 개가 마지막에 놓인 것이 아주 이상하겠지만 집을 지키기만 할 뿐이고 고기를 제공하지 않으니 당연한 대접이다. 우리 동네에서는 개를 먹지 않았다.

소는 살아서는 농사일을 돕다가 큰돈에 팔리고 죽어서는 고기를 내놓으니 효자 못지않다. 소를 안 키운 지 오래됐지만, 순한 눈매의 어질기만 했던 옛날의 우리 집 어미 소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하게 남아 있다.

닭은 달걀을 낳고 거기서 병아리가 나와 닭이 되는 마술을 보여 줄뿐더러 양질의 지방과 단백질을 공급해 줬다. 고기는 언감생심이고 달걀만으로도 아주 귀한 먹거리였다는 점을, 아무 때나 치킨을 시켜 먹을 수 있는 세대들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 집에는 늘 열 마리 안팎의 닭이 있었다. 그냥 놔두면 저들이 알아서 저절로 컸다. 마당이나 텃밭을 돌아다니면서 풀, 배추, 벌레, 지렁이들을 먹는 것이다. 먹이를 찾기 어려운 겨울에 좁쌀이나 음식 찌꺼기를 주는 것이 고작이다.

닭장에서 키우지 않으므로 달걀도 아무 데(그때 우리 집 울타리 안에는 소 우리라든가 농기구를 넣어 두는 창고들이 있었다)나 낳는다. 주인도 그곳을 모르는 수가 있다. 그래서 암탉이 자기가 낳은 달걀을 품어 병아리를 까느라고 한동안 잘 안 보이다가 어느 날 열 마리가 넘는 병아리를 자랑스럽게 거느리고 나타나서는 식구들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이런 경험에서 생명의 신비를 막연하게나마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하기야 다 큰 닭은 무심하게 잡아먹거나 오일장에 내다 팔았으니, 생명 운운하는 게 멋쩍기는 하다. 지난날을 아름답게 여기기 쉬운 기억의 장난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놓아먹인 닭이 지금의 우리에서 키운 닭보다 훨씬 맛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 닭이 개보다 사람에게 가까울 수밖에 없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내 어린 시절의 돼지 얘길 더 하자. 책에서 만난 구절을 옮기는 것으로 시작하는 게 좋겠다.

“저녁 무렵에는 돼지우리에서 살찐 돼지가 끌려나왔다. 돼지 멱따는 소리가 앞뒷산에 메아리치면 꼬마들이 몰려들었다. 비위 좋은 아저씨들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돼지 피를 몸에 좋다며 후루룩 들이키고는 소주 한 잔으로 입을 닦았다. 아이들은 돼지 오줌보에 바람을 불어넣어 만든 공으로 축구를 했다.”(김석종 외, 「잔칫날」,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 마당넓은집, 2001, 214쪽. 참고로, 이 글의 지은이는 같은 글에서 “잔칫상에 오르는 대표적인 음식은 홍어회”라고 한 것으로 보아 전라도 출신인 것 같다.)

이런 풍습의 지역적 분포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지만, 우리 동네 잔칫날이 바로 저랬다. 농가에서는 집마다 돼지가 있었다. 돼지를 키우는 가장 큰 목적은 바로 저 큰일에 쓸 고기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결혼식이나 장례식을 집에서 치러야 하고 마을 사람들이 찾아오니 이들을 맞이하자면 돼지고기가 있어야 했다.

돼지는 잡식성이어서 아무거나 잘 먹는다. 부엌에서 나오는 음식물 찌꺼기에서부터 시작하여 쌀겨나 보리겨까지를 돌을 파서 만든 먹이통에 놓으면 긴 주둥이로 잘도 먹었다. 어디 이것만인가. 사람의 똥도, 빼서는 안 될 훌륭한 식단이다.

돼지는 쓰레기를 없애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소 우리에서 나온 똥과 찌꺼기를 돝통으로 옮겨서 오랫동안 돼지가 밟고 비를 맞게 했다. 이 거름을 마당으로 퍼 날라서 여기에다 보리 씨를 뿌리고 골고루 퍼지도록 소들이 한나절이나 밟은 다음에 밭으로 가져갔다. 보리를 거둬 사람이 먹고 남긴 걸 돼지가 다 처리했다. 저절로 생태계의 순환이 이뤄졌던 것이다. 그러니 쓰레기가 있을 수가 없다.

지구의 환경 문제가 심각하다. 편리를 추구한 결과이다. 이런 현실을 걱정할 때마다 나는 어린 시절의 고향과 돼지를 떠올리곤 한다. 오래된 것에 우리의 미래가 있지 않을까? 조상의 저 빛나는 지혜를 오늘에 맞게 되살리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돼지에 얽힌 두 가지 기억을 덧붙이고 마치고자 한다. 하나는 똥을 싸다 겪는 일이다. 일을 보려는 기색이 보이면 돼지가 엉덩이 아래로 다가온다. 그런데 그날따라 설사가 난다. 아무리 똥을 먹는 처지지만 그 물기가 큰 귀에 떨어지면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내 연배 정도의 시골 출신이라면 다들 경험했거나 그러지 못한 나이라도 그 다음에 일어날 일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테니, 여기서 그만하는 것이 좋겠다.

두 번째 얘기. 겨울에는 엉덩이가 시려서 돝통에 가기가 싫었다. 지붕마저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서 쳐다보는, 달이 높이 뜨거나 별이 총총히 빛나는 밤의 황홀경이라니! 이런 장면을 생각하면 내가 시인이 못 된 게 좀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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