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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훈] 구불구불한 길이 훈/ 목포대 국문학과 교수
제주투데이 | 승인 2018.06.07 05:46

[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이 훈/ 제주출신으로 제주일고와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현재 목포대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유행가에서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고 한다.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출발지와 종점뿐만 아니라 그 중간 과정도 오리무중인 것은 마찬가지다. 말 그대로 암중모색해야 한다. 그 길이 구불구불해서 그렇다. 우리 삶을 이 구불구불한 길과 연결하여 생각해 보자.

먼저, 이런 길은 사랑과 아주 잘 어울린다. 설렘, 마음 졸이기, 망설임, 상대방 눈치 보기, 싸움, 이별과 재회 등이 사랑의 과정에는 어김없이 끼어들기 마련인데 이 우여곡절을 구불구불한 길처럼 잘 드러내는 말도 없을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 한 번 잡는 데도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가! 그러니 사랑은 직선일 수가 없다. 직선이 내포하는 속도와 사랑 사이의 거리는 아주 멀다. 무엇보다 고독을 견뎌야 한다.

그런데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받기까지의 긴 기다림은 이제 옛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통신과 교통 수단의 눈부신 발달은 날이 갈수록 길에서 방황하는 시간을 줄어들게 만든다. 그만큼 혼자 뭘 생각하는 시간이 없어지는 셈이다. 멀리 떨어진 애인이 그리우면 스마트폰으로 연락하고, 그래도 보고 싶은 마음을 참지 못하면 비행기나 기차, 고속버스, 또 자가용 자동차를 타고 바로 갈 수 있는 세상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짐작하고 혼자 공상하며 사랑의 성을 쌓고 허무는 과정이 짧아질 수밖에 없다. 고독은 더불어 살기보다는 피해야 할 것이 되어 버린다. 문명의 속도에게 고독은 물리치지 않으면 안 되는 적인 셈이다.

고독한 마음이 시켜서 하는 일 가운데 하나인 독서도 사랑과 비슷한 데가 있다. 소설과 영화를 견주면 더 이해하기 쉽다. 소설은 여로다. 그 길은 구불구불하다. 원래 삶이 그러니 그걸 담는 그릇이 그래야 할 것은 당연하다. 이에 비해 영화는 직선이다. 속도와 기술로 표상되는 근대 문명의 총아다. 온갖 새로운 과학 기술이 동원된다.

소설 읽는 것과 비교해도 영화를 보는 조건은 직선적이다.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관객이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옆길로 새지 못한다. 이와는 달리, 소설을 보면서는 해찰을 부려도 괜찮다. 아니, 그래야 한다. 책에 줄을 치다 눈을 떼서 뭘 생각하고, 앞에서 읽은 내용을 확인하고자 되돌아가기도 한다. 독자는 능동적인 주체로서 자유를 한껏 누린다. 소설 읽기의 참다운 재미는 바로 이런 데 있다.

곧바로 목적지에 닿지 못하는 따분한, 다른 말로 바꿔서 구불구불한 길에 가치가 있다고 믿고 싶다. 책의 세계가 우리가 죽은 후에도 굳건히 버텼으면 하면 비원도 품어 본다. 이것이 슬픈 꿈으로만 끝나지 않으려면, 사람이 되는 데 고독과 지루함이 꼭 필요한 양분이라는 점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학문에는 왕도가 없다는 말을 한다. 내 짧은 경험으로 보면 맞는 것 같다. 나중에 보면 아주 쉬운 것인데도 길을 잘못 들어 맴돌거나 되돌아오는 실수와 실패를 거듭하고 나서야 그런 데 이르렀다는 걸 알게 된다. 그만큼 거쳐야 할 곳이 많은 것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곧장 가는 길은 없다. 그런 방법이 있다고 해도 추천할 만한 것은 아닐 것이다. 목표에 이르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동안에도 놓치면 안 되는 중요한 것들을 배우고 깨닫기 때문이다. 아이가 넘어지지 않고 바로 걸을 수는 없다. 시행착오를 되풀이하다 보면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저절로 건강하게 된다.

그러므로 목표는 그것을 이루었다고 하는 순간에 존재하는 완성태라기보다는 그곳에 이르는 과정의 총합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올라가면서 겪게 마련인 고통을 뺀다면 에베레스트 산 꼭대기에 서는 것 자체로는 그렇게 대단한 일이 아닐지 모른다. 그래서 목적지에 이르고 다시 내려오기까지의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이 못 간 어려운 경로를 어떻게 거쳤느냐 하는 것이 진정한 등산가를 판정하는 기준이라는 식의 말도 나오는 것이다.

급하게 먹으면 체한다. 이 반찬 저 반찬 골고루 맛보며 천천히 숟가락질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튼튼한 몸이 되는 게 우리 삶의 평범하지만 거역할 수 없는 이치가 아닌가 한다. 그렇다면 기적이라든가 행운도 열심히 노력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은총이라고 보는 것이 옳겠다. 예를 들어, 그냥 한번 사 본 복권인데 엄청난 액수에 당첨되는 사람도 있을 테니 예외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길고 넓게 보면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온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소중한 것이라도 거저 얻으면 곧 시시하게 되어 버린다.

사랑도 공부도, 더 나아가 우리의 삶도 목적지를 옆에 두고서도 여기저기 다른 데로 에도는 그런 것이었으면 한다. 그렇게 되면 목적을 이루었느냐 하는 것보다 거기에 이르는 과정 자체가 훨씬 의미 있게 여겨질 것이다. 행복은 최종적인 성패 여부가 아니라 나날의 삶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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