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서귀포의 한 마을에서 성희롱과 성추행 문제로 마을 내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현재 경찰 수사에 따라 마을이장은 직무정지가 된 상태이며, 법적 공방이 이어질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주민 간에도 찬반이 나뉘어 마을은 '태풍의 눈' 한 가운데에 있다. 주민 2백명 남짓의 작은 섬마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난 4월 말 기자는 서귀포시 A리의 마을이장 K씨가 직무정지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K씨가 같은 마을의 여성을 성추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는 것. 서귀포시청과 마을 해당 읍의 관계자는 이 문제를 판단하기 어려워, 경찰 수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에 이장은 읍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읍장은 이장 해임을 유보했지만, 여론이 악화되고 일부 주민들로부터 탄원서까지 접수되자 수사 결과 전까지 일단 직무정지로 방향을 잡은 상태였다.

A리는 매년 5월에 축제와 행사 등으로 마을의 가장 큰 관광수익을 올리고 있다. 게다가 최근 도와 대기업이 주도하는 프로젝트사업도 오픈했다. 이 문제가 불거져 이장이 공석이 되면, 축제에도 치명적일 수 있어 마을총회에서 이장 해임을 가결했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이에 기자는 사실확인을 위해 A리를 찾고 우선 피해를 입었다는 여성을 만났다.

◎"성희롱 이야기하는데 왜 정쟁과 얽나"

마을회관에서 만난 피해여성은 두 모녀였다. 어머니 B씨는 마을의 어촌계장을 맡고 있었으며, 딸 C양(27세)은 마을 사무장을 맡아왔었다. B씨는 수년 전 남편을 여읜 후, 최근 마을을 찾은 딸과 둘이서 지내고 있었다. 이들은 기자와 만나기 바로 전날 다른 언론사에서 나온 기사에 분개하고 있었다.

해당 언론사에서 자신들에게 아무런 연락조차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관련 기사를 올렸다는 것. 게다가 기사 내용은 마을이장의 입장만 실려있어 어머니 B씨는 언론사에 항의하고 있었다. 이 언론에 따르면 마을이장은 "전임 이장 고발건에 대해 협조를 해주지 않자 미투운동과 맞물려 해바라기센터에 고발하면서 문제가 불거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B씨는 "피해자가 가해자가 돼있는 상황"이라며 "마을에서도 모녀가 욕을 먹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날 인터뷰는 대체로 B씨와 이뤄졌다. C양의 심경이나 당시의 내용은 C양이 <제주투데이>에 보낸 메일을 토대로 재구성했다.

이번 일은 지난해 이장 선출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A리는 지난해 1월 31일부로 이장 임기가 완료되면서 새로운 이장을 선출해야 했다. 그러나 이렇다할 후보를 내지 못한 채 축제와 대형 프로젝트 사업을 앞두게 되면서 전에 이장을 맡은 바 있던 K씨가 물망에 올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K씨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던 B씨는 다른 주민들과 함께 찾아가 이장직을 맡아줄 것을 요청했다. 결국 K씨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마을 내 행사와 주요 프로젝트 수행에 참여하게 됐다. 그리고 B씨는 마을회관 업무를 지원하기 위해 자신의 딸 C양을 사무장으로 추천했다.

하지만 C양은 당시 업무를 전혀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토로했다. 마을회관의 컴퓨터에 해당 자료들이 거의 사라져있어서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었다는 것. 이 중에는 마을 예산과 관련된 자료들도 포함돼 있어 B씨는 이장에게 전임 이장을 고소하고 조사하자고 건의했다. 이장이 소극적으로 나서자 B씨는 자신이 직접 처리하겠다며 위임장을 요청했다. 그러나 결국 B씨는 위임장을 줄 수 없다는 답을 지난 2월에 전해들었다.

"제가 어촌계장이기 때문에 예의상 어르신인 이장님에게 위임장을 얘기한 것뿐이지 위임장은 사실 필요없어요. 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냥 하려면 백번도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빌미로 해서 명예회손에 무고죄로 나서겠다는 거예요."

