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제주국제자유도시다

6.13 지방선거 40일도 남지 않았다. 주말부터 제주도지사 예비후보들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이 잇달아 열렸다. 선거 초판 판세는 더불어민주당 문대림 예비후보, 무소속 원희룡 예비후보의 양강 구도다. 자유한국당 김방훈 예비후보, 바른미래당 장성철 예비후보, 녹색당 고은영 예비후보가 양강 구도에 도전하고 있다.

선거전이 치열해지면서 과열, 혼탁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도덕성 검증도 본선에 돌입하면 공방이 더욱 치열해 질 것이다. 인물, 구도, 정책. 선거의 당락을 좌우하는 세 가지 요소다. 지금까지 프레임은 도정 심판과 적폐청산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선거의 정책 이슈는 무엇이 될 것인가. 난개발, 교통, 부동산, 쓰레기 요일별 배출제 등을 두고 각 후보 진영 간 정책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정책 공방 중에서 가장 핵심은 ‘제주국제자유도시’라는 지난 10여 년 동안의 제주비전에 대한 평가다.

최근 한 언론에서 ‘제주국제자유도시’ 비전에 대해서 각 후보 캠프에 질문을 던졌다. 도민 사회 일부에서 일고 있는 성장지상주의 국제자유도시 비전을 폐기하자는 여론에 대한 후보들의 판단을 묻기 위한 것이었다.

더불어민주당 문대림 예비후보, 자유한국당 김방훈 예비후보, 바른미래당 장성철 예비후보와 무소속 원희룡 예비후보는 ‘개발중심의 국제자유도시 비전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답변했다. 녹색당 고은영 예비후보만 국제자유도시 비전 폐기를 주장했다. 하지만 국제자유도시 비전 유지를 주장하는 예비후보들도 제주특별법 1조 목적조항의 수정 보완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했다. 환경친화적 국제자유도시(문대림), 도민 주체가 되는 국제자유도시(김방훈), 친환경적이며 도민의 삶의 질 향상(장성철) 등 의견은 다소 달랐지만 목적조항 수정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이러한 목적조항 수정이 제주국제자유도시 비전을 향해 달려오면서 발생한 제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점은 따져봐야 한다. 1조 목적조항만 수정하면 10여 년 동안 ‘국제자유도시’라는 비전을 향해 달려오면서 생겼던 부작용을 해결할 수 있을까. 현재 특별법 1조 조항부터 보자.

“이 법은 종전의 제주도의 지역적·역사적·인문적 특성을 살리고 자율과 책임, 창의성과 다양성을 바탕으로 고도의 자치권이 보장되는 제주특별자치도를 설치하여 실질적인 지방분권을 보장하고, 행정규제의 폭넓은 완화 및 국제적 기준의 적용 등을 통하여 국제자유도시를 조성함으로써 국가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목적 조항에 ‘도민 주체 개발’, ‘도민의 삶의 질 향상’을 넣는다고 해서 ‘국제자유도시’라는 개념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현행 법에서는 “국제자유도시”를 사람·상품·자본의 국제적 이동과 기업활동의 편의가 최대한 보장되도록 규제의 완화 및 국제적 기준이 적용되는 지역적 단위를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사람, 상품, 자본의 국제적 이동, 기업활동의 편의, 규제 완화가 국제자유도시의 핵심이다. 이것을 바꾸지 않고 과연 도민주체, 친환경적 국제자유도시가 될 수 있을까.

‘제주국제자유도시’는 어떻게 제주의 비전이 되었는가. ‘제주국제자유도시’라는 지역 개발 모델은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만들어낸 ‘우연’의 결과물이 아니다. 그 배경에는 1963년 제주도종합개발계획 수립 이후 지속된 국가차원의 지역 근대화 전략이 있었다. 제주 개발을 위해서는 중국자본을 비롯한 외국인 투자 유치 확대가 필요하다는 의견과 이대로 가다가는 제주가 중국 경제에 종속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의 간극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발과 성장’이라는 국가의 근대화 기획이 제주라는 지역에 기입되어 갔던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54년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되면서 제주 4·3항쟁에 대한 군경의 무력진압은 마무리됐다. 여전히 5명의 무장대가 한라산에 남아있었지만 군경은 ‘성공한 토벌’에 대한 자신감을 숨기지 않았다. 가혹했던 진압 이후 제주의 과제는 ‘재건’이었다. ‘재건’이 지상과제로 떠오르면서 이승만도 ‘제주개발’을 내세우면서 ‘낙토 건설’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하지만 ‘사태’ 수습이 우선시되면서 실질적인 개발의 프로젝트는 성사되지 못한다. 자유당 정권의 부패와 무능, 그리고 4·19혁명 등 정국 혼란이 계속된 것도 원인이었다. 1961년 박정희가 쿠데타로 집권한 직후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에서 근대화 기획이 마련되기 시작했다. 쿠데타 직후였던 1961년 6월에는 ‘혁명정부’ 내각 자격으로 한신 내무장관, 장경순 농림부장관, 장덕승 보사부장관이 제주를 방문했다. 3개월 후인 9월에는 국가재건최고위원회 의장 자격으로 박정희가 제주를 찾았다.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는 ‘전국초도순시’ 첫 방문지로 제주를 선택했다. 이 자리에서 박정희는 한라산 횡단 도로 개설과 제주를 홍콩·하와이 같은 관광지로 발전시키겠다고 밝혔다. ‘관광입국’이라는 개발 프로젝트의 실질적 시작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돈’이었다. 국민소득이 85달러도 안 됐던 시절이었다. 쿠데타 세력이 세웠던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1년)도 파행을 겪을 정도였으니 지역개발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할 예산 역시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박정희의 방문 이후 지역에서는 근대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이때 쿠데타 세력이 ‘발견’한 집단이 ‘재일동포’였다. 이미 1920년대 이후부터 일본 오사카 지역을 중심으로 방적공장과 고무공장의 노동자로 일하던 제주인들이 있었다. 이들은 식민지 시기 경제력을 바탕으로 마을 단위의 향우회를 조직해 고향 제주에 자발적인 개발기금을 지원하기 시작한다. 마을마다 학교가 만들어지고 여러 사회 기반시설도 늘어나게 된다. 식민지 시기 제주는 사실상 오사카 경제권에 편입되면서 활발한 경제교류를 이어갔다.

