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이유근/ 한국병원과 한마음병원 원장을 역임하시고 지역사회 각종 봉사단체에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현재는 아라요양병원 원장으로 도내 노인들의 의료복지를 위해 애쓰고 있다.

얼마 전 서울의 모 대학병원의 간호사가 선배들의 ‘태움’에 시달리다 자살하였다는 기사로 의료계뿐만 아니라 온 나라가 시끄럽다. 그러다보니 정부에서도 발 빠르게 대책을 내놓았다. 간호사의 수를 몇 년 내에 10만 명 늘리겠다는 것이다. 정말 책상 위에서 간단히 생각하고서 내놓은 정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에 중앙의 모 텔레비전의 보도를 보면, 우리나라 간호사들은 미국 간호사들에 비해 8배나 되는 환자들을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행정직이나 일반 의원에 근무하고 있는 간호사들을 제외하고 약 135.000여 명의 간호사들이 병원에 근무하고 있는데, 병원 간호사들의 담당 환자 수를 미국의 절반이 되도록 하는데도 10만 명 이상의 간호사들이 필요하다.

2018년 현재 새로 태어나는 간호사는 19.000여 명인데, 이것을 10년 이내에 10만 명 늘리기 위해서는 정년이 되기 전에 퇴직하는 간호사들이 없어야 할뿐만 아니라 매년 2~3천 명의 간호학생 정원을 늘려야 한다. 이것은 대학들의 수용 능력에도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지원할 학생들도 없다는 점에서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흔히 ‘장롱면허’라고 하는 미취업 간호사들을 병원 현장으로 끌어들여야 하는데, 이에 대한 대책은 안 보인다.

이미 언론에도 보도된 바와 같이 미취업 간호사들이 이처럼 많은 것은 열악한 근무조건 때문이다. 그 원인들을 살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는 야간 근무가 많다는 것이다. 다른 직장들도 야간 근무가 없는 것은 아니나 간호사들처럼 한 달에 낮 근무, 저녁 근무, 밤 근무를 번갈아 하는 경우는 드물며, 또 밤 근무자들 대부분이 남자다. 그런데 밤 근무하는 간호사들은 대부분 가임여성들이어서 육아 문제까지 발생한다.

둘째는 근무 강도가 다른 직장보다 훨씬 높다. 요즈음은 사람들을 직접 대하는 직종이 3D 직종으로 꼽히는데, 그 중에서도 간호사들은 가장 까다로운 환자들을 상대할 뿐만 아니라 예민한 보호자들을 덤으로 상대해야 한다. 그리고 일 자체가 까딱 잘못하면 목숨이 오가는 일이다 보니 여간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이 아니다. 요즈음은 환자가 갑질하는 세상인데 아직도 많은 국민들은 의료인이 ‘갑’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문제가 발생하면 일방적으로 환자 편을 드니 간호사들은 더욱 힘들다.

셋째는 보수가 박하다는 것이다. 명색이 대학을 졸업하고 국가 면허증을 땄는데, 경제적 대우는 일반 고등학교 졸업자들보다 조금 나은 정도에 불과하다. 그렇다보니 3~4년 근무하다가 ‘다른 것 하면 이만큼 못 벌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거기에다가 요즈음은 병원 인증 제도가 생겨서 간호사들에게 선진국에서 하는 것과 같이 일하라고 하니 더 힘들 수밖에 없다.

요즘 우리 병원도 인증 받느라 정신이 없다. 이 인증이라는 제도는 병원이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너무 심하다는 것이다. 지금 인증원에서 요구하는 것을 제대로 하려면 간호사들은 물론 모든 병원 직원들이 서류에 파묻혀 환자를 돌볼 시간이 없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 의료의 문제 중 가장 심각한 것이 3시간 대기에 3분 진료 하면서 환자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것인데, 인증을 통과하려면 서류 정리하느라 정작 중요한 환자들을 살필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인증을 최고 성적으로 통과한 모 대학병원에서 신생아들이 집단 사망하는 사고가 생길까!

대학병원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경제적 대우도 중소 병원에 비해 후한 편이고, 간호사 정원도 많다. 그러니 비교적 성적이 우수한 간호사들이 채용된다. 그런 곳에서조차 ‘태움’ 때문에 귀중한 생명을 잃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이 우리의 의료 현실이다.

인간은 시간에 쫓기면 잘못을 저지르게 되어 있다. 지금과 같은 의료 체계에서는 제대로 인력을 확보할 수가 없으니, 이런 일은 앞으로도 반복될 수밖에 없다. 내가 할 일이 태산인데 언제 후배들을 따뜻하게 가르칠 수가 있을까? 그렇다고 후배를 그냥 놔두면 사고가 생겨 연대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니 마음에 여유가 없다.

우리 국민 모두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이제 우리는 ‘싼 게 비지떡’이라고, 값싸고 좋은 것은 없다는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과 같이 미국 의료수가의 1/10로 미국과 같은 의료 혜택을 받으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사립대학 등록금이 10년째 동결되어 대학의 존립마저 위태롭다는 얘기들이 떠돈다. 아마 이대로 가다가는 몇 년 안 되어 많은 사립대학들이 문을 닫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의료보험이 시작된 1977년부터 따져 보면 대학 등록금이 의료비보다 더 많이 인상이 되었다. 병원은 대학과 마찬가지로 지출 중 인건비 비중이 높은 기관이다. 대학이 수입의 대부분을 대학 등록금에 의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병원은 진료비가 그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대학이 어렵다면 병원은 더욱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간호사 수급의 어려움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가?

이것은 간호학교 입학 정원을 늘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장롱면허자를 현장으로 끌어내야만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역발상의 자세가 필요하다. 열악한 근무 조건을 해결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간호사들이 그 역할에 합당한 대우를 받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좀 더 나은 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 더 많은 부담을 지겠다는 국민적 합의도 있어야만 한다. 지금 미취업 상태에 있는 간호사들 중에는 낮 근무나 저녁 근무만 하면 일할 수 있는 분들이 꽤 있다. 이 분들을 병원으로 끌어낼 수만 있다면 간호사 수급에 숨통이 트일 것이다.

우선 급한 대로 쓸 수 있는 대책은 밤 근무를 전담하는 간호사들을 확보하는 것이다. 밤 근무를 전담하는 분들에게 국가나 지방 정부가 혜택을 준다면 밤 근무를 지원하는 분들이 꽤 있을 것이라고 예상이 된다. 이렇게 해서 밤 근무를 제외하고 낮 근무와 저녁 근무만 해도 된다면 현장으로 달려올 장롱면허자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도민들 중에는 개인 사업장에 근무하는 분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여기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정부에서는 중소기업에 취업하는 청년들을 장려하기 위해 장려금을 주고 있다. 거기에 중소 병원도 포함하면 될 것이다. 현대에는 서비스업, 그 중에서도 복지 관련 직종이 가장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일자리 창출이라는 측면으로 생각하면 그리 문제가 될 것도 없다. 국가가 못 하면 지방 정부에서라도 하루 빨리 시행해서, 제주도의 가장 시급한 문제 중의 하나인 간호사 수급 문제를 전향적으로 해결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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