이렇게 B씨와 이장 간에 골이 생긴 상황에서 이를 악화시키는 일이 발생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B씨는 딸 C양으로부터 성희롱과 추행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성추행, 성희롱 사건이 불거진 A리 마을회관 사무실의 모습@사진 김관모 기자

◎모녀에게 "좋아한다, 사랑한다" 문자·전화해
"얼굴 맞대거나, '팔배게 해주고 싶다', '같이 여행가자'는 말도"
"참 개방적이고 화끈한 것 같다"는 말도 해

C양은 지난해 5월부터 10월까지 자신이 일하는 동안 마을이장 K씨가 성희롱과 성추행을 해왔었다는 것이다. 삼촌·아빠뻘인 이장이 자신에게 동의도 없이 갑자기 다가와 얼굴을 비비거나, 여름 가디건을 입고 오자 "자기를 유혹하려는 것이냐"거나 "둘이서만 여행가자"는 등의 말을 서슴없이 던졌다는 것.

한번은 C양이 태풍이 불던 날 혼자 집에서 자게 되자, 이장이 "자신에게 전화하지 그랬느냐"며 "당장 달려가서 팔배게 해주고 껴안고 잤을텐데"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이장이 수시로 남자 이야기 등 개인사를 끄집어냈으며, "OO는 참 개방적이고 화끈한 것 같다. 남자랑 무슨 일이 있어도 여기저기 얘기 안 할 것 같다. 여자는 그래야 한다"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고 밝혔다.

결국 C양은 10월에 마을을 떠났다. 이후 마음이 안정되고 다시 2월에 엄마가 있는 마을을 다시 찾았고, 그날 저녁 자신이 돌아온 것을 알게된 마을이장이 자신에게 전화를 해왔다. C양이 들려준 전화통화 내용에 따르면, 이장은 C양에게 마을 대합실 개통할 때 판매원 역을 권유하면서 "내가 OO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아느냐"거나, "OO는 남자관계나 연인관계가 화끈해버려가지고 그게 결점이다"라는 말을 했다. 이에 C양은 이런 이장의 말에 수치심마저 느꼈다고 토로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아버지뻘의 남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듣으면서 "살인충동까지 느꼈다"고 말했다.

"특히 자신에게 얼굴을 들이댔을 때의 악취로 게워내기도 했었으며, 자신을 데려온 어머니를 원망하기도 했었다"고 C양은 말했다.

▲현재 서귀포시 A리에서는 성추행, 성희롱이 마을에 알려지면서 2차 피해가 일어나고 있다. 위의 사진은 해당 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자료사진 제주투데이

B씨는 딸이 그간 자신이 당했던 내용을 직접 쓴 글까지 보자 충격을 받았다. 그러자 B씨는 지난 2월 말 마을 포제가 있던 날 새벽 3시경 이장이 자신에게 보냈던 문자가 떠올랐다. 문자에는 "너무나 사랑했고 갖고 싶었고 지구 탈출할 정도로 사랑하고 싶었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이장이 자신에게 느닷없이 고백에 가까운 문자를 던졌던 것이다. 한번도 두 사람 사이에 연애 비슷한 감정적인 관계가 없었기에 당시 B씨는 이장이 술에 취해서 그러나보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2,3일도 채지나지 않아서 자기 딸에게 성희롱을 했다는 말을 들은 것.

이에 B씨는 이 문제를 두고 이장에게 따지자, 이장은 사실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C양을 아껴서 한 말이지 성추행이나 희롱할 의지가 전혀 없었으며, C양의 내용이 100% 사실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이장은 "법적으로 책임질 일이 있으며 지겠다", "나를 꼭 이렇게 죽여야 하느냐"며 위임장을 써주지 않은 것에 대한 앙갚음 아니냐고 반발했다. 결국 C양은 해바라기센터에 이 문제를 신고했고, 경찰 수사가 시작됐다.

B씨는 "이장은 'OO야, 너에게 상처주었다면 미안하다'라는 식으로만 사과를 했다"며 "자기 딸이 이런 일을 당해도 이렇게 넘어갔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모녀만 있으니까 이렇게 마음대로 하는 것 아니겠어요. 남편이 있었어도 저에게 이런 문자를 보내고 제 딸에게 그렇게 대했을지 모르겠어요."