해방 이후 일본에 남아있던 재일제주인들의 자금 지원이 불가능해지면 지역 경제가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됐다. 경제적 측면에서 보자면 해방은 일본 경제권과의 ‘폭력적 단절’이자 미군정 시장경제체로의 ‘강제적 편입’을 의미했다. 해방 이후 제주지역에서 밀무역이 성행하고 이를 빌미삼아 모리배들이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이 작용하고 있다. 쿠데타 집권 세력은 식민지 시기 재일제주인과 제주와의 자발적 경제 교류와 지원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해방 이후 일본과의 외교 관계가 단절된 상황에서 ‘일본 자본’인 재일제주인들의 자금을 ‘합법적’으로 들여오기 위해서는 법을 바꿔야 했다. 박정희는 집권 직후부터 한일회담에 매달리는 동시에 일본에서 남한으로 돌아오는 ‘귀국자’들의 재산반입 제한 조치를 철폐한다.(1963년) 이 과정에서 제주 출신 재일제주인의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제주 전 지역 또는 제주시 일원을 ‘자유지역’으로 규정하는 ‘제주자유지역계획’이 논의되기 시작한다. 이 같은 움직임은 제주를 반공국가의 예외 지대로 설정하면서 근대적 기획을 수행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가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제주를 ‘자유지대’로 설정하려는 움직임은 이후 박정희 정권을 시작으로 꾸준하게 제기되었다.

이러한 정부의 자유화 움직임에 대해서 당시 제주의 주류 지식인들은 찬성 입장을 보였다. 그들은 자유화는 제주지역에 개발과 성장이라는 근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여겼다. ‘제2의 하와이’라는 담론은 4·3 이후 ‘절멸’ 수준으로 초토화됐던 지역에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다. 이러한 담론의 영향력은 오랫동안 제주사회를 지배했다. 제주에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하는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하자 새로운 제도가 제주를 홍콩과 싱가포르가 결합된 새로운 도시로 만들어 줄 것이라는 희망이 넘쳐났다. ‘제2의 하와이’ ‘제2의 홍콩·싱가포르’라는 개발에 대한 낙관적 전망은 1960년대 이후 지속된 ‘개발’ 담론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주목할 것은 ‘자유화’로 상징되는 ‘예외지대’의 구상이 1998년 ‘제주국제자유도시 추진 방침’으로 실현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1991년 제정된 ‘제주개발특별법’이 지역에 배타적으로 적용되는 법제도의 지역적 성격을 강화했다면 2001년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은 기존의 ‘제주개발특별법’에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체제 편입이라는 시대적 맥락이 더해지면서 ‘완성’됐다. 한마디로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은 제주를 남한 사회와 다른 일상화된 ‘예외공간’으로 만들어 간 신자유주의적 기획이라고 할 수 있다.

부동산투자이민제도 도입 이후 중국인들이 제주의 토지를 집중적으로 매입하면서 불거졌던 여러 논란 중에서 가장 예민한 문제를 떠올려 보자. 그것은 바로 ‘제주가 중국 땅이 되는 것 아니냐’는 영토 주권 훼손에 대한 우려였다. 하지만 지역 사회에서 중국인 토지 보유 문제를 보는 시선은 중층적이다. 중국인을 비롯한 관광객의 증가, 이주민의 유입, 그리고 국제자유도시 건설이라는 정책적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각종 개발이 진행되면서 제주 지역사회에는 지역 정체성이 무너질 수 있다는 염려가 나오고 있다. 이는 단순히 제주의 토지가 중국인에게 잠식된다는 영토 주권의 문제뿐만 아니라 제주 환경의 훼손과 문화적 정체성의 위협까지도 포함한다.

