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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자] 어머니 돌아가시면 풀 머리 [피발, 披髮]고부자/ 전 단국대 교수
제주투데이 | 승인 2018.06.05 07:02

[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전 단국대 교수

필자가 우리나라 민속복식을 연구한지 반세기가 넘었다.

우리나라 옷의 시대별 흐름에 관한 연구를 ‘한국복식사(韓國服飾史)‘라 한다. 한자풀이를 하면 ‘복(服)’은 ‘옷’, ‘식(飾)’은 ‘꾸미는 것’이다. 내가 처음 강의를 들을 때나, 강의를 할 때도 그랬다. 그러나 요즘 난 ‘입성’이란 말을 쓴다.

입성이란 ‘입는 것’을 말한다. 입성? 요즘 사람에겐 낯선 말이다. 옷[衣]과 모자[冠]를 바르게 잘 갖춰 입은[整齊] 사람을 보면 ‘입성 좋은 사람’이라면서 우러러 봤다. 가마타고, 말 타고 시집 장가가신 우리 부모님 때 까지도 쓰던 말인데….

다른 것, 다른 맛이긴 하지만, 같은 뜻[類]으로 지금도 듣고 쓰는 말이 있다. ‘먹성’이다. 음식을 뭣이든 가리지 않고, 맛있게, 많이, 잘 먹는 사람을 보고 ‘먹성 좋다’했다. 입성이 낯선 것은 의관정제를 바르게 하고 점잖던 우리 것, 우리 사람, 우리 입성문화가 먹성보다는 좀 더 빨리 사라져버린 때문일 게다. 무엇보다 더한 것은 서양외래문물의 무분별한 흡입(吸入), 더 나가 오래토록 지켜온 사대근성(事大根性)탓(?)이리라.

사람은 태어나서 죽기까지 거치는 큰 관문이 몇 개 있다. 그 때때마다 새 입성거리를 마련했다. 태어나면 핏덩이를 쌀 것부터 시작하여, 차츰 격에 맟게 백일 • 돌 • 혼례 • 사망까지.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마지막 단계인 죽음[死亡]이다. 이는 특히 죽은 자[父母]와 산 자[子息]를 구분시켜 입성과 예(禮)를 철저히 지킴으로서 인간이 ‘만물의 영장’임을 과시해 온 증표인 셈이다.

입성거리는 겉으로 보는 단순한 것들만이 아니라, 색 • 크기 • 시대 • 만드는 사람 • 빨래 • 후처리 등에 이유와 조건이 따르며, 령(靈)과 혼(魂)을 함께 담고 있다. 지금처럼 가격이나 멋만이 아니라, 이를 통해 부귀공명과 무병장수를 기원하고, 또 그것들을 주관하는 생물체로 여겨왔던 것이다. 그것들을 통해서 민족의 역사 • 과학 • 사상 • 철학들을 찾게 된다. 매우 실질적이며 현실을 나타내는 것으로 ‘양반골’이라고 하는 경상북도 안동(安東)에서는 “벗은 거지는 빌어먹지도 못 한다”는 말이 있었다. 인간만의 특권인 ‘입을 거리’를 중시했던 생활규범의 흔적 중 하나이다.

남아있는 기록이나 유물자료들은 주로 왕실이나 양반 즉, 높은 사람들의 것이다. 그 중에서도 내가 복식사(服飾史)를 배울 때와, 강단에서 가르칠 때 “상류층은 주로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그럼 아랫사람들, 우리 백성들은 어쨌을까? 궁금했다. 그것들을 알려면 내 것을 먼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덕분에 제주복식의 민속학연구로 석사(1971년), 박사(1994년)까지 마쳤다. 석사 발표 이후 다른 지역에서도 나올 줄 알았는데 한참 지나도 없다. 그 때도 민속복식분야는 대학에서는 물론, 특히 여성 학과에선 어림도 없는 일. 제주 옛말에 “짐 진 놈이 팡 찾는다” 하지 않았는가. 할 수 없이 전국을 돌고 헤매기 시작했다. 방학이나 휴가 때, 단체여행 때도 틈틈이 모았다. 모범답안도 없으니 뭐가 뭔지도 모르면서 그저.

