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양길현 교수/제주대학교 윤리교육과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고 제주미래담론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다.

해가 안 된다. 해괴하기까지 하다. 기초자치를 내팽개치고 특별자치 한다고 폼 잡고 있는 제주를 보면서 드는 심사이다. 특별자치 이름으로 정부에 기대어 특혜나 받겠다고 서울만 쳐다보는 건, 이거 전형적인 앵벌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그런데 제주를 얼마나 졸로 보았으면, 제주도민들로 하여금 중앙정부에 빌붙어 살아가게 만들었을까. 초기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가 실망을 하게 된 몇 가지 이유 중의 하나가 이것이다.

참여정부라 자칭하면서 ‘준연방제’의 기치를 내걸고 처음에 특별자치를 내세울 때는 얼마나 고마워했는지 모른다. 대통령 잘 뽑았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났다. 그런데 웬걸 특별을 내세워 기초를 없애는 걸로 나아갔다. 물론 도민에게 투표를 통해 의견을 물기는 했다. 그러나 주민투표를 추진하면서 배후에서 당시 시군폐지의 정부안을 혁신안이라는 이름으로 치장하여 여론 몰이를 해 나간 데 대해, 그게 아니라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을까. 특별자치 도입의 대의명분이자 목표였던 ‘준연방제’는 간 데 없고, 특별한 위상의 제주도정과 제왕적 도지사-도의회의 깃발만 나부끼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퇴행을 혁신이라 치장하는 속임수까지 동원되면서 잘 못 결정된 걸 고치려고 하지 않고, 언제까지 그냥 지내야 하는지 갑갑하다. 며칠 전 몇몇 지인과의 식사 자리에서 얘기를 나누다가, 문득 고 신철주 전 북제주군수님이 그렇게 그리웠다. 다들 이구동성으로, 만약 신철주 군수님이 그 때 살아계셔서 북제주군을 없애는 데 반대했다면, 아마도 제주의 시·군폐지 주민투표는 통과되지 못했을 거라고들 얘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오늘날까지 내내 그렇게 많은 제주도민들이 내심 탐탁하지 않게 여기고 있을 뿐만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기초자치 부활 찬성이 많은 데도 정치권은 요지부동이다. 이게 민주주의이고 특별자치인지 의아심이 크다.

6월 13일 지방선거는 민주당 압승으로 끝났다. 이미 예견된 바이다.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여론조사가 잘 못 되었다고만 하면서 홍준표 등 보수-극우정당의 정치인들만 과거의 미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허둥대다가 참패를 면치 못했다. 그래서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등이 참패했다고 동정이 가거나 다음 기회를 노리면 되지 않나 하는 성원도 없다. 자폭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기회에 제대로 된 보수정치의 복원이 이루러지길 기대하면서, 야당 참패가 잘 된 일이라는 생각이 더 많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은 이유가 다른 데에 있지 않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이렇게 보수니 진보니, 친북이니 반북이니, 또는 친미니 반미니 하는 그런 케케묵은 구도에 얽매이지 않고 냉정하게 진정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를 보고 투표를 하는 한, 대한민국의 앞길은 탄탄하다는 생각이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중심을 잡고 있는데, 감히 누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휘젓고 다닐 수 있다는 말인가.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 풀뿌리 민심은 민주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한 게 아니다. 민주당의 압승은 유권자들이 기성 보수 정치인들에게 경종을 올리는 투표를 한 결과의 반사효과일 뿐이다. 적어도 민심의 1/4은 보수의 혁신을 원한다고 본다면, 그건 향후 보수 정치권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제주에서 원희룡 지사가 재선된 것도 바로 지리멸렬한 기성 보수정치권에서 한 발 물러서는 무소속 정치노선을 택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문제는 보수 정치권의 혁신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장기간에 걸쳐 북한 변수와 박정희 신화에 안주해 온 보수 정치권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21세기 복지-생태-평화-다문화 과제에 부응하는 면모를 보여줄 수 있을지, 의구심이 크다. 보수가 제대로 자리해야 상대적으로 진보적 입장의 민주당도 겸손과 내부혁신을 도모해 나가리라 보기에, 현금의 지리멸렬한 보수에 대한 염려가 크다.

6월 15일자 조선일보 18면-19면에 6.13 전국 기초자치단체장 선거 득표 결과가 올라와 있다. 서울 종로구 구청장으로부터 시작하여 경남 합천군수에 이르기까지 각 후보들의 이름과 얼굴 사진 그리고 각 후보들의 득표수와 득표율까지를 망라하고 있다. 그걸 한 눈에 쭉 보면서, 그렇게 슬플 수가 없었다. 제일 끝자락에 ‘세종-제주는 기초단체장 선거 없음’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그 잘난 특별자치 한다면서 제주에는 기초가 없다. 6.13 민심 투표 보도에도 빠져있다. 답답하고 슬프고 그리곤 화가 난다.

제주특별자치도의원 선거에서 예상을 넘어 31개 의석 중 민주당 후보 25인이 당선되었다. 타 지역에서도 민주당이 압승을 했기에 이를 두고 제주에만 유용한 논평은 불가해 보인다. 다만 민주당이 야당의 견제가 없이 절대 다수당으로 도의회를 장악하게 된 만큼이나 그 어느 때보다도 책임감이 크고 또 상대적 진보로서의 혁신에 대한 기대가 클 것이기에 어깨가 무겁게 되었음을 지적하는 데 머물러야 할 것 같다. 그러면서 ‘민주’당 이름에 걸맞게 민주당 지배 하의 도의회가 제주도의 민주주의 혁신에 적극 나서주길 바라마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기초자치가 특별자치보다 더 앞서야 한다’는 철칙을 명심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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