B씨는 "이장의 성문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며, K씨는 강간과 성추행 등으로 검찰에 조사를 받기도 했었다"며 "이런 인물인 줄 알았다면 이장으로 추대하거나 딸을 사무장으로 일하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K씨는 2014년 같은 마을의 다른 여성을 강간했다는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았지만,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받은 바 있다. 하지만, 이 일은 마을 해녀들 사이에서 알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라고 B씨는 말했다. 이외에도 아직까지 숨기고 있는 마을여성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B씨는 언급하면서 “이런 사람이 또다시 법망을 피해가서 계속 마을에 있으면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B씨와 C양은 2차 피해도 받고 있었다.  B씨는 "제주도청이나 시청에서는 이장과 정분이 났었다가, 딸까지 얽힌 문제라고 소문이 나있었다"며 “마을에서도 거짓말을 하고 이장에게 앙갚음하려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었다고 전했다.

C양는 "이날 이후 이장 내외가 저와 어머니가 헛소문을 퍼뜨리고 다닌다고 떠벌리고 다녀, 마을 사람들의 눈초리가 변했다"며 "내 개인적인 감정은 일단 둘째치고 집안을 들먹이며 욕하던 사모님(이장 부인)을 보며 가해자면서 거짓으로 남의 집안 이미지를 실추시키며 우리를 얕보고 기만했던 대가를, 그 이상으로 치르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두 모녀는 마을의 시선에 주눅 들지 않고 이 모든 일을 알리고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때일수록 더욱 당당하게 나서려 합니다. 죄인이 죄를 받아야지 우리가 피해자인데 왜 숨어드나요. 우리가 나서야 그동안 피해를 입었던 여성들, 앞으로 피해를 당할지도 모르는 여성들에게 도움을 줄 수가 있어요. 이번 일이 제대로 해결되기 전까지 절대로 멈추지 않을 겁니다."

▲이번에 성추행,성희롱 혐의가 발생한 A리의 모습@사진 김관모 기자

◎이장, "사실과 다르다"...정쟁에 따른 앙갚음 강조

반면, 이장 K씨는 이같은 두 모녀의 이야기에 반발하면서 억울하다는 입장이었다.

K씨는 <제주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마을회관 컴퓨터에 자료가 없었다고 하지만 실제로 자료들이 다른 곳에 있었다. 전임이장 문제도 심증만 있지 물증이 있는 것도 아닌데 고소를 위해 위임장을 써달라는 법이 어디있느냐면서 써주지 않겠다고 했다"며 "바로 그 일이 있고 얼마 안 지나서 B씨와 일가친척들이 와서 성희롱으로 고소하겠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즉, K씨는 이 일이 위임장 문제를 돕지 않은 앙갚음으로 나선 것이라고 이번 일을 해석하고 있었다.

K씨는 위임장과 관련해서도 "B씨가 총회 때 장부문제로 공금횡령을 의심받아 전임이장으로부터 어촌계장을 그만두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으며, 전임이장에게 폭행을 당한 적도 있었다"며 "이 일 때문에 전임이장을 고소하려 한 것 아닌가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C양이 언급했던 피해사실에 대해서도 "컴퓨터를 다룬다고 해도 뉴스나 인터넷 바둑 두는 수준이어서 제대로 할 줄 모르기 때문에 배우려고 얼굴을 가까이 댄 것이었고, 장부를 함께 보려면 가까이 앉아야 하기 때문에 그랬던 것 뿐"이라며 성희롱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부인했다.

K씨는 "미투한다고 하니 고소하려면 고소하라고 했다"며 "이장직을 오랫동안 해오다보니 그냥 넘어갔지만 무혐의로 끝났던 강간문제도 다시 걸고 넘어지고 있으니 이대로라면 무고죄로 맞고소할 생각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서귀포경찰서에서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다음 주 중에 수사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하지만 경찰 발표와 상관없이 이번 일을 둘러싼 미투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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