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함께 행불인묘역을 방문한 어린이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표석을 닦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사진=제주투데이)

제주4·3 70주년을 맞는 3일 오전, 수많은 4·3 유족들이 4·3평화공원 행불인 묘역과 위패봉안실을 찾아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묘역을 찾은 유족들은 고인의 얼굴을 쓰다듬기라도 하듯 표석을 정성스럽게 닦고 절을 올렸다. 70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마음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바람 없는 쾌청한 날, 눈물을 흘리는 유족이 곳곳에 보였다.

4·3희생자 행불인묘역을 찾은 유족들이 고인의 이름이 새겨진 표석을 정성스레 닦고 있다.(사진=제주투데이)

군경에 다섯 가족 잃어, "태어난 지 사흘 된 동생 귀에서 검은 피 흘러 나와"

해마다 4·3평화공원을 찾는 정홍기(76·가시리) 유족은 아버지(정영기·1925년생)의 묘 앞에 섰다. 군경들에게 가족을 잃었을 당시 여섯 살이었다.

1948년 11월 15일, 철모를 쓴 군경이 들이닥쳤다. 집에 불을 지르고 가족들을 나오라 해서 세워두고 쐈다.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가 총에 맞는 모습을 지켜 봐야했다. 어머니는 태어난 지 사흘 된 동생을 안고 있었다. 땅에 떨어진 갓난아이의 작디작은 귀에서 흘러나온 검은 피를 그는 기억한다. 7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4·3희생자인 아버지의 표석을 찾은 정홍기 유족이 4·3 당시 상황을 떠올리고 있다.(사진=제주투데이)

할아버지는 한쪽 팔에 총을 맞고 살아남았다. 세 살 밑의 남동생도 살아남았다. 그러나 할아버지 역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이듬해 숨을 거뒀다. 아버지는 당시 몸을 피한 상태였지만 결국 군경에 잡혀갔다. 총 다섯 가족을 잃었다. 두 형제는 외가가 있는 신흥리에서 자랐다. 동생은 여전히 신흥리에서 살고 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추념식에 참석해 기쁘고 고맙게 생각한고 밝혔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당시 무시당한 데 대한 설움을 드러낸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찾아온 오늘 예전과 다르게 날씨가 좋다며 웃었다.

4·3행불인 묘역의 어머니(김춘화) 표석을 찾은 김정남 유족이 절을 올리고 있다. (사진=제주투데이)

"'산사람'에게 어머니 잃었지만, 극우반공주의는 잘못된 사상"

김정남(1944년 생) 유족은 '산사람'들에게 어머니(김춘화)를 잃었다. 4·3 봉기가 일어난 직후인 음력 5월 초의 일이다. 당시 그는 4살이었다. 당시 일들이 기억에는 없다. 주변 사람들의 발언을 통해 당시 상황을 이해한다. 산에서 먹을 것을 가져다 달라고 호출이 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군경으로부터 해코지를 당할까 두려워 몇 차례 머뭇거렸다. 그러던 어느날 어머니는 산사람들에게 밥을 가져다주고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군경에 협조한다는 이유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가 ‘복수는 씨를 퍼뜨린다’는 철학을 갖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4·3평화공원 희생자 행불인묘역(사진=제주투데이)

상처를 말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들어 줄 상대가 없다는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보다 더 억울한 입장에 처한 분이 많다. 수형과 고문을 당하는 등 (국가폭력으로 인해) 비참하게 죽은 이들이 정말 많다. 나는 나보다 그 분들을 위로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산사람들에게 어머니를 잃은 그는 극우반공주의 세력에 일침을 놓았다. “(4·3을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이라고 폄훼하는) 신구범 지사 등은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런 사상을 갖고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중심에 서야 한다. 언제 때가 되면 자식들에게 내 역사를 말해줘야 할 텐데 중심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가 말하는 ‘중심’은 개인사를 역사적 관점에서 이해하기 위한 깊은 성찰과 반성일 것이다.

"어머니, 저기 계시네"

어두운 위패봉안실은 가족의 이름 세 글자를 찾는 유족들로 붐볐다. 벽면을 빙 둘러 빼곡하게 안치된 위패들 가운데 보고 싶은 이름 세 글자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참을 헤매던 80대 유족이 말했다. “어머니 현재희, 저기 계시네.” 그는 가만히 이름 세 글자를 바라볼 뿐이었다.

4·3희생자 위패봉안실에서 유족들이 고인이 된 가족의 이름을 가리키고 있다.(사진=제주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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