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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철] 살아 숨쉬는 대지, 옐로우스톤이영철/ 한솔제지 퇴직. 트레킹작가. 세계 10대 트레일 완주
제주투데이 | 승인 2018.05.17 05:02

[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이영철/ 한솔제지 퇴직. 트레킹작가. 세계 10대 트레일 완주/ 저서 4권/ 안나푸르나에서 산티아고까지/ 동해안 해파랑길/ 영국을 걷다/ 투르 드 몽블랑

미국의 3대 국립공원을 떠올려보자.

가장 먼저 그랜드캐니언이 생각나지 않을까.

그 다음으로 요세미티와 옐로우스톤일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셋 중 어디를 더 많이 갔을까?

대략 3대 2대 1 정도일 거라 짐작된다.

이런 비율은 교통편 등 접근성 차이도 꽤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국 지도를 놓고 보면, 그랜드캐니언과 요세미티는 LA나 샌프란시스코에서 자동차로 쉽게 갈 수 있는 거리다. 반면 옐로우스톤은 아무리 봐도 큰 도시와는 거리가 너무 멀다. 차로는 1박 2일 걸릴 듯하고 비행기로 가는 게 적당해 보인다. 그럼에도 그곳까지 가야할 이유는 많다. 미국을 넘어 세계 최초로 지정된 국립공원인 것이다.

150년 전 이곳을 처음 발견하고 돌아간 이들은, 그들이 본 것에 놀라워하며 사실대로 주위에 이야기했지만 듣는 누구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땅과 호수가 흔들리고, 거기에다 땅이 숨을 쉬듯 주기적으로 뭔가를 뿜어낸다고 하는 말이 먹힐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랜드캐니언과 요세미티에 중후장대의 화려한 수식어가 많이 동원되지만 옐로우스톤에 비하면 움직임 없는 정물이나 다름없다. 옐로우스톤의 자연은 역동적이다. 150년 전과 똑같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공원 북쪽 일대의 매머드 핫 스프링스와 노리스 간헐천 일대를 걷노라면 알 수 있다. 발바닥을 통해 그르렁그르렁 생생한 진동이 느껴진다. 심장이 뛰고 있는 대지의 맥박이며, 거칠게 몰아쉬는 대지의 숨결인 것이다. 머드 볼케이노나 웨스트썸 간헐천 등 옐로우스톤 어디를 걸어도 실감할 수 있다. 생명체로서의 대지가 우리 두 발 아래에서 쉼 없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간헐천은 뜨거운 물과 수증기 그리고 여러 종류의 가스를 일정한 간격에 따라 정기적으로 내뿜는 온천을 말한다. 전 세계 간헐천의 3분의 2가 옐로우스톤에 몰려 있다고 한다. 남쪽 지역에 있는 올드 페이스풀은 이 공원의 상징이자 하이라이트 지점이다. 주변을 걷던 이들이 정해진 시간만 되면 이곳으로 모여든다. 수십 미터 높이까지 분출되는 온천수를 구경하기 위해서다.

오랜 세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일정한 횟수만큼 약속된 장관을 연출해준다. 한 시간 반 간격을 두고 고압의 온천수를 주기적으로 뿜어낸다. 마치 인간이 그 빈도와 시간을 맞춰놓은 공원 속 분수처럼 정확하게 작동한다. 등에서 물줄기를 뿜어내는 바다 속 거대 고래의 생명력이 옐로우스톤 대지에서 느껴진다. 50미터 넘게 솟구쳐 오르는 물줄기가 5분 가까이 굉음을 일으킨다. 모여든 여행객들이 질러대는 환호 함성과 어우러져 멋진 화음을 만들어낸다.

반지름 6천여 킬로미터의 둥그런 지구에서 우리가 발 딛고 선 단단한 지각은, 그 두께가 고작 몇십 킬로미터밖에 되지 않는다. 지각 아래의 땅덩이 절반 가까이는 뜨거운 맨틀층이다. 완전 고체도 아니고 완전 액상도 아닌, 물컹하고 점도 높은 유체에 가깝다. 화산의 분화구처럼 틈만 보이면 어디로든 분출하려는 뜨거운 욕망을 숨긴 채, 우리의 발아래를 유유히 흐르고 있는 것이다.

옐로우스톤 일대의 지표면은 지질 구조상 맨틀층과 가장 가깝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얇은 지각층의 지하수는 뜨거운 맨틀과 가까워 당연히 뜨겁게 달궈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끓어오른 지하수가 전기밥솥이 내뿜는 증기처럼 꾸역꾸역 지표면으로 솟아오른다. 온천과 간헐천 같은 뜨거운 지질 구조가 생겨나는 이유 중 하나다.

