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심(作心)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는 뜻이다. 과격한 듯 하나 나같이 흐지부지한 성격에는 꼭 필요한 말이다.

그래서 나는 등단할 때 작심을 했다. 칼을 뺏으면 무라도 잘라야 된다는 심정이었다. 거친 표현이지만그런 각오였다는 얘기다.

생각해 보면 살아오면서 그런 의식은 내 인생에서 한번도 없었다. 주부였을 때도, 대학원 공부를 할 때도, 사랑을 할 때도 없었다.

그런데 최근에 느낀 게 있다. 이 작심이라는 게 하면 할수록 여성다움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느낌이 든다.

여성스러움이란 무엇인가를 새삼스럽게 논할 생각은 없다. 아무튼 작심할수록 뭔가 본능적으로 외로워지는 것은 사실이다.

작심하지 않으면 작가 같은 직업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1년 내내 하루 종일 작심하는 것은 아니다. 등단해서 올해로 10년째이다. 10년동안 한 두번 있을까 말까 한 얘기다.

얼마 전 TV 드라마 극본을 쓸 때였다. 내가 썼던 드라마의 대사를 감독이 촬영 전날 자기 마음대로 대폭 수정을 해버렸다.

TV 드라마나 영화는 공동작업이다. 대사를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나는 그런 경우에 비교적 관용한 사람이지만 그 때는 참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화가 나는 것은 남자 주인공의 성격을 완전히 바꿔버린 점이었다. 결국 심리 미스테리극이 삼류 애정드라마로 변신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때 아무런 항의도 하지 않았다. 아직 작심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건방진 여자라는 소릴 듣는 것도, 혼자 투쟁하는 것도, 포기하는 것에도 두려웠다.

극본가로서의 자존심을 갖고 있었다면 물러서서는 안 될 일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작심한다는 것은 참고 견디는 것에 비하면 부끄러울 만큼 여린 것인지도 모른다.

작심은 내 잎 밖에 내서 말하는 동안에 굳어진다. 큰 인물은 입 밖에 내지 않고 작심을 한다.

그러나 나 같은 여자는 입 밖에 내서 말함으로서 이제 와서 뒷걸음 칠 수 없다는 각오가 생긴다.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에 작심 3일이란 말은 듣지 않겠노라고.

그게 지금의 나의 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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