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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증언본풀이②]70년만의 고향땅
부모 무덤 앞에 이제야 서서
송복희·이삼문·양농옥 4·3증언본풀이를 듣다
김관모 기자 | 승인 2018.03.31 16:40
지난 30일 제주문예회관 소극장에서는 17번째 4·3증언본풀이가 열렸다. 당시 10대에 불과했지만 지독한 4·3을 직접 경험했던 아이들은 어느새 90세를 바라보는 노인이 되었다. 하지만 10대 당시의 기억과 눈물은 여전했다.
 
세월이 바뀌고 4·3이 비로소 한국사에 들어났지만, 7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제주에 발을 들일 수 있었던 사람들은 아직도 남아있었다. 이날 본풀이에서 일본에, 육지에 있으면서도 차마 제주를 찾지 못했던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보았다.
 
◎머리 잘라 매달고, 담뱃불로 지지고... 끔찍한 제주 피해 일본으로
▲송복희 할머니

첫번째 증언에서는 이본 오사카에 살고 있는 송복희 할머니가 이야기를 전했다. 송 할머니는 1931년생으로 서귀포 서귀리에서 2남4녀 중 3녀로 태어났다.

4·3 당시 16살로 어머니는 병으로 일찍 여의고 아버지와 형제자매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당시 서귀리는 송씨 집성촌으로 송 할머니는 친척들과 함께 모여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2연대가 서귀포로 들어왔고 송태삼을 비롯한 여러명의 목을 잘라 집앞 전봇대에 걸어놓았다고 송 할머니는 말했다. "군인들이 담뱃불로 시체들의 얼굴을 찌르면서 웃고 떠드는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고 송 할머니는 회고했다.
 
한번은 어느 마을을 진압한 후 그때 같이 잡혀온 여성을 나체로 돌게 하기도 했다는 것. 이 과정에서 친척이었던 송문희 면장 부부와 송구장 마을대표 등이 예비검속으로 잡혀가 그대로 행방불명됐다. 
 
이후 서귀포에는 아침과 저녁에 수시로 순찰비행기가 돌았고, 공터에 사람들이 보이면 기관총을 쏘아댔다고 한다. 이 난리통에 송 할머니의 집이 불이 나 타버렸고 결국 할머니는 가족들과 함께 일본으로 도망갔다.  
 
이후 68년을 일본에 살면서 송 할머니는 한번도 서귀리를 다시는 돌아보지 않았다. "집이 타버렸고 가족도 모두 죽어 가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고 할머니는 말했다. 서귀포에 지난 29일에서야 처음 찾았지만 너무 변해버린 모습에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었다고 한다. 특히 5살 조카애가 군의 차에 치여 깔려버린채 죽은 일에 대해 송 할머니는 힘겹게 말을 이어가기도 했다.
▲송복희 할머니가 4·3연구소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제주투데이
 
◎어머니 죽는 모습 지켜본 9살 아이...70년만에 부모 묘에 서다
▲이삼문 할아버지

두번째 증언자로 나온 이삼문 할아버지는 4·3 당시 9살로 제주시 노형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4·3이 터지자 낮이면 군인, 경찰이 밤이면 좌익 무장대가 마을로 들어와 불을 지르고 소와 돼지를 잡아가자 결국 이 할아버지의 가족들은 오도롱으로 피난갔다. 그 와중에 아버지와 큰형, 누나는 무장대에게 끌려갔고, 이 할아버지는 어머니와 할머니, 작은형과 함께 다시 피난을 가 경찰이 만든 천막촌에서 생활했다.

그러나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경찰이 '산사람'을 가족으로 둔 사람들을 모으자, '산사람에게 붙잡혀 간 사람'을 찾는 것으로 오인했던 이 할아버지의 어머니는 자진해서 나섰다고 그대로 경찰에게 처형당했다. 이 할아버지는 어머니가 죽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봤었다고 했다.

