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전 한국일보 주필, 재경 한라언론인클럽 초대회장, 뉴스1 고문

4·27 남북정상회담 이후 휴전선 바로 남쪽인 경기도 파주 땅값과 동해안 강원도 고성의 집값이 폭등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꿈이 현실로 될지 김칫국부터 마시는 건지 모르지만, 아직 실현되지 않는 북한 특수(特需)가 온 국민의 마음을 자극하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제주도는 남북정상회담의 영향권에서 멀리 비켜나 있는 것일까. 현재는 그런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국민의 관심이 북쪽을 향할수록 바다 건너 제주 섬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약해질 테니 말이다. 기껏해야 원희룡 도지사가 트럼프-김정은 정상회담을 제주도에서 열자고 제의했다든가, 북한 감귤보내기 운동 재개 등의 얘기가 나도는 정도이지, 직접 남북 경제협력에서 챙길 수 있는 주민의 이익에 대한 논의는 없다.

남북정상회담의 후속 관심사는 두 가지, 즉 남북평화체제와 경제협력이다. 평화체제는 북미회담에 의해 결판이 날 의제이다. 평화체제가 해결되어야 남북경협이 가동될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경제협력은 남북 간의 직교류 사항이다. 이미 개성공단이나 금강산관광 등을 통해 남북한 모두 경제교류의 단맛이 보았다.

문재인 정부가 구상하듯이, 남북관계가 풀린다면 남북한과 중국,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경제권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대한민국, 중국, 일본 등 자본과 기술로 무장한 주변국이 북한을 둘러싸고 있어서, 여건만 성숙하면 북한의 경제성장을 끌어올릴 경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

여기서 소위 ‘한반도신경제지도’가 관심을 끈다.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문재인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손에 USB(이동식기억장치)를 하나 쥐어줬다. 이 USB에는 청와대의 남북경제협력 구상을 담은 한반도 신경제지도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정확히 알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평양에 돌아가 선물로 받은 USB를 컴퓨터에 넣고 문 대통령의 구상을 보며 나름대로 호불호의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한반도 신경제지도는 한반도 지도 위에 'H' 자 형태 남북교류 청사진을 그려 넣었다. H의 왼쪽 선은 신의주-평양-개성공단-수도권-목포를 잇는 서해안 산업· 물류· 교통 벨트다. 오른쪽 선은 나선 청진에서 금강산을 거쳐 강릉-부산으로 이어지는 동해권 에너지· 자원 벨트다. 마지막으로 이 두 선을 중간에서 연결하는 것이 DMZ 평화벨트다. 이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은 원래 문재인 대통령의 선거공약으로 나왔던 것이다. 그땐 별로 관심을 못 끌다가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면서 새로 발표된 새로운 구상처럼 인식되었다. 지도는 보기만 해도 멋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한반도 신경제지도에 제주도의 존재는 없다. ‘H’ 자의 왼쪽 선은 목포에서, 오른쪽 선은 부산에서 끝나 버린다. 얼핏 북한개방 시대에 제주도가 소외될 수 있다는 가설이 나온다.

과연 그럴까. 일단 일리 있는 이야기다. 아마 북한이 개방되고 통행이 자유로워지면 남한 사람들은 북한관광 붐을 일으킬 것이다. 백두산, 묘향산, 금강산, 개마고원 등으로 백팩을 메고 떠날 것이고, 기차를 타고 평양을 거쳐 중국으로 가는 관광열차가 생기면 비싼 통행료를 내서라도 가겠다는 사람이 수없이 생겨날 것이다. 상대적으로 제주도에 대한 열기는 식을 가능성이 높다.

북한 주민 2,500만 명이 잠재적 제주 관광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일전에 개성을 방문했을 때 그곳 안내원들은 제주도에 무척 관심이 많았다. 북한에는 제주도가 좋다는 인식이 많이 퍼져있는 것 같다. 돈만 있으면 많은 북한 주민들이 제주도로 관광을 올 것이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은 제주도로 여행 올 돈이 없다. 아마 북한 주민들이 제주도 여행비를 감당하려면 남북경협이 순조롭게 진행되어도 최소 10년은 걸려야 할 것이다.

그러면 제주도는 어떻게 해야 하나. 남한 사람들이 북으로 몰려갈 때 제주도는 이를 스스로를 둘러보는 좋은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사고방식을 바꾸고 변신을 해야 한다. 값싸게 자연을 팔아먹던 전통적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제주도는 설익은 개방에 너무 피폐해지고 있다. 제주도의 자연도 인간성도 망가지고 있다.

제주도에 갈 때마다 제주공항에 빽빽하게 붐비는 인파를 보며 “이 섬이 정상인가”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처럼 북한이 개방되면, 한반도 경제는 물류와 인간의 이동으로 요동칠 것이다. 제주도에도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그 파장이 클 것이다. 북한으로 관광객을 빼앗기고 소외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외감은 새로운 창안이 원천이 될 수 있다. 위기 속에서 새롭고 단단한 길을 닦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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