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4.3위령제 참석차 온 허영선 시인으로부터 '해녀들'이라는 시집을 받았다. 그 속의 시 몇편을 소개한다. "잠든 파도까지 쳐라"는 작품이다.

잠든 파도까지 쳐라!   

그리 약한 소리로 어떻게 파도를 넘느냐
그리 여린 소리로 어떻게 이 산을 넘느냐
이어싸나 이어싸 쳐라 쳐
그만한 힘으로는 어림없지
그만한 목청으론 어림없지
이 바다
저 고개를 넘을 땐 좀더 네 가슴속 잔해를 끌어모아라
검은 바위에 벼락치던 그 물살처럼
절도 산도 바닥까지 쳐라
​​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잠든 파도까지 쳐라
네 눈먼 사랑도 그렇게 쳐라
네 더러운 기억도 그리움도 쳐라
얼음꽃 핀 시린 가슴
애간장 뭉개진 가슴 끝까지
끌어올려 내려쳐라
제주해협을 건널 때
아주 못된 소리를 내야지
어떤 미련도 미움도 내려두고 가야지
서성이는 마음은 절벽 언덕에 버리고 가라
종잡을 수 없는 아린 곡조도
팽팽하게 부풀 대로 부푼 욕망도
아예 저 바다에 두고 가라
독하게
단 한 번에
쳐라!

해녀라는 직업에 대한 사회 인식이 낮았을 때도 도전적인 스스로의 삶을 개척한 오래 전 그 시대를 새롭게 조감한 진행형 응원가이다.
다음은 "태왁이 말하기를" 소개한다.

태왁이 말하기를

당신이 네게 준 이름은 '안녕'
가문 처음보다 더 크고 깊어진
빈 몸통 속으로 숨을 쉽니다
돌풍이 잠자는 바다 위에서
당신을 기디립니다 족쇄처럼
어제도 오늘도 그렇듯이
몸을 뒤집을 때마다
새로 피어나는 희망적 관측
당신이 낸 숨의 길을 따라
나는 흘러가고
흐르는 방향을 따라갈 뿐입니다
세차게 퍼득이는 당신의 젖은 가슴도
이제 비로소 분홍 물의 옷고 나울 시간
당신을 기다립니다
비로소 깊은 고통이 만들어낸 슴 터집니다
머리칼
심장
허파
끝까지 결연한 모든 세포를 모아
질주를 멈추지 않는 당신의 시간
나의 이번 생은 이 길 '안녕'
지긋지긋하지만
당신이 낸 길을 따라갑니다
오로지 깊고 먼바다에서 온 전갈을 타고
간곡하게 당신을 기다리는 일
그러나 당신과 나의 사랑은
이제 시작입니다


지금까지 해녀에 대한 시를 그런대로 많이 읽었지만 '태왁'을 의인화 시킨 시는 처음이다. 필자의 해녀에 대한 이미지는 언제나 우주를 연상 시킨다.

우주비행사들의 우주선 밖에 나와서 우주 유영 속에 작업을 하는 모습과 해녀들이 바다 속에서 해산물을 캐는 것과 오버랩된다.

태왁이라는 모선(母船)을 떠나 망망대해에의 바다 속에서의 작업은 가혹하지만 숭고하다. 해녀에 대한 모선(태왁)의 연민스러움은 가슴을 찡하게 한다.   
다음은 "어머니, 당신은 아직도 푸른 상군이어요" 작품이다.

어머니, 당신은 아직도 푸른 상군이어요

힘차게 난바다 밀어가던
대군의 노래를 오늘도 부르신다면,
어머니, 당신은 지금 젊은 상군이어요
젖은 발 아직도 물 밖 길을 걷는 나는
애기 상군일밖에요

나의 잠수는 아직도 멀고 멀었죠
생이란 살다보면
아프다 할 벗 하나는 있어야지
바다만 벗하지 마라
힘들면 힘들다 토하고 살아야지
바다에만 기대지 마라
다른 길 있으면 다른 길로도 가봐야지

그때는 알 듯 몰랐던 어머니 말씀
아직도 깊이 모를 단단한 물의 꿈
소리 없는 미소만 허공에 날리시는
어머닌 여전한 그날의 상군
론등 푸른 물고기의 거침없는 대열이어요
이미 죽은 줄 알았던
신경세포 하나하나 살아나
밤마다 물소리 듣는다면 어머니,
당신은 아직도 푸른 상군이어요

물위의 뭇별 안쓰럽다
지켜보는 어머니
난민처럼 붉은 잔해로 남은 저녁 바다에서
포기할 수 없는 분홍 한 점
망사리에 쓸어 담고 있다면
몰래 어느 돌 틈에 파종해둔 희망의 깊이까지
들고 계시다면
당신은 아무도 깊이 모를
푸른 상군이어요


"바다만 벗하지 마라/ 바다에만 기대지마라/ 힘들면 힘들다 토하고 살아야지/ 다른 길 있으면 다른 길도 가봐야지/
숙명처럼 바다와 살아왔던 모녀의 대물림은 우리를 엄숙하게 만든다. 가슴에 맺힌 서로의 말을 아끼면서 어루만지고 쓰다듬는 짤막한 서사시이다.   

끝으로 "몸국 한 사발"을 소개한다. 이 시는 시집 1부 해녀전의 25편 다음 2부 25편 중 두번 째에 게재되었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것은 "해녀들"이라는 시집이어서 해녀 시를 먼저 소개해야 했었다.

몸국은 오사카 동포 밀집지 이쿠노(生野)에서도 자리 다음 가는 제주 향토요리로서 시민권을 얻을 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있다.
몸국에 대한 추억들은 40대 이싱의 제주 출신이라면 모두 대동소이한 삶의 여운을 가슴에 안고 있을 것이다.

고향 제주에서는 일상적인 향토음식문화로서 신선함을 느끼지 못할런지 모르지만 이국의 오사카에서 이 시를 읽는 것은 별미 중의 별미였다.

몸국 한 사발

창밖에 폴폴 눈 내리는 날
그리운 바다가 화악 달려들었다
단 한 숟갈에도 몸을 살려주던 그것
돼지뼈 접짝뼈
한번 질펀하게 우거지에 국물을 내고
그 말갛게 싱싱한 바다의 몸
살짝 밀어넣어주면
순식간에 덮쳐오던 미친 허기
그 위로 접착제처럼 끌어당기던
배설까지 배지근 보오얀 홀림
아무 것도 걸칠 것 없는 바다의 식탁
몸이 몸을 먹다보면
저절로 몸꽃 피어너던,
성스러운
그 한 사발
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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