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민중항쟁'이라는 글씨가 선명한 모조 백비를 바라본 김석범 작가가 소리내 울고 있다.(사진=제주투데이)

백비(白)가 바로 세워졌다.

제주4·3평화기념관에는 지난 70년 동안 정명(正名)을 하지 못한 제주도민들의 한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있다. 이름을 새기기 못한 비석, 백비다. 백비 옆에는 '언젠가 이 비에 제주4‧3의 이름을 새기고 일으켜 세우리라'라고 적혀 있다. 그렇게 정명의 날을 기다리며 백비는 누워 있다. 백비를 세우는 것은 4·3의 해결을 의미한다.

2일 저녁 백비가 세워졌다. 제주시민단체 관계자 등 도민들은 제주4·3 70주년을 맞은 이날 저녁 8시께 제주문예회관 앞 가설무대에 백비를 세웠다. 이들이 백비에 새긴 이름은 다름 아닌 ‘4·3민중항쟁’. 뭉뚱그려진 역사를 정명한 것이다.

제주4·3 대하소설 『화산도』를 집필한 재일교포 김석범 작가(93)는 지난해 9월 제1회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을 받는 자리에서 백비에 이름을 새기기 전까지는 한국에 들어오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김석범 작가의 일갈에 한국 4·3 관계자들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평생 4·3에 천착한 노작가에게 4·3을 정명하지 않고 그리운 고향 땅을 밟는 일은 죄스럽기만 하다. 역사적 과제를 미완으로 남겨둔 후세대들이 야속하기도 했을 것이다.

관계자들의 초청을 못 이기고 4·3 70주년 추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제주를 방문한 김석범 작가(93)는 ‘제주4.3항쟁’의 백비가 세워진 순간 ‘승리’라는 단어를 꺼냈다.

제주시민단체 등은 2일 저녁 8시께 제주문예회관 가설 무대에서 '4·3민중항쟁'이라고 쓰여진 백비를 일으켜 세우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사진=제주투데이)

사실 이날 세워진 백비는 며칠 전 4·3 70주년 범국민대회 때 퍼포먼스를 위해 만든 모조품이다. 진짜 백비가 아니라는 사실을 김석범 교수도 안다. 하지만 그 감격은 모조품이 아니었다.

제주도민들은 이날 백비 퍼포먼스를 통해 노작가에게 4·3의 정명을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의지가 꺾이지 않는 한 4·3은 ‘도민 주체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기록될 것이다. 4·3항쟁 정신을 미약하게나마 이어오고 있는 도민들의 노력을 김석범 작가가 인정한 것 아닐까. 그래서 ‘승리’라는 말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김석범 작가는 곧 통곡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4·3 당시의 기억, 4·3을 알리는 데 전념해온 지난 삶, 그리고 제주4·3평화기념관에 누워있는 백비가 한꺼번에 떠올랐는지 모를 일이다. 김석범 교수는 올해 4·3특별공로상을 수상한 평생의 지기 김명식 시인을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4·3 70주년 당일 행사들을 마친 저녁 도민들이 ‘백비’에 새긴, 70년 동안 이름붙이지 못한 그 제주 역사의 이름은 ‘4·3민중항쟁’이다.

▲제주시민단체 등은 2일 저녁 8시께 제주문예회관 가설 무대에서 '4·3민중항쟁'이라고 쓰여진 백비에 김석범 선생과 동료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사진=제주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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