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숨허라', 말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말하면 안 됐기 때문에 모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는 우리 현대사의 큰 비극에 대해 누구나 그 진실을 말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3일 오전에 열린 제주4·3 70주년 추념식 행사의 모습@제주투데이

양윤경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은 3일 오전에 열린 제주4·3 70주년 추념식에서 말했다. 4·3은 대한민국 헌정사 이래 국가폭력에 의해 가장 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한 사건이다. 정부공식집계만 1만4,233명이 1948년부터 1954년 9월까지 희생당했으며, 행방불명인이나 수형인 등을 합치면 그 수는 3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제주4·3은 오랜 시간 한국사에서 일부의 사람들에게만 알려진 '감춰진' 역사였다. 역사를 감춘 장본인은 당시 학살을 자행했던 정부와 동조자 등 국가권력이었다. 유족들과 제주도민들은이 감춰진 역사를 드러내지 못한채 '노예'나 다름없는 시간을 보냈다.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과 이후 제주4·3 70주년 추념식에서 15년만에 다시금 이뤄진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는 그런 의미에서 울림이 크다.

◎슬픔과 회한 뿐이었던 70년의 시간...다시금 희망 찾을까

4월 3일 오전 10시 제주4·3 70주년 추념식이 제주4·3평화공원에서 개최됐다. 이날 추념식이 열리기 서너 시간 전부터 공원에는 일찍이 찾아온 유족과 시민들이 보였다.

오랜만에 VIP(대통령)가 찾아오기에 경비도 평소보다 삼엄했다. 공원을 찾는 사람들은 빠짐없이 공원 입구에 마련된 검색대에서 소지품 검사와 몸수색을 거쳐야 했다. 하지만 이같은 불편에도 누구 하나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찾기 어려웠다. 대통령을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것, 대통령의 공식사과가 있을 거라는 이야기 등으로 사람들은 기대감이 높아져 있었다.

▲제주4·3평화공원 입구에서 검색요원들이 참석자들을 몸수색하고 있다. 12년만의 대통령의 참석이어서인지 입장이 불편했지만, 불평하는 주민들은 찾기 어려웠다.@제주투데이

공원을 찾은 유족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공원 중앙에 위치한 각명비를 찾았다. 거기서 유족들은 손으로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 가족들의 이름을 찾기 위해 손가락으로 각명비를 짚었다. 그리고 가족의 이름을 찾은 유족들은 마치 살아있는 사람의 고운 얼굴을 만지듯 하얗게 새겨진 이름을 쓰다듬었다. 더러는 그 이름을 물로 씻어내며, 더러운 것이 묻을까 닦아내고 또 닦아내기도 했다.

그런 뒤 유족들은 미리 마련한 음식이나 감귤을 접시에 올리고 각명비 앞에 놓았다. 이어서 술이나 음료수, 물을 컵에 담아 올렸다. 그리고는 이름을 다시금 쳐다보았다고 이내 맨바닥에 연신 절을 했다.

휠체어에 앉아있어 차마 절하지 못하는 할머니는 휠체어에서 합장하고 죽어버린 아버지와 오빠의 이름을 부르며 "아방, 이젠 모두 다 죽어부렸수다. 다 죽었수다" 오열하기도 했다. 또다른 할머니는 이름만을 바라보며 오랜 시간 앉아만 있기도 했다. 

▲휠체어에 앉은 한 할머니가 희생자 각명비 앞에서 오열하고 있다.@제주투데이
▲각명비에서 절하고 있는 유족@제주투데이
▲각명비에서 희생자의 이름을 찾고 있는 유족들@제주투데이

이날 각명비에서 만난 강수언 유족은 희생자 강성주 씨(당시 41세)의 아들이었다. 당시 강수언 유족의 아버지는 상효리에서 경찰에게 붙잡혀가 다른 마을주민들과 함께 처형당했다고 했다.

8살에 불과했던 강 유족은 "이유도 모르고 그저 끌려가셨었다"고 토로했다. 또한 친척이었던 강현모 씨(당시 19세)는 1949년 경찰에게 붙잡혀간뒤 소식이 묘연해졌다.

강 유족은 "당시 이유불문하고 젊은 사람은 다 잡아갔었다"며 "이후 어머니를 모시면서 지냈다"고 말했다. 이후 어려움을 겪었던 강 유족은 이번 추념식을 뜻깊게 여기고 있었다. "그간 대통령 찾아오고 사과도 한다니 기대가 높다"고 말하기도 했다.

▲강수언 유족이 아버지의 이름을 짚으면서 4·3 당시를 설명하고 있다.@제주투데이

각명비 옆 공터에서는 루시드 폴이 피아노와 기타를 연주하면서 이날 추념식에 조용하고 잔잔한 곡을 연주하며 유족들의 마음을 위로했다. 각명비가 놓인 곳의 중앙 위령탑에는 루시드 폴의 연주에 맞춰 안무가들의 무용도 이어졌다. 

