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지 않은 곳이었다. 비행기를, 혹은 배를 타면 올 수 있는 곳. 다른 사람들은 예쁜 경치를 보기 위해, 즐기기 위해, 힐링 받기 위해 놀러오는 제주다.

▲제주4·3증언본풀이마당이 30일 오후 제주소극장에서 열렸다. 이날 송복희 할머니(왼쪽)가 4·3당시를 이야기하고 있다.@제주투데이

하지만 누군가에게 제주는 차마 발을 밟을 수 없는 곳. 쳐다보기조차 괴로운 곳. 그래서 말조차 하지 않았고,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려 했던 곳이었다.

70여년. 산천이 7번은 바뀌었을 세월이 지나서야 비로소 제주에 돌아온 사람들. 처음으로 대중 앞에서 자신의 어두운 이야기를 꺼내는 희생자들에게, 유족들에게 제주4·3은 현재진행형이었다.

(사)제주4·3연구소는 30일 오후 2시부터 제주문예회관에서 '제주4·3 70주년 기념 4·3증언본풀이마당 17번째'를 개최했다. '70년만의 귀향, 70년의 기억'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번 증언본풀이에서는 오사카에서 살고 있는 송복희 할머니(87세), 전남에 살고 있는 이삼문 할아버지(77세), 경기에 살고 있는 양농옥 할머니(87세) 등 3분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형편이 좀 나아져서 목돈도 생기고 고향에 돈 부치기도 했었어. 고향에 돌아갈까 이야기도 했었지. 예비검속 소문 들기 전까지만 해도..."이날 본풀이에 앞서 작창 안성민 씨와 고수 조륜자 씨가 4·3을 주제로 한 판소리 '사월이야기'를 공연했다. 이날 안성민 씨는 4·3으로 가족을 잃고 목숨이 위태로워 제주를 떠나 일본으로 건너갔단 할머니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했지만 돌아가고 싶었던 하지만 돌아갈 수 없이 70년을 일본에서 일본인으로 살아야 했던 이들의 목소리를 안성민 씨는 한스럽게, 구슬프게 토해냈다.

▲작창 안성민 씨와 고수 조륜자 씨가 판소리 '사월이야기'를 공연하고 있다.@제주투데이
▲작창 안성민 씨와 고수 조륜자 씨가 판소리 '사월이야기'를 공연하고 있다.@제주투데이

이날 오사카에 사는 송복희 할머니는 서귀포 서귀리에 살던 당시의 일을 전했다. 송 할머니는 4·3으로 집을 불탔고, 친척들의 대부분이 행방불명되거나 죽임을 당하는 일을 직접 목격했다. 수많은 시체들이 전봇대에 매달리고, 군인들의 잔인한 행보를 기억하는 송 할머니는 일본으로 도피해 살면서 차마 서귀포를 찾지 못했었다고 말했다.

전남 목포에서 사는 이삼문 할아버지는 4·3으로 부모와 2명의 형, 누나 등 모든 가족을 잃었다. 한 해군장교의 도움으로 목포고아원에서 살았지만, 돌봐주는 사람 하나 없이 10살에 전남 해남에서 머슴으로 일해야 했다. 그 후 부잣집 양자로 거둬져 기술을 배워 독립할 수 있었지만 차마 제주를 찾지 못했던 이 할아버지는 최근에서 제주를 찾아 부모님의 묘도 비로소 갈 수 있었다. "부모님 무덤에서 한없이 울기만 했다"는 이 할아버지의 말에 이날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의 눈물을 자아내기도 했다. 4·3평화공원 희생자 위패에 올라있던 이 할아버지는 유족 신청을 위해 4·3연구소의 도움을 받고 있다.

경기에서 사는 전농옥 할머니는 4·3 당시 오라동에 살면서 아버지를 잃고 소녀가장으로 지냈던 당신의 삶을 증언했다. 전 할머니의 부친은 경찰에게 붙잡혀가 총살됐으며, 이후 전 할머니는 두 여동생을 챙기는 소녀가장으로 생활했다. 일찌기 시집갔던 언니는 도두리에서 시집식구들과 함께 대창에 찔려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4·3증언본풀이마당에 참가한 세 명의 유족들. 왼쪽부터 송복희, 이삼문, 양농옥 씨@제주투데이

이날 증언본풀이에는 100여명의 사람들이 참석해 자리를 메웠으며, 증언자들의 가슴아픈 기억을 함께 공감하며 함께 웃거나 눈물 흘리기도 했다. 

한편 4·3연구소는 지난 2002년부터 증언본풀이마당을 통해 4·3희생자와 유족들의 이야기를 직접 전하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규배 4·3연구소 이사장은 "오늘의 기억을 통해 과연 70년 이후 우리 앞에 놓여지는 과제는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규배 4.3연구소 이사장이 증언본풀이마당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제주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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