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진다. “하라”고 하면 하기가 싫다. 누가 시키면 반발하는 인간 심리다.

이런 현상을 사회심리학에서는 ‘심리적 반발’ 또는 ‘심리적 저항’이라고 한다.

심리학자 브램(Brehm)이 1966년에 제시한 이론이다.

남의 강요나 위협으로 ‘선택의 자유’를 간섭받거나 빼앗기면 이를 만회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반발하는 심리현상을 말한다.

에덴동산에서 따먹지 말라는 나무 열매를 따먹은 ‘이브의 사과’도, 부모들이 반대 할수록 죽음도 마다하지 않았던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도 ‘심리적 반발심’의 예다’.

엄마 아빠 말에 죽어라 어깃장 놓는 유소년기의 ‘청개구리 심리’도 마찬가지다.

‘소변 금지’ 팻말 앞에서는 마렵고, ‘낙서 엄금’ 벽을 보면 더욱 낙서하고 싶은 충동도 브램의 이론에 근거한다면 ‘심리적 반발’로 정리할 수 있다.

누군가 당신에게 특정 사안을 강요하거나 설득하면 되레 거꾸로 가려는 ‘심리적 반발‘이 생기는 것이다.

가령 마당을 쓸려고 스스로 빗자루를 들었는데 누가 “마당을 쓸라”고 하면 빗자루를 내동댕이치는 심리도 같은 이치다.

‘멍석을 깔아 주면 하던 짓도 안 한다’는 속담도 그러하다.

“투표 하지말라”는 선거 캠페인도 ‘심리적 반발’을 이용한 투표 독려였다.

사상 첫 흑인 대통령 오바마를 탄생시킨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의 일이었다.

당시 스필버그 감독은 선거에 앞서 “투표 하지마세요(Don't vote)"라는 캠페인을 벌였다.

그의 페이스 북 영상에는 톰크루즈, 카멜론 디아즈, 스칼렛 요한슨 등 내로라하는 할리우드 유명 스타들이 등장했다.

스필버그 감독은 이들에게 “투표 하지마세요”라는 대사를 되뇌도록 요구 했다.

그리고는 나중에는 각각 왜 투표해야 하는지를 자유롭게 말하도록 했다.

투표의 중요성을 역설적으로 보여준 영상이었다.

이 “투표 하지마세요” 캠페인은 정치와 선거에 무관심하던 유권자중 30만 명 이상을 투표에 참여토록 하는 성과를 거두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일반의 ‘심리적 반발’을 이용한 반어적 선거 투표 독려 캠페인이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투표 하지 말라”는 강요가 “투표하자”는 ‘반발 심리’를 자극한 것이었다.

모레(13일)가 6.13 지방선거 투표일이다.

그래서 10년 전 미국의 ‘투표 하지마세요’ 캠페인을 빌려 쓰고 싶은 것이다.

선거 이틀을 앞둬 제안하는 ‘투표 하지마세요’는 “이런 사람에게는 절대 투표하지 말라”는 주문에 다름 아니다.

“투표에는 적극 참여 하되 당선되어서는 아니 될 ‘못된 사람’에게는 절대 투표하지 말자‘는 켐페인인 것이다.

우선 거짓말 하는 사람을 골라내야 한다. 거짓말은 공동체의 신뢰를 갉아먹는 바이러스다. 사회적 암 세포인 것이다.

‘잘못은 용서할 수 있어도 거짓말은 용서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거짓말의 해악이 얼마나 큰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음해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여 거짓을 퍼뜨리는 허위사실 공표행위, 그래놓고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파렴치한(破廉恥漢)도 예외일 수 없다.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사람,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나 양심까지 저버린 사람 역시, 지역일꾼으로서는 결격자다.

부동산 투기를 건전한 투자로 포장하여 축재(蓄財)하거나 토호 권력의 특권으로 특혜를 받았으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철면피도 그러하다.

상대의 신체적 장애(지체장애)를 물고 늘어지며 비꼬는 비열한 인신공격은 패륜적이다. ‘더불어 사는 사회 일원’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이는 장애를 가진 많은 이들에 대한 조롱이자 업신여김이다.

밑바닥 인간성의 민낯을 보여준 저열한 수준의 선거운동일 수밖에 없다.

또 핫펜츠 젊은 여성들을 동원한 ‘프리 허그(껴안기) 선거운동’은 무슨 해괴한 짓거리인가.

‘ooo이 안아드릴게요“라는 피켓을 들고 선거운동 하는 ’핫펜츠 프리허그 유세단‘, 자칫 ”여성을 선거도구나 선거의 성적 상품으로 전락 시킨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사실 일각에서 ‘도가 지나쳤다’는 비판도 나왔다.

그러기에 핫펜츠 젊은 여성들의 포옹으로 유권자들을 유혹하겠다는 야하고 야릇한 퍼포먼스 발상은 유치하다. 어이없고 한심하고 부끄럽다.

골라내야 할 부분은 또 있다.

정책이나 선거 공약(公約)에 대한 신뢰의 상실이다.

실현 가능성도 희박하고 신뢰성도 담보되지 않은 황당 공약(空約)을 쓸어 담아 유권자의 판단을 혼미하게 하고 유혹하고 있다.

그것은 선량하고 순진한 도민들에 대한 희롱이자 사기행각일 수도 있다.

구 소련 서기장이었던 후르시초프는 ‘정치인은 선거 때마다 강이 없는데도 다리를 놔주겠다는 사람들’이라 했다.

정치인의 허황된 공약을 꼬집은 것이다.

항공편이나 여객선 요금을 반값으로 해주겠다거나 각종 물류비 반값, 무상복지, 청년수당 지급, 원가아파트 제공, 반값 임대주책공급 등등 반값․공짜․무상 복지 공약은 구미가 당기는 유혹이다.

그러나 이들 퍼주기 식 공약의 재원은 어디서 마련하나. 도민의 호주머니서 나오는 세금일 수밖에 없다.

초콜릿처럼 달콤한 공약이 도민 삶의 독약이 될 수도 있음이다.

‘아랫돌 빼내 윗돌 괴는 도돌이표 공약’으로 도민 유권자들을 홀리는 것은 도민 주머니 털어 제욕심만 채우겠다는 것이다.

이들을 어떻게 도민의 진정한 심부름꾼으로 신뢰할 수 있을 것인가.

‘투표 하지마세요’ 캠페인은 이렇게 신뢰성 상실의 인물을 골라내자는 것이다.

정직하지도 않고 책임감도 없는 후보들을 솎아내는 일이다.

‘만약’을 전제로 한다면, 자신의 능력이나 소신보다는 대통령의 인기나 정당지지도에 묻어가려는 무소신 의존 형 리더십으로는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

그들의 지원과 지지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들의 지시나 리모콘에 휘둘려 방향성을 잃고 소신과 능력을 제대로 펼칠 수 없다면 이는 비극적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각 가정에 배달된 선거공보를 찬찬이 살펴보고 꼼꼼하게 따져 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투표하지 말아야 할 사람을 고르는 것이다.

‘선거란 누구를 뽑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구를 뽑지 않기 위해 투표하는 것’이라고 했다. 플랭클린 P 아담스의 말이다.

‘투표 하지마세요’ 캠페인과 일맥 상통 한다.

“부적격자를 골라 투표하지 말자”는 메시지어서 그렇다.

“투표 하지 마세요, 그런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관련태그

#N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