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 합니다’.

80년대에 공전(空前)의 히트를 기록했던 TV광고 카피다.

당시 금성사(현 LG전자)가 내놨던 금성 하이테크 TV광고 문안이다.

제품에 대한 기술력과 신뢰성을 뽐내며 내놓았던 회심작이었다.

10년을 써도 끄떡없는 제품, 하루가 다르게 새롭고 다양한 제품이 쏟아져도 품질에 대한 기술력과 신뢰성 담보는 고객의 구매욕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미래를 좌우하는 ‘순간의 선택’은 가전제품에만 극한 되는 것은 아니다.

세상살이 모두가 여기에 연동 될 수 있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 한다’는 광고는 그래서 지금도 인간사 교훈으로 회자(膾炙)되고 재인용되고 있다.

나라의 흥망성쇠(興亡盛衰)도, 가정의 길흉화복(吉凶禍福)도, 개인의 성공과 실패도 따지고 보면 ‘순간의 선택’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나쁜 선택은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 좋은 선택이 좋은 결과를 낳는다는 역의 논리도 가능해진다.

썩은 씨앗이 농사를 망치고 좋은 종자가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은 필연이다.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인과응보(因果應報)도 선업(善業)과 악업(惡業)에 대한 각각의 되갚음이다.

그만큼 모든 선택은 중요하다. 국가의 미래도 선택이 결정한다.

제주발전의 변수도, 도민의 삶의 질도 ‘순간의 선택’에 의해 좌우된다.

이렇게 엄중한 ‘선택의 순간’이 다가서고 있다.

도지사와 교육감과 도의원을 뽑는 ‘6.13지방 선거’ 투표일이 아흐레 앞이다.

도민이 직접, 앞으로 4년간 일할 제주지역 일꾼과 심부름꾼인 지도자를 선택하여 뽑는 날이다.

제주미래의 명암(明暗)이 이날 선택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희망과 발전을 견인하는 동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고, 절망과 좌절의 어두운 그림자일 수도 있다.

어떠한 인물을 뽑느냐에 달려 있다. 여기서 깨어있는 도민유권자의 변별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혈연이나 지연, 학연으로 이야기되는 이른바 연고주의에 얽혀 ‘묻지 마 투표’를 할 것인지, 아니면 냉철한 이성에 불을 밝혀 올바른 판단을 할 것인지는 순전히 유권자의 몫이다.

그 결과에 대한 책임 역시 한 표를 행사했던 유권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선거는 최선의 후보를 뽑는 과정이 아니라 최악의 후보를 골라내 떨어뜨리는 정치행사’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선거에서 최악을 골라내어야 할 이유인 것이다.

세상에 순도 100%의 인물을 없다. 누구나 약점이 있다. 잘못도 있다.

누구든 세파의 얼룩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중에서 선택한다면 덜 나쁜 사람을 택해야 한다. 더 나쁜 사람은 밀어내야 옳다.

그러기에 선거는 완벽한 최선(最善)은 아니어도 부족하지만 최악(最惡)보다는 차악(次惡), 차악보다는 차선(次善)을 골라내어야 하는 이벤트인 것이다.

농부가 씨 뿌리기에 앞서 썩은 씨앗, 불량한 종자를 선별해야 하는 작업과 같다. 그것이 그해 농사의 작황(作況)을 좌우한다.

선거의 선별 기능이자 생산적 기능을 말하는 것이다.

누가 더 부도덕 하고, 누가 더 비윤리적이며. 누가 더 탐욕과 이기심 덩어리인지를 분별하는 작업은 유권자의 고유 기능이다. 권리이자 의무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 공직 선거에서 부끄러웠던 한 표 행사의 경험을 갖고 있다.

대법원의 성희롱 확정 판결로 1000만원의 배상을 했던 성적 스캔들 전력이 있고 선거법 위반으로 도지사 재선거의 원인을 제공했던 인물을 당선시켰던 투표의 흑역사(黑歷史)가 그것이다.

그때 제주 여민회 등 제주도내 13개 시민사회단체에서 ‘도덕적 결함의 행적’을 들어 해당인사에게 ‘출마 포기’를 종용했었다.

