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김봉현/ 16회 외무고시 합격, 전 호주대사, 국립외교원 겸임교수, 제주대학교 초빙교수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삼국지의 한 일화를 소개한다. 중국의 한나라가 쇠퇴기에 접어들어 천하가 혼란을 거듭하고 있던 2세기 말엽에 한나라 조정을 장악한 동탁은 천자를 끼고 국정을 농단하고 있었다. 천하의 뜻있는 우국지사들은 모두 나서 동탁을 처단하고 싶어 했지만 여포를 앞세운 동탁의 무력은 아무도 대적하기가 어려운 지경이었다.

이에 조조가 나서 동탁을 암살하려다 실패하였고, 원소가 뜻있는 자들을 모아 동탁에 대항하려는 뜻을 밝히자 천하의 군웅들이 몰려들었다. 동탁을 암살하려고 시도함으로써 이름을 떨친 조조도 반 동탁연합의 한 자리를 차지하였다. 원소가 동탁을 처단하자는 구호를 외치자 모두 힘껏 소리쳐 동조하였지만 어딘지 한 구석이 켕기는 마음들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대의명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동탁은 천자를 끼고 자신의 뜻을 천자의 뜻으로 포장하여 내놓고 있었기 때문에 대의명분이 있었지만 원소를 중심으로 모여든 제후들에게는 그것이 부족하여 모두 난감한 상황이었던 것이었다.

이러한 제후들 앞에 조조가 등장하여 천자의 칙서를 받았다고 하면서 이를 제후들 앞에 큰 소리로 낭독하였다. 천자의 절절한 마음을 듣고 있던 제후들은 모두 엎드려 눈물을 흘리면서 비분강개하였다. 이에 원소는 천자의 칙서로 대의명분이 갖추어 졌음을 선포하였고 제후들은 모두 분기탱천하여 궐기에 나섰다.

조조의 일급 참모 순욱이 조조에게 감탄하면서 물었다. “주군은 역시 천하의 영웅이십니다. 언제 천자의 칙서를 받으셨습니까?” 조조가 답하였다. “순욱, 내가 무슨 재주로 천자의 칙서를 받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내가 작성한 것이네. 천자의 마음을 그대로 옮겨 담았고, 제후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면서 감동하였지 않았는가? 그러면 된 것 아닌가?”

이 조조의 일화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천자가 칙서를 직접 작성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천자의 뜻을 제대로 헤아리고 작성된 것이라면 천자의 칙서 그 자체가 된다. 중세에 교황도 칙서를 직접 작성하지 않았다. 모두 그 비서들이 받아 적었고, 때로는 대신 작성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칙서는 모두 교황의 이름으로 발표되었고, 칙서를 가지고 있는 자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하나님도 성경을 직접 쓰시지는 않았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반영한 것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2000년 동안 인류에게 큰 영향을 끼쳐왔다. 성경이 하나님의 뜻을 반영한 것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근거는 특별히 없지만 2000년 동안 인류사회에 큰 영향을 끼쳐왔으며 그 말씀이 이웃을 사랑하라는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성경 말씀의 뜻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의심의 여지를 두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뜻을 반영한 것이라면 헌법은 국민의 뜻을 반영한 것이다. 국민들이 헌법을 직접 쓰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헌법의 채택과정에 모든 국민들이 참여하지는 않지만, 그 헌법의 내용이 국민들의 뜻을 반영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 뜻이 변한다면 헌법도 개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국민의 뜻을 어떻게 헤아릴까? 국민들은 어떤 과정을 통하여 자신의 의사를 결정하게 되는가? 당연히 국민들은 여러 경로를 통하여 들어오는 정보를 기반으로 스스로 판단하여 자신의 뜻을 결정하게 된다. 그리고 개별적인 유권자들의 결정은 투표라는 행위를 통하여 정치에 반영되고 국민의 뜻으로 해석된다.

결국 자신들이 입수하는 정보가 정확한 정보인가가 매우 중요할 것이다. 그것은 정치적 결정 뿐만이 아니라 소비자 행위 결정에도 같이 적용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보가 정확한 것이 아니면 결국 그것을 기반으로 한 판단과 행동 모두 잘 못되게 되어 있다.

현대에 들어와서 시중에 떠도는 정보들이 과연 정확하고 객관적인 것인지에 대하여 의문이 들기 시작하였다. 우리 앞에는 수많은 조조가 등장하여 자신이야말로 국민으로부터 칙서를 받았다고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조조가 과연 국민의 뜻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하고 판단해야 한다. 과대 포장된 선전들, 왜곡된 여론조작, 부정확하고 제한적인 여론조사 결과들이 난무하고 있다. 잘 못된 정보는 잘 못된 결정을 하게 되고 국민의 뜻을 왜곡하게 된다.

국민들의 뜻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제한되어 있고, 정보가 왜곡될 수도 있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하게 되고 선동가들이 지배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사례를 역사적으로 많이 보아 왔다. 히틀러가 대표적인 사례였고, 대부분의 독재국가들이 그러하였다. 정보를 장악하고 왜곡하면서 독재자의 뜻을 국민의 뜻으로 둔갑시켰다. 우리가 보고 있는 북한의 김정은은 이러한 사례의 극치이다.

후란시스 후쿠야마 교수가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 체제가 공산주의와 비자유민주주의를 누르고 최종적으로 승리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그렇지만 정확한 정보에 의한 정확한 뜻의 형성, 그리고 정확한 국민의 마음을 읽어가는 정치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후쿠야마 교수의 예언은 빗나갈 것이다.

우리는 최근 세계 곳곳에서 대의 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를 보장해 주지 못하고 비자유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로 변질되어 가고 있는 현상들을 목도하고 있다. 국민들의 뜻을 왜곡하면서 왜곡된 뜻을 진정한 뜻이라고 강변하는 비자유민주주의의 대두를 우려할 수밖에 없다. 나 혼자만의 걱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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