얼마 후 추념식 개최를 알리는 방송이 울렸고 사람들은 모두 추념식장으로 모여들었다. 행사장에는 1만5천여명의 유족들과 도민들이 참석해 어느때보다 높은 관심도를 보였다. 

▲추념식장을 가득 메운 인파. 이날 1만5천여명의 유족과 도민들이 모였다.@제주투데이

◎화해와 상생...그리고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서

이윽고 추념식의 시작과 함께 소설 <순이삼촌> 저자 현기영 작가가 추념사 '4·3 70주년의 평화를 기원하면서'를 낭독했다. 현기영 작가는  "4·3 조상님들의 슬픈 넋들은, 지금 저 봄날의 들판에 노란 유채꽃으로 무리지어 피어났다"며 "함성처럼 일시에 피어난 저 유채꽃 무리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남북 분단의 단독정부를 반대하고 통일국가를 외쳤던 70년 전의 그 함성을 듣는다"고 말했다. 

현기영 작가는 "4·3의 영령들은 지금 이렇게 추념식을 열어 애도를 표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애도에만 머물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며 "4·3의 영령들은 한반도 남북간에 증오의 언어와 몸짓을 걷어치우고 화해와 상생, 평화의 길로 나서라고 우리 등을 떠밀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4·3영령들은 처절한 수난의 땅 제주도에 평화회담의 멍석을, 피스토크의 테이블을 놓으라고 우리에게 촉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가수 루시드 폴의 추모곡 '4월의 춤'이 현대무용과 함께 연주됐다. 

이어서 본행사가 시작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는 4·3유족 및 희생자들과 동행해 위령제단 앞에서 헌화와 분향을 하고 4·3영령을 위해 묵념했다. 이후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제창으로 식이 시작됐다.

이날 먼저 인사말에 나선 양윤경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은 "봄이 되면 우리 유족들은 희망을 안고 추념식에 참석했지만 실망과 분노를 안고 돌아갔다"며 그간 70년간 쌓은 유족들의 한을 대신 토로했다. 양 회장은 "오늘 이 자리에는 참혹한  4·3현장에 계셨던 미망인과 생존희생자, 원로 유족분들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어려운 걸음을 했다"며 "이분들은 대한민국의 아버지이며 어머니다. 이분들께 조금이나마 위안을 드리고 70년 동안의 한을 덜어드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강조했다.

▲양윤경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제공 제주특별자치도

또한 양 회장은 대통령에게 "제주4·3을 국정 100대 과제로 채택하고 희생자와 유족의 추가신고를 다시 할 수 있도록 해 감사하다"고 인사한 뒤, 대통령을 비롯해 각 정당 대표들에게 4·3특별법 개정을 하루 속히 통과할 수 있도록 힘써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화답하듯 문재인 대통령이 추념사에 나서서 4·3에 대한 공식사과와 함께 유족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어서 문 대통령은 특별법 처리와 배보상, 국가트라우마센터 설립 등을 약속했다. 이에 객석에서는 연신 환영의 박수소리가 이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주4.3에 대해 공식사과를 한 후 고개를 숙이고 있다.@사진제공 제주특별자치도

한편 이날 추모식에서는 가수 이효리가 추모시를 낭송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효리는 이종형 시인의 '바람의 집'과 이산하 시인의 '생은 아물지 않는다', 김수열 시인의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등 세편을 낭독했다.

특히 이날, 유족 이숙영 씨가 나와 4·3영령에게 바치는 편지글을 낭독했다. 이숙영 씨는 "교육에 헌신하던 아버지가 4.3으로 끌려가 기슭에서 총살당하시던 날 까마귀 울음소리를 기억히고 있다"며 "착한 사람들이 왜 학살했는지 밝혀달라"고 호소했다. 또한, 이숙영 씨는 "44살 어머니는 시부모, 아이들 키우느라 안으로만 울분을 쏟아내던 어머니에게 '밤에 무산 울언'이라고 묻던 6살 막내는 서러움으로 철이 들며 자랐다"고 회상했다.

또한 이 씨는 "관악대 만든 큰 오빠가 수장됐다는 말 들은 날 주춧돌 무너졌다는 애끓는 통곡은 저 바다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며 "오빠의 비석 옆에 어머니가 심은 무궁화는 시대의 아픔을 기억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4·3 행방불명, 연좌재로 숨죽이며 산 70년의 서러움을 걷어내고 진정한 희망을 찾게 해달라"고 요청해 많은 이들의 눈물을 자아내기도 했다.

▲유족 이숙영 씨가 편지글을 읽고 있다.@사진제공 제주특별자치도
▲김정숙 여사가 유족 이숙영의 편지글에 눈물 흘리고 있다.@사진제공 제주특별자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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