1988년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덕산리에 조사 간 때 일이다.

86세 할머니가 방에 누워 계셨다. 53세 된 큰며느리와, 54세 큰딸 • 42세 막내딸도 같이 있었다. 이리저리 목적을 말씀드리고 할머니 상황을 여쭈는데, 역시 노인들의 특기. 똑같은 필름이 돌아가는 거다. 널리 알려진 우리나라 3대 거짓말. “하나, 장사는 돈 안 남는다. 둘, 처녀는 시집 안 간다. 셋, 늙은이는 빨리 죽고 싶다.” 이 할머니도 똑같이 하신다. “아이고. 이 늙은이 빨리 죽지도 못하고….” 내가 본 첫 느낌이나 이 분위기로 보아서는 복 좋은 노인인데 말이다.

그런데 이곳에선 처음부터 뭔가 인물들에게 풍기는 맛이 다름을 느꼈다. 머리였다. 어머니는 물론 며느리와, 두 딸 모두 ‘쪽머리’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한자리에서 이렇게 100% 단체(?)가 쪽머리를 한 사람이 모인 것은 처음이었다. 그땐 이미 매사에 남의 눈치를 봐야하고 관망(觀望)시 했던 시골까지도 파마머리가 유행했던, 그야말로 ‘미장원전성시대, 파마머리전성시대’였던 때다.

우리나라 근대 여성들 머리[頭髮]의 변천과정을 보면, ‘달비’를 곁들여서 큰 비녀에 일반 쪽보다 크게 하는 양반 부인네들 ‘낭자머리’가 없어진 것은 1910년 초 일제강점기부터다. 게다가 내 어머니나 할머니들이 자신의 머리를 틀고, 말아서, 뒷목덜미 중심에 비녀를 지르던 ‘쪽머리’도 거의 보기 힘든 때였다. 할머니 빼고 세 여인의 쪽머리는 제법 남자 주먹만큼 크고 튼실했다. 전에는 머리카락이 검고 • 길고 • 숱이 많으면 ”삼[麻]단 같다“하고, “속[俗]된 말로 ‘처녀 값(혼인 조건) 좋았다’고 했다.” 또 ”성질도 좋다“ 했다. 특히 머리카락 숱이 많으면 조금씩 솎아 내고, 한줌 쯤 되면 ‘달비’로 팔아 가정살림에 보태기도 했다. 또 죽으면 머리를 혼사(婚事) 때처럼 크게 하는 것이라 하여 모았다가 썼다.

쪽머리? 궁금해서 물었다. 답. ‘어머니께서 “전에는 부모님 돌아가시면 여자들이 비녀 빼고 머리 풀어 곡(哭)을 했는데, 내가 죽으면 누가 풀어 줄 것인가”하시기에, 어머니의 원(願)을 풀어드리기 위해서 파마를 하지 않았다’는 거다. 아뿔싸. 물은 내가 부끄러웠다. 아니 이 광명천지에 저런 아낙들이 있다니. 어머니는 그렇다 치고 며느님. 두 딸들의 무지? 효성?

지금 살아 계신가요? 살아 계시다면 요즘 세상 보시기 어떠신지요? 앞으로 머리 한 가닥이나 양쪽으로 길게 꼬아 여우꼬리처럼 내린 꼴, 산발한 머리로 거리를 활보하는 꼴들…. 1960년대 까지만 해도 어르신 옛 말씀에 “머리 산발하면 부모님 돌아가실 징조”라 하여 한 가닥도 흐트러짐 없이 단정히 했거늘.

책에서 배운 아니, 보다 훌륭한 스승이나 학자를 통해 익히고 배운 것을 전해 듣는 값어치에 비견될까? 그날 그 지고지순(至高至順)하게 살아온 촌 아낙들을 찾았음을 큰 행운이고, 축복이었습니다. 오늘까지도 가슴에 품게 한 큰 스승이옵니다.

그분들. 지금 모두 고인이 되셨으리라.

영(靈)들이시여. 하루가 달리 험난하고, 험악해가는 이 세상 제발 좀 굽어 살펴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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