도덕성 검증을 통해 ‘최악의 후보자’를 골라서 추방하자는 취지였다.

공직을 탐하는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경종이기도 했었다.

그런데도 그는 당선됐다. 전국적 조롱과 웃음거리가 되었다. 잘못된 도민 선택이 망신을 당했던 셈이다.

이는 도민 적 자존심을 구겼던 ‘선거 경험’이다.

그랬던 그가 최근 각종 의혹의 꼬리를 달고 다니며 구설수에 오르고 있는 특정후보를 막후에서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대개의 경우 의혹은 지저분하고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

의혹은 명쾌하고 투명하게 정리되지 않으면 누룩 먹은 빵처럼 부풀어 오르게 마련이다.

살갗의 고름은 아프더라도 짜내야 한다. 그래야 새살이 돋는다. 그대로 놔두면 살이 썩을 수밖에 없다.

의혹도 마찬가지다. 쟁여두면 악취는 더 고약하고 고름의 부피와 깊이는 더 커지고 심각 해 진다. 손 쓸 수 없을 정도의 중증(重症)이 될 수도 있다.

아프더라도 의혹의 고름을 하루빨리 짜내고 치유해야 할 당위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이번 ‘6.13지방선거’는 각 후보자의 모럴헤저드를 걸러내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의혹의 고름‘을 짜내는 일이다.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후보자를 골라내고 의혹을 털어내는 작업은 잠자던 제주도민의 자존심을 깨워 일으키는 일이기도하다.

최근 제기되는 각종 의혹의 중심은 도지사 후보들과 그들의 선거켐프다.

날이면 날마다 서로 간 ‘뺨 때리기 게임’에 여념이 없다.

최소한의 금기와 경계의 담장은 이미 허물어졌다. 브레이크 없이 마주달리는 자동차의 ‘치킨게임’을 연상케 한다. ‘너 죽고 나 죽자’는 ‘막가파’ 식이다.

게거품 물고 내뱉는 인신공격은 하수구의 냄새를 풍긴다. 역겹다.

후보 진영에서 줄줄이 터져 나왔거나 시중 소문으로 유포되는 ‘의혹시리즈’의 대충은 이러하다.

‘부동산 투기, 여성관련 스캔들, 골프장 특혜, 논문표절, 재산형성 의혹, 불법묘역 조성, 불법 건축물’ 의혹 등등 공격 포인트는 전 방위적이다. 질적 수준이 평균이하다.

그런데 이러한 ‘줄줄이 의혹들‘은 제대로 규명되거나 검증되지 않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의혹만 제기해 놓고 공개검증을 회피하거나 딴전을 피우고 있어서다. ‘아니면 말고’식이다. 전형적 ‘물귀신 작전’이다. 비루하고 옹졸하다.

냄새만 피워놓고 꼬리를 감추는 마타도어는 선거를 혼탁하게 하고 흉측한 괴물로 만들 뿐이다.

상대방에 대한 악의적 헛발질이나 음해성 무차별 공격은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되돌아 올수도 있는 것이다.

게일 쉬히는 미국의 전기(傳記)작가다.

그는 “위기에 처한 사람들은 파괴적 자기방어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고 했다.

그의 책 ‘남자의 인생지도’에서다.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 오히려 자기 파괴적이 되는 역설적 상황을 초래 한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의혹을 감추고, 거짓말하고, 책임을 회피하거나 남에게 전가하는 도지사 후보와 후보 진영의 ‘무분별하고 무차별적인 의혹 제기’는 세 불리에 대한 조바심이거나 자기방어를 위한 몸부림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불행하게도 ‘자기 파괴적’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계산된 ‘의혹 퍼포먼스’로 시선을 끌려하거나 요란하게 ‘의혹의 굿판’을 벌이더라도 도민들은 현혹되지 말고 눈 부릅뜨고 깨어있어야 한다.

그래야 “누가 최악의 후보인지” 변별해 낼 수가 있다.

“누가 최악인가?”.

정답은 현명한 유권자가 찾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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