이후 두 형제는 심부름일을 하면서 지내던 중 작은 형마저 행방불명됐고, 이 할아버지는 한 해군 장교의 눈에 띄어 장교의 집에서 양자로 지내게 됐다. 그러나 장교가 근무지를 이전하면서 이 할아버지를 목포 고아원에 맡겼다. 거기서 이 할아버지는 그 해군장교를 기다렸지만 6·25가 터지면서 끝내 장교를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고아원의 삶도 배고프고 어려운 생활이었기에 이 할아버지는 목포에서 무작정 사람들을 따라 배를 탔다. 배에서 내리고 차를 얻어타고 무작정 걷기도 했던 이 할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전남 해남 상공리였다. 거기서 이 할아버지는 부잣집의 머슴으로 일하게 됐다. 당시 할아버지의 나이는 10살이었다.

이후 이 할아버지는 그 부자집의 양자로 호적이 올려져 성도 이 씨에서 박 씨로 바뀌었고, 서울에서 다시 전남에서 생활을 했다. 그러면서 가끔씩 제주로 돌아갈까 생각했지만 생각나는 것은 아버지의 성함과 당시 살던 동네 뿐이었기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이삼문 할아버지와 4·3연구소 실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제주투데이
그러다가 자식들의 도움으로 2016년에서야 제주4·3평화공원을 찾은 이 할아버지는 공원 위패에 자신의 이름이 올라와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을 발견한 이 할아버지는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를 그런 심정이었다"고 당시 소감을 말했다. 그리고 제주에 살고 있던 친척과 4·3연구소 등의 도움으로 이 할아버지는 부모의 산소가 모셔져있는 노동형 월산교를 비로소 찾을 수 있었다.
 
"그냥 한없이 울었어요. 처음 찾고 나서 세번을 더 갔습니다. 그저 저 잘 살고 있다고 말씀드렸죠."
 
그렇게 덤덤하게 풀어내는 이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사회자와 관람객들은 모두 눈물을 쏟아냈다. 처음에는 기자 인터뷰도 꺼렸던 이 할아버지는 그간 제주4·3을 알게 되면서 용기를 얻고 희망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 할아버지는 "박삼문이 아니라 이삼문이라는 이름이 이제는 익숙하고 좋다"고 말했다.
 
이 할아버지는 위패에 동일인으로 판명돼 희생자가 아닌 유족으로 등록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제주특별법 개정이 필요한만큼 빠른 개정안 처리가 필요하다고 4·3연구소는 전했다.
▲유족들이 전하는 이야기에 이날 참석자들이 눈물을 닦으며 그 아픔을 함께 공감하고 있다.@제주투데이
 
◎"불러도 고개만 숙이고 있던 아버지, 그것이 마지막 모습"
 
▲전농옥 할머니
세번째 증언자로 나온 양농옥 할머니는 4·3 당시 16세로 제주 오라동에 살고 있었다. 양 할머니의 모친은 병으로 광복되던 해 돌아가셨고, 아버지와 두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었다.
 
양 할머니의 아버지는 당시 도노미마을(오라 정실) '농위원장'을 하고 있어 당시 세상 정세에 밝은 인물이었다. 그래서 양 할머니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고 했다. 특히 4·3을 앞두고 "제주에서 일으켜서는 안된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하지만 9연대가 들어오자 아버지는 경찰에게 지목돼 잡혀갔고, 결국 오라리 공회당에서 총살됐다. 
 
"찌프차에 아버지가 있는 거야. 막 뛰어가서 '아버지'하고 매달렸지. 처음에 군인이 타라고 받쳐줬는데 9연대장이 군인에게 내리게 하더라고. 그렇게 아버지와 이별하고 며칠 있다가 '오라리 간 사람들 다 죽었져'라고 하는 거야"
 
이후 양 할머니는 2명의 여동생들을 데리고 시집간 언니가 있는 도두리에서 생활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언니와 시집식구들이 고문받고 경찰에게 살해당했다. 특히 양 할머니의 언니는 대창에 총알이 아깝다고 대창에 찔려 죽었다. 
 
양 할머니는 지금도 당신의 자제들에게 자신이 제주 출신이라는 것을, 4·3유족이라는 것을 숨기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에도 그간 찾지 않았다. 남편도 4·3유족으로 당시 경찰서에서 매질을 당해 후유증으로 고생했다. 그래서 항상 남편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한다.
▲전농옥 할머니가 4.3당시 상황을 말하고 있다.@제주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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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모 기자  whitekg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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