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9일은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맞서 강정마을 주민들이 반대대책위를 구성하고 투쟁한 지 4000일째 되는 날이다. 주민들은 아직 진상규명도 명예회복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이라는 이름을 뒤집어 쓴 해군제주기지가 점점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한다. '평화의 섬'에 걸맞지 않게 외국의 군함과 핵잠수함들이 드나들며 논란을 빚기도 하고 각종 폐기물을 배출로 비판을 받고 있다. 올해 10월 국제관함식을 열겠다는 국방부의 방침에 분명 강정마을은 총회를 통해 유치 반대 의사를 천명했다.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앞바다를 무기 진열장으로 만들 수 없다는 것. 그러나 국방부가 개최 여부를 명확이 밝히지 않고 있다고 주민들은 지적한다. 강정해군기지 반대투쟁 4000일 문화제를 맞아 강정지킴이들의 목소리를 4회에 걸쳐 싣는다. 그 첫 순서는 강정해군기지반대 운동에 동참해 딸기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선남 씨가 맡았다.<편집국>

 

해군기지가 들어서며 폭파되기 전의 구럼비.(사진=조성봉, 강정해군기지반대대책위 제공)

우리의 기억이 구럼비가 되어

낮이면 반팔을 입어도 될 만큼 봄이 성큼 다가온 4월 말이다. 제주에 와서 처음 봄을 맞았을 때, 한 낮 날씨만 생각하고 나갔다가 서늘한 바람에 움찔거렸던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제주의 봄은 육지보다 빠르다고는 하지만 동백도 지고 벚꽃도 진 후, 바닷물이 따뜻해지기 시작할 때 완연한 봄이 온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리고 이 짧은 봄은 금세 여름으로 바뀔 것이다.

제주, 강정에 살면서 느낀 봄과 여름의 시간은 짧은 찰나에 지나가 버렸다. 2011년 가을 펜스가 쳐지며 구럼비로 향하는 길목이 봉쇄 되고, 2012년 3월 구럼비 발파가 시작되며 공사 저지 활동은 봄볕과 여름 볕에 사람들을 내몰았다. 공사차량 먼지에 작렬하는 태양, 쉴 새 없이 몰려오던 육지 경찰 앞에 물을 마셔 보아도 갈증이 가시지 않았던 그 봄이 강정에서 맞은 첫 번째 봄의 모습이었다.

2007년 비민주적으로 해군기지가 강정에 유치되고 제주도민들이 나서고 강정 주민들이 앞장섰지만 중앙정부에서 하는 일은 이명박근혜 시대를 타고 완고하게 집행되었다. 2011년 강정에 와 지칠 대로 지친 삼촌들을 만났을 때, 더 일찍 오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전국에서 몰려드는 수많은 사람들과 연대의 손길을 강정에서 보며, 안타까운 마음은 아득한 희망으로 피곤했다. 그러나 우리가 많이 모일수록 경찰과 국가 권력은 몇 배의 힘으로 사람들의 목을 옥죄었다. 돌아오는 4월 29일이 강정해군기지 반대투쟁 4000일이다. 이 시간동안 700명이 연행되고, 60명이 감옥에 가고(벌금노역포함), 벌금이 3억원, 현재까지 남아 있는 재판도 30여 건이라 한다.

700, 60, 300,000,000 강정마을에 행해진 국가폭력을 단지 이 숫자들로 설명할 수 있을까. 한명 한명이 연행될 때 마다 벌어졌던 싸움과 사연, 아픔의 눈물을 어떻게 다 설명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들이 온몸과 마음으로 지키고자 했던 구럼비가 폭약에 의해 발파되고, 깨 부셔질 때 구럼비에 담겼던 이야기와 소망들도 깨어질 수밖에 없었다. 단지 숫자로 이야기 될 수 없는 깊은 절망과 고통이 ‘4000’이라는 숫자에 스며있다.

구럼비 바위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사진=송동효, 강정해군기지반대대책위 제공)

2016년 2월 해군기지가 완공되고 난 후 거대한 구럼비바위 위에 들어선 조악한 해군기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을 헤집는다. 미군들이 오고, 핵잠수함이 들어오고, 헬기가 날고, 군복 입은 군인들이 마을에 돌아다니는 모습. 머릿속에서 상상하던 일들이 하나씩 벌어질 때마다 북받치는 설움이 올라왔다. 지난날에 대한 회한 때문만은 아니다. 강정에 살며 듣는 구럼비에 담긴 이야기들 때문이다.

어린 시절을 보냈던 마음의 고향 구럼비에 머릿속에 복잡할 때마다 찾아가 앉아 있곤 했다는 이야기. 아이가 아플 때면 할망물 용천수를 떠다가 정성을 드렸다는 이야기. 발바닥에 화상을 입을 때까지 놀고 또 놀아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는 이야기. 삼촌들의 눈가에 희미한 웃음과 눈물이 번질 때 파괴된 것은 단지 바위가 아니란 걸 더 절절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4.3 당시에 구럼비에 몸을 숨겨서 겨우 살아난 마을 삼촌도 있었다. 용천수가 나고, 성게며 소라며 미역이며 먹을 것을 구할 수 있었고, 오랜 시간 만들어진 미로 같은 지형은 몸을 숨기기 좋았다 한다.목숨을 살려준 구럼비 이야기를 하던 어르신은 그런 곳에 해군기지를 지었다며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하셨다.

나는 육지 사람으로 아주 짧은 순간을 구럼비에서 보냈을 따름이다. 아주 특별한 추억이 있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맨발로 구럼비에 서서 범섬을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나에게 구럼비는 강정 삼촌들의 눈에 번지던 웃음과 눈물, 제주를 터전으로 가꾸고 지키고자 했던 제주 도민들의 굳건한 의지, 구럼비를 만나 삶의 터전을 옮겨온 동료들의 추억이 쌓이고 쌓인 것이다. 비록 구럼비를 잃었다 하더라도 잊을 수 없는 이유는 아직 이야기가 계속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해군기지하면 지겹다 고개부터 돌리는 도민들도 있다. 하지만 매년 거대한 힘으로 생명평화대행진을 후원하고 협력하는 도민들도 있다. 해군이 갈등을 치유한다는 명목으로 국제관함식을 강정에 유치하고자 했지만 강정앞 바다에서 전 세계 해군들이 군사력을 자랑하는 일은 용납할 수 없다고 여전히 굳건하게 생명평화마을을 지키려는 마을 삼촌들이 있다. 그리고 매일을 첫날처럼 춤추고 노래하며 강정에 사는 강정 지킴이들이 있다. 구럼비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늘도 계속 쌓인다.

돌아오는 토요일 4월 28일에는 강정 해군기지 반대투쟁 4000일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시간이 열린다. 구럼비에 설치되었던 예술작품을 재현한 ‘구럼비 설치예술 기억전’, 매주 목요일이면 강정을 찾아 시를 낭독하며 연대했던 김경훈 시인의 ‘강정목시’ 시집 출판기념회, 그리고 매일을 이어온 인간띠 잇기와 4000일 문화제가 열릴 예정이다. 구럼비에 얽힌 이야기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모여 구럼비이야기를 더 두텁게 쌓아 갔으면 한다. 소설처럼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고, 비핵화, 평화협정이 논의 되는 것처럼 구럼비도 그렇게 거짓말처럼 어느날 갑자기 우리에게 돌아오는 건 아닐까. <한선남-강정마을지킴이>

#관련태그

#N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