중국인들이 제주 생태의 ‘허파’라고 불리는 중산간 일대 ‘곶자왈’ 지대를 집중적으로 매입, 개발하면서 난개발의 주범으로 꼽히고 있는 데에는 토지의 ‘국적’ 문제만 아니라,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이후 계속되고 있는 개발 정책에 대한 근본적 불신도 자리 잡고 있다. 2002년 제주국제자유도시를 추진하기 위해 세워진 국토부 산하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에 대한 제주 사회의 불신은 중국인들의 제주 토지 잠식에 뒤지지 않는 문제이다.

JDC는 출범 이후 첨단과학기술단지, 영어교육도시, 헬스케어타운, 신화역사공원, 항공우주박물관을 핵심 사업으로 선정했다. 계획은 장밋빛이었지만 정작 추진 과정은 쉽지 않았다. 2008년 전 세계적 금융 위기로 투자를 약속했던 기업들이 손을 떼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JDC는 ‘중국’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핵심사업 중 제주신화역사공원과 제주헬스케어타운, 제주예래동 휴양단지 조성사업 등 주요 사업은 모두 중국계 기업이 최대 투자자가 됐다. 중국인들의 제주 토지 보유의 증가는 토지의 문제가 아니라 제주 개발의 핵심 주체로 중국계 기업이 등장하면서 발생한 개발의 문제이다.

JDC가 사실상 굵직한 제주 개발을 추진하는 주체이지만 이 조직에 대한 제주 사회의 견제와 감시 권한은 없다. 국토부 산하 기관이기 때문이다. 제주도의회가 개발문제와 중국인 토지 보유 등 민감한 지역 현안을 다루기 위해 JDC 임원진의 출석을 요구했지만 JCD는 이를 거부했다. 제주 사회의 통제를 받지 않는 개발 주체의 탄생은 JDC 출범 이후 꾸준히 지역 사회의 골칫거리가 됐다. 지난 총선에서도 JDC를 제주도로 이관하는 문제가 공론화되기도 했다. 중국인들의 제주 토지 보유 문제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왔던 제주대학교 K 교수는 사석에서 “JDC가 관군처럼 제주를 점령하고 있다”면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 같은 인식은 중국인 토지 보유 문제로 인한 영토 주권 훼손이 제주사회 혹은 제주 내부에서 용인되고 방관되어 왔던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식민성이 영토와 소유의 문제이고, 지리와 권력의 문제라고 할 때 이와 같은 영토의 ‘예외지대’는 국가가 영토의 내부에 식민지대를 생산하고 이를 용인하는 태도라고 볼 수 있다. ‘제주국제자유도시’는 ‘사람·상품·자본의 자유로운 이동’과 ‘기업의 경제활동 보장을 위한 규제완화’라는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국가 간 경계를 허물어버리는 신자유주의적 이동의 보장은 시민권의 유연한 적용이 전제되어야 한다. 5억 원 이상의 휴양 시설을 매입하면 거주권과 영주권을 부여한다는 발상은 시민권의 예외를 인정하는 태도이다. 자본에 한해서만 예외를 적용하는 이러한 시민권의 부여가 ‘제주특별자치도’라는 지역의 자치권을 보장하는 제도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 것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쉽지 않은 문제다.

하지만 ‘국제자유도시’라는 자유 지대의 설정이 ‘지역의 자유’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겉으로는 평화의 섬을 내세우고 있지만, 제주의 평화는 사실 자본과 권력의 ‘평화로운 지속’이라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허울 좋은 가면에 불과하다. 2018년까지 한시적으로 적용하려던 부동산투자이민제는 2023년까지 연장됐다. 이렇게 된 데에는 제도의 부작용을 외면한 중앙정부(법무부)의 판단이 크게 작용했다. 제주도는 앞으로도 대한민국이라는 영토성의 예외지대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예외지대는 ‘고도의 자치권 부여’라는 특별자치와 정면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영토 주권의 예외는 인정하면서도 지역의 자기결정권은 용인하지 않는 중앙 정부의 식민주의. 그것이 제주국제자유도시의 핵심이다.

문제는 목적조항 수정이 아니라 국제자유도시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이다. 하지만 도지사 후보들 누구도 그것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읽어서 화제가 된 비통한 자를 위한 정치학의 저자 파커 J 파머는 정치를 이렇게 정의한다. “공동체를 창조하기 위한 오래되고 고귀한 노력”. 그러면서 마음이 부서진, 비통한 자들을 끌어안기 위한 평등하고 정의롭게 자비로운 세계의 창조가 필요하다고 한다.

지난 10년 동안 ‘국제자유도시’라는 비전은 제주도민들의 마음에 상처를 줬다. 선거가 도민들의 상처를 감싸 안는 새로운 비전의 제시, 그리고 창조적인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용기의 경합장이 되어야 한다면 이제 후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목적 조항의 수정이 아니라 국제자유도시라는 비전의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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