옐로우스톤은 또한 야생동물과 인간이 평화롭게 조우하는 특별한 곳이기도 하다. 수많은 서식 동물들 중에서도 아메리카 들소인 바이슨과 사슴의 일종인 엘크 그리고 곰, 이들 세 종류가 옐로우스톤을 대표한다. 누군가 멀리서 곰 한 마리라도 발견할라치면 소리를 지르고 난리가 난다. 주변에 있던 모두가 곰 쪽을 향해 길을 멈추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바쁘다. 워낙 멀어 보일락 말락 한데도 '나 드디어 곰 봤다!' 하는 듯 모두가 즐겁고 흡족한 표정들이다.

들소인 바이슨은 워낙 자주 보여 시간이 갈수록 심드렁해진다. 여러 마리가 떼를 지어 도로를 막는 바람에 차량들이 정체되기 일쑤다. 덩치들이 워낙 거대해서 차나 사람들에게 달려들지나 않을까 겁도 나지만 대체로 양순한 편이다. 일상에선 쉽게 볼 수 없는 야생동물들을 만나는 것도 정겹지만, 그들을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더 정겹고 재미있는 곳이 옐로우스톤이다.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은 제주도 면적의 다섯 배에 가깝다. 그러나 일부 핵심 지역만 관광용으로 개발되어 이들 주변은 아라비아 수 ‘8’자 모양의 도로로 잘 연결되어 있다. 총 거리 250킬로미터이니 제주도 둘레와 거의 비슷하다. 공원을 대표하는 십여 군데 명소를 다 둘러보려면 최소한 2,3일이 걸린다. 효율적인 동선계획을 여행 전에 미리 짜서 렌터카를 이용하는 게 좋다.

공원은 매년 5월부터 9월까지만 개방한다. 공원 안에 몇 개의 호텔과 펜션이 있으나 비싸고 예약이 쉽지 않다. 공원 인근에 있는, 자동차 1시간 거리의 숙소 등을 이용하는 것도 효율적인 방법이다.

생명체가 갓 태동하던 시대의 원시 지구 한 켠에서, 트레킹과 드라이브를 동시에 즐기며 더블플레이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이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이다. 공원 바로 남쪽에 이어진 그랜드티톤 국립공원도 이왕이면 들렀다 가야 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

샌디에이고에서 갓 결혼식을 마친 한국인 신랑과 중국인 신부는 신혼여행 대신에 효도여행을 택했다. 여행 경비 일체를 부모들이 부담하는 것이니 딱히 효도여행이라 말하기도 뭣하다. 엄격히 말하면, 일주일간 미국을 여행하는 각자의 부모를 위하여 무료로 가이드와 운전기사 역할을 해주는 것. 부모를 위한 노력봉사가 결혼식 갓 마친 신혼기간에 이뤄진다는 게 기특하다면 기특하달 수 있다. 둘 다 큰돈이 들어가는 유학생 신분이니만큼 부모 입장에서 보면 기특하다기보다는 자식들의 당연한 의무였다.

암튼 부부는 신혼 첫날밤만 보내고 아침이 밝자마자 각자의 부모를 모시고 제각각의 여행지로 떠났다. 중국에서는 할머니 두 분까지 포함된 대가족이어서 새신부는 여행 동선을 단순하게 잡았다. 중국인 신부 가족이 그랜드캐니언을 향해 라스베이거스로 떠나는 모습을 배웅한 후 곧바로, 한국인 신랑과 부모도 다른 여행지로 출발했다.

부모가 안 가본 여행지만 골라서 새신랑은 나름대로 세심하게 여행 계획을 짰던 모양이다. 시작부터 북부 내륙 깊숙히 와이오밍 주까지 들어가는 동선이라 부모에게는 신선하고 새로운 여행 경험이었다. 옐로우스톤과 그랜드티톤, 조수아 트리와 팜스프링스를 거치는 여행지 모든 곳이 너무도 만족스러웠다. 그 중에서도 딱 한 곳만 꼽으라면 역시 옐로우스톤이 단연 최고.

두 번 비행기 타는 외의 모든 교통편은 새신랑인 아들이 직접 운전하는 렌터카였다. 이동하는 내내 아들이 차내에서 틀어주는 음악의 선곡도 아버지는 몹시 마음에 들어했다. 그 중에서도 누자베스Nujabes의 음악 한 곡은, 워낙 많이 반복을 요청해 들은 탓에 귀국 후에도 애청곡이 되었다. 여행에서 자주 들은 음악이 아들과의 여행 추억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해주는 좋은 매개가 된 것이다.

어쨌든, 신혼부부에게 미안할 법도 했지만 양가 부모들은 당연한 권리를 누리는 듯 의기양양했던 모양이다. 몇 년이 지났지만 부부는 학업 때문에 여전히 신혼여행을 못 갔다. 그럼에도 한국과 중국의 양가 부모에겐 미소가 절로 떠오르는 좋은 여행의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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