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서른세 살(85년생) 비혼, 그녀의 도전은 신선했다. 결과 역시 신선한 충격이었다.

제주도지사 선거사상 첫 여성 후보였던 고은영씨(이하 고은영)는 그렇게 제주에 녹색바람을 일으켰다.

시작은 미미했지만 끝은 산들바람처럼 상쾌하고 상큼했다.

고은영은 제주의 공기업 대리 출신의 평범한 청년이다. 여느 청년처럼 온갖 현실의 부조리와 세파에 부대끼며 살았던 직장여성이었다.

그녀는 이주민이다. 제주에 정치적 기반이나 연고도 없다.

그랬던 그녀가 녹색당 제주도지사 후보가 되었다. 이러한 무명의 정치 신인이 도지사 후보가 된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화제를 모우기에 충분했다.

제주 최연소 도지사 후보, 제주 여성 최초의 도지사후보, 첫 비혼 도지사 후보 등등 ‘제주 최초’라는 수식어가 (녹색당 간판을 제외하면) 바람의 중심이자 정치적 자산이었다.

그래서 그녀에 대한 관심을 ‘화제의 거품 현상’으로 보는 쪽이 많았다.

그냥 할 수없이 도지사후보에 이름을 걸어뒀다가 흐지부지 사라질 것이라는 시각이었다.

사실 녹색당은 군소정당 반열에도 오르지 못할 만큼 당세(黨勢)가 미미했다.

국회 원내 의석이 한 석도 없기 때문이었다.

거대 여당과 제1야당, 그리고 제2, 제3 야당 등 원내 교섭단체나 의석을 보유한 여타 정당에 비교하면 그렇다.

그러기에 이들 거대 정당 후보들과 경쟁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나 다름없었다.

고은영의 제주도지사 선거 출마는 그래서 무모한 객기 정도로 보였다.

끝까지 가지 못하고 중간에 주저앉을 것이라는 지레 짐작도 많았다.

‘도지사 후보 기탁금(5천만원)이 아깝다’는 걱정 반 비아냥거림 반의 반응도 없지 않았다.

안티도 많았다. 강고하고 배타적인 지역주의 그룹의 시시비비도 있었다.

태생도 모르고 나고 자란 곳도 모르고 학력까지 가린 그녀의 이력은 ‘유권자인 제주도민을 무시하는 것’이라는 힐난도 많았다.

유권자는 후보자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한다.

자질과 능력, 경력 등 이력이나 도덕성, 신뢰성, 책임성 검증은 유권자가 후보자를 선택할 수 있는 기본적 정보이고 자료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고은영은 학력을 감췄다. 부모는 누구이고 어디서 태어나 어떻게 성장했는지 등의 신상정보는 깜깜이었다.

모든 종류의 차별 철폐와 학력과 경력 등을 철폐하여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지향하겠다는 신념을 긍정한다고 해도 그렇다.

제주도민을 대표하여 투명한 도정을 펴겠다는 도지사 후보가 자신의 모든 것을 감추려 한다면 수긍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러한 시시비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행보는 당차고 거침이 없었다. 주눅 들지 않았다.

선거결과는 놀라운 이변이었다.

고은영의 득표는 원내 제1야당과 제2야당 후보를 눌렀다. 5명의 도지사 후보 중 3위를 기록했다.

물론 선거에서 등위는 무의미하다. 선거에서는 승자와 패자만 있을 뿐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번 도지사 선거에서 고은영의 3위 득표는 승패에 관계없이 유의미한 ‘청년 후보의 승리’로 기록될 수 있다. 의미 있는 메시지다.

기득권 청치 세력 아류(亞流)에 대한 심판으로 읽을 수 있다.

새로운 정치세력의 지형을 넓혀 줬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진보진영 정당 득표율을 보면 더욱 그렇다.

정의당 득표율 11.87%, 녹색당 4.87%, 노동당 1.87%, 민중당 1.60% 합치면 20.17% 였다. 진보진영이 약진했다.

이는 기득권 정치세력에 대한 반발일 수밖에 없다.

바로 청년 후보 등 젊은 정치세력에 대한 기대감의 표출이다.

여기서 민태원(1894~1935)의 수필 ‘청춘 예찬’이 오버랩 된다. 1930년 작품이다.

거기에 따르면 ‘청년기는 이상과 희망과 기쁨이 넘치는 가장 아름다운 때’라고 했다.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 청춘의 끊는 피, 이성은 투명하되 얼음과 같으며 지혜는 날카로우나 갑 속에 둔 칼’은 청년을 상징하는 언어다.

수필에서는 ‘청춘의 피가 뜨거운 지라 인간의 동산에는 사랑의 풀이 돋고, 이상의 꽃이 피고, 희망의 놀이 뜨고, 열락(悅樂)의 새가 운다’고 했다.

선거운동에 임하는 고은영의 뜨겁고 당당한 질주를 보면서 ‘청춘 예찬’에서 말하는 아름다운 청춘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현실을 방향성 잃고 헤매는 ‘절망의 청춘 시대’라 말하는 이들이 많다.

취업도, 연애도, 결혼도, 인간관계까지 포기하는 이른바 ‘4포 시대’가 청년들의 절망감을 더욱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지상에 걸어두어야 할 아름다운 청년들의 꿈이 캄캄한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현실 세태의 모순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말을 줄여 ‘현시창’이라는 슬픈 은어가 속절없이 유행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고은영의 ‘도지사 선거 도전’과 ‘성취’는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절망적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불의한 현실을 박차고 뛰어나가는 모습으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나쁜 현실에 대한 ‘이유 있는 반항‘이다. 미래를 향해 희망을 쏘아 올린 것으로 볼 수 있다.

러시아 소설가 고골리(1809~1852)는 일찍이 ‘청년은 미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했다.

우리 인생에서 한번밖에 오지 않는 청춘, 그렇기 때문에 미래를 걸고 도박 할 수 있고 인생을 던져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지난 6.13지방선거는 온갖 협잡과 음해와 인신공격이 난무했던 역대 최악의 선거’라고 했다.

이러한 시궁창 같은 역겨운 소용돌이 속에서도 그나마 ‘서른세 살의 아름다운 청년후보 고은영’의 미래를 향한 실험과 도전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이었던가.

이번 고은영의 ‘도전과 성취‘는 그래서 젊은이들에게 ’도전정신‘을 심어주고 ‘빛나는 희망‘을 쏘아 올린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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