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김봉현/ 16회 외무고시 합격, 전 호주대사, 국립외교원 겸임교수, 제주대학교 초빙교수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리차드 도킨스는 1976년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라는 책을 발간하여 국제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 책은 자신만의 독자적인 생각은 아니었고, 우리에게 잘 알려진 다윈의 진화론을 바탕으로 여러 진화생물학자들이 오랫동안 연구해온 결과를 일반인들이 알기 쉽게 집대성한 것이다.

이 책은 발간되자마자 많은 관심과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이 책을 읽은 일부 학생들이 자신들의 운명은 유전자에 적혀 있는 대로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예정론 또는 결정론적으로 해석하여 허무주의에 빠지기도 하고 우울증에 걸리거나 심지어 자살하기도 하였다. 당연히 학부모들이 이 책을 강의하지 말라고 항의하는 서한을 보내기도 하였다.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보다 과학적으로 설명함으로써 철학, 신학,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등 모든 학문 분야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고대로부터 철학의 제 문제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와 관련되어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사상가들은 공히 인간은 동물과 다른 ‘그 무엇’(spark)인가를 가지고 있다고 전제하였다. 동양에서는 이 ‘그 무엇’을 리(理)라고 설명하였고, 서양에서도 이를 理性 또는 의식, 정신, 혼, 영(reason, consciousness, mind, soul, spirit) 등으로 설명하여 왔다.

그러나 동물과 달리 인간에게만 존재한다고 전제하는 理性, 의식, 정신, 혼, 영이란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실제로 존재하는지, 그리고 존재한다면 어떤 형식으로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뇌 과학 등의 분야에서 연구되고 있지만, 지금까지 과학적으로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도킨스 교수의 <이기적 유전자>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대하여 좀 더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하였다. 이기적 유전자는 첫째, 생존을 가장 중시하도록 프로그램 되어있다. 둘째, 스스로 개체수를 늘려나가기 위하여 프로그램 되어있다. 그리고 셋째, 개체의 질을 향상시켜 나가기 위하여 프로그램 되어 있다.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많은 이기적인 행동들을 보고 있으면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인가하는 것은 설명이 필요 없다. 그러나 인간들이 남들과 서로 협조하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희생하는 이타적인 행위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도킨스 교수는 인간의 이타적 행위는 없다고 한다. 인간들이 이타적이면 진화의 법칙이 작동하지 않게 되며 결국 인간은 벌써 멸종되었을 것이다. 인간들은 서로 이익을 취하기 위하여 맹렬하게 노력하고 경쟁하면서 인류를 발전시켜 왔다. 그리고 지구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인간들에게 나타나는 이타적 행위들도 결국 이기적 행위라고 한다. 자식을 위한 부모의 희생(kinship 관계에 의한 희생)도 결국 부모라는 이기적 유전자가 자기 개체의 확대 재생산을 보장하기 위한 이기적 행위이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서로 협조하는 것도 역시 상대방으로부터의 협조를 기대하거나 보장받기 위한 이기적 동기에 의하여 협조하는 것이다. 거지를 돕는 행위도 결국 자신이 그러한 처지에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나온 자기 보호적인 행위인가 하면 자신은 거지보다 우월하다는 우월감을 맛보려는 이기적인 행위인 것이다.

이러한 설명에 반발하는 주장도 강력하게 제기되기도 하였다.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그 무엇’이 존재한다는 주장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도킨스 교수의 설명을 구태여 잘 못된 것이라고 주장할 실익은 없다고 본다. 인간의 행위가 모두 이기적 동기에 의하여 발현되고 있다고 하여도 앞에서 본 바대로 서로 협조가 가능하며 남을 배려하고 돕는 것이 가능하다(여기에 관심있는 분들은 Axelrod 교수의 ‘evolution of cooperation’ 또는 이화여대 명예교수인 최재천 교수의 강의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인간들이 공동사회를 구성하여 살아가면서 이기적 동기에 의한 것이라고 해도 서로 돕는 것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이를 더욱 잘 발현될 수 있도록 하면 우리의 삶은 보다 행복해지지 않을까? 우리가 남을 돕는 행위가 이기적 동기에 의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동기를 더욱 활성화 시켜 나가면 공동체 전체가 이익을 보게 된다. 이러한 이기주의를 로버트 트리버스 교수는 호혜적 이타주의라고 하였으며,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인 하버드 대학 마이클 샌들 교수는 ‘이기적 미덕’이라고 하였다.

서구 사회에 정착되어 있는 시민사회정신(global citizenship)은 바로 이러한 호혜적 이타주의 또는 이기적 미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남을 도우면 결국 다른 사람도 나를 돕게 되며 이를 통하여 얻게 되는 이익은 지속적일 수 있다.

얼마 전부터 한국 사회에서는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이 말은 젊은 학생들의 미래가 암울하기 때문에 나온 말인 것 같다. 또한 한국인들의 일상에서 흔히 보는 무질서, 혼란, 불쾌감을 주는 행동들 때문이기도 하다. 질서를 잘 지키면 나에게 이익이 되어 돌아온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솔직해 지면, 결국 사회 전체가 고 신용사회가 되고 우리 모두에게 이익이 되어 돌아온다. 질서를 지키고 솔직해 지는 것이 인간만이 가지는 ‘그 무엇’의 명령이 아니고 이기적 유전자의 이기적 동기에 의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행동들은 결국 나에게 이익이 되고 사회 전체에게 이익이 된다는 점을 깨닫게 되고 이러한 이기적 행동들이 보편화된다면 우리 사회는 헬조선이 아니라 헤븐조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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