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이 훈/ 제주출신으로 제주일고와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현재 목포대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미국 서부를 차를 빌려 달려 본 적이 있다. 땅이 참 넓은 나라라는 것을 실감했다. 직선으로 포장한 길이 끝이 없이 이어지는 것이다. 지루해서 저절로 오는 졸음을 쫓느라 고생한 경험이 지금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아무튼 그 여행은 구불구불한 것이 나쁘기만 한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다.

사실 새로 뽑은 길은 어디나 다 저렇게 직선이다. 이제 구불구불한 길은 시골이나 도시 골목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사전에서 '골목길'을 찾았더니 '동네 집 사이로 난 좁은 길'이다.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자연스럽게 난 길이다. 많이 다니다 보니 어느덧 생긴 것이다. 사람이 만들었으니 문화이면서 동시에 계획해서 닦은 것이 아니니 자연의 일부이기도 하다. 자연이라고 한 것은 마치 동물들이 그들의 감각으로 그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놓은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골목길은 자연의 일부이니까 구불구불할 수밖에 없다. 반듯반듯한 근대의 도로와는 확실히 구별된다. ‘길’이 도로와는 어울리지 않는 말로 쓰이는 것만 봐도 이런 추세를 알 수 있다. 국도나 고속도로라고 하지 나랏길이라든지 고속길이라고는 아무도 하지 않는다. 이와는 반대로 골목길의 성질을 간직한 곳에는 올레길이라든지 둘레길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을 봐도 저간의 사정이 얼른 이해가 된다. 큰 도로에는 근대적인 기계인 자동차들이 쌩쌩 거침없이 달리지만 골목길에는 사람들이 느릿느릿 걸어간다. 동네 사람과 마주치면 인사도 하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나누어야 한다. 시골 사람들이 서울 와서 놀라는 것 가운데 하나는 서울 사람들의 빠른 걸음걸이이다. 계획된 시간에 맞추어 활동하다 보면 모든 것이 바쁘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물론 골목길에도 자동차가 다니지 않느냐고 할 것이다. 그렇다. 그런데 자동차가 다니기 시작하면 어느새 큰 길이 생기게 된다. 말 그대로 신작로로 바뀐다. 이제 자동차가 발을 들여놓으면 동네 사람들도 덩달아 바빠진다. 당연하다. 근대에 사는 한 자연의 일부인 사람도 그 강력한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타고 일터에도 출퇴근하고 휴가철에는 자동차로 여행도 가게 된다.

그러니 자연이 학대받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골목길도 그런 처지가 된다. 골목은 자꾸자꾸 근대의 찬란한 문명 뒤로 숨게 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도시의 번듯한 외양을 해친다고 개발을 부추기는 목소리를 이겨 낼 수가 없다. 그래서 도시에서는 골목길이 근대적인 문화 생활의 이미지와 정반대되는 내용을 표상하게 된다. 시골도 이런 변화에서 예외가 아니다. 시골도 변화의 속도가 느리다뿐이지 역시 골목길이 마을의 중심에서 밀려나는 추세를 막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제 골목길도 웬만하면 포장되어 있다. 이렇게 근대화될수록 골목길에서 이루어지던 아이들의 장난, 동네 사람들끼리의 정다운 이야기가 사라진다.

결국 없어지는 골목길은 황폐해지는 자연의 운명을 닮았다. 결국 인간은 자연과 멀어지게 된 것이다. 천천히 걸어가면서 해찰을 부리며 하늘을 쳐다보기도 하고 꽃을 꼼꼼히 살펴보는 여유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인간이 근원적으로 갖고 있는 자연성이랄까 그런 것이 우리에게 낯선 것이 된다. 우리가 죽음을 살아 있는 것이 거쳐 가야 할 자연스러운 순환 과정의 일부가 아니라 피해야 할 무서운 것으로 여기는 것도 따지고 보면 골목길이 사라지거나, 남아 있더라도 부정적인 이미지로 떠올리는 것과 깊은 관계에 있다.

아무렇지 않게 산을 가로질러 죄 없는 나무를 베며 길을 내는 일이 자행되는 한 골목길의 운명은 뻔하다. 이렇게 하여 우리 인간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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