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양성자/ 제주4.3연구소 이사, ‘육지사는 제주사람’ 회원

현충일에 민속박물관에 갔다. 경복궁역 입구에서 주말처럼 넘쳐나는 인파 속을 걸으며 통일되면 없어질 공휴일이 몇 개 쯤 될까 꼽아보았다.

경복궁역에서 민속박물관으로 가려면 궁궐 돌담길을 끼고 청와대본관과 부속기관 그리고 춘추관을 지나야 한다. 청와대 앞 광장에는 분수대가 있고 그 옆에는 공휴일에도 생수를 얼음에 재워놓고 농성중인 최저임금법개악 반대 천막이 여기저기 있다. 저 슬로건에는 우리집 식구들의 생계도 달려있는데 사회의 총체적 반응이 반반으로 엇갈리는 통계를 보고 적잖이 놀랐다. 부디 적절한 타협이 이루어지길 빌면서 조심스레 통과했다.

이 순간만은 먹고사는 문제보다 영혼의 갈증을 채우러가는 길이었기에. 천막 사이로 한복 입은 관광객들이 초하의 빛에 흘러 다니고 정돈된 길 사이사이 연두빛 녹음은 푸르렀다.

북악산의 위용을 병풍으로 삼은 청와대를 보며 저 안에 사는 주인을 떠올려보았다. 갑자기 청와대가 이웃집처럼 친근해지며 사진에 담고 싶어진다. 친정집 파란대문 앞에 서 있는 듯, 내가 그 안에 있는 것처럼 편안한 것이 강진 무위사의 극락보전 앞에 서있는 느낌이랄까. 생전에 내가 저 푸른 기와집을 이렇게 보게 될 줄이야!

오랫동안 내 눈에 청와대의 건축물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취지에 어울리지 않았다. 민주주의의 미래를 향하기보다 오백년 왕조의 향수를 그리워하는 듯한 위화감마저 있었다. 대한민국정부수립은 해방 후 국민의 70% 지지를 받았던 사회주의, 민족주의 계열을 거의 소외시키며 또는 학살하며 출발하지 않았던가.

변방에서 태어나 제주 4.3의 곡절을 들으며 자란 나는 법이란 그저 힘센 자들의 인권이나 재산을 지켜주는 것이려니 했다. 미군정과 이승만정권에서 자행된 제주4.3 대학살 속에서 국민, 인권이라는 말이 사치스러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유도 모른 채 끌려가 죽고, 누대에 걸쳐 이루어 놓은 공동체의 정을 서로 죽이는 상황으로 갈가리 찢겨놓고 나서야 그들은 우아하게 선무공작을 했다.

문중의 어른인 외가친척이 어머니께 고백하시더란다 ‘누이야, 난 사람도 죽여봐시녜(나는 사람을 죽여 본 놈이여)’라고. 그것도 같은 동네 친구를 대창으로 깊숙이 찔렀다고 했다. 그 친구가 절박한 눈빛으로 ‘여보게 갑장, 날랑 한 번에 해주자이(친구여, 나를 한 번에 찔러죽게 해주게)’부탁했으므로. 그런 명령이 이루어진 곳은 어디일까.

당시 미군정 하지사령관은 청와대를 관저로 쓰다가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자 물려주고 떠났다지 않는가. 오랫동안 나는 청와대 터가 안 좋아 저 집만 들어가면 뒤끝이 감방으로 낙착되는 것이라고 하던 풍수지리꾼의 말에 귀를 기울였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푸른 기와집의 주인을 내가 정했다는 자부심에 분수광장에 내리꽂히는 초여름 볕살도 축복의 빛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장미대선이 끝나고, 육체노동으로 고단한 남편과 베갯머리에서 주고받던 말,

- 자기야, 내가 정권교체한 것 같이 자랑스럽다. 그리고 당신이 이룬 거야

- 난 촛불집회 마지막 날 딱 한번 갔을 뿐인데...

- 꼬박꼬박 토요일에도 일하러 나간 당신 덕에 내가 맘 편히 촛불광장에 나갈 수 있었어,그러니 당신이 이룬 거나 마찬가지야

- 말이라도 고맙네 ...

그만큼 내가 만든 대통령이라는 자부심이 컸다, 근데 기억을 살짝 걷어보니 난 그를 찍지도 않았다.

제주에 살 때니 20년 전 쯤 풍수지리학자 최창조의 책 <좋은 땅이란 어디를 말함인가>를 재밌게 읽은 적이 있다. 그 후 고향을 떠나 열 번이 넘는 잦은 이사에 책은 버려졌다. 특별히 좋은 땅이란 없고, 사람이 덕으로 그 자리를 좋은 땅으로 만드는 거라고, 책의 요지는 그랬다.

눈부신 청와대의 여러 건물을 보며 읊조려본다. 좋은 집이란 어디를 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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