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고광호/ (사)대한합기도총연맹 제주지회장, (사)한국자연경관보전회(환경부소관) 이사, 한원리장

기적이라 하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십 년 동안에 걸친 서독의 경제 발전을 이루어낸 라인강의 기적과 우리나라의 한강의 기적을 빼놓을 수 없다. 한강의 기적은 대한민국에서 한국 전쟁 이후부터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루면서 2007년 사이 국내 총생산량이 반세기만에 1조 달러를 기록했다.

예수님의 기적 중에 오병이어의 기적이 있다. 예수가 한 소년으로부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얻어 5천명의 군중을 먹였다는 것이다. 그러한 기적을 척박한 땅 제주에서 일으키신 분이 한림 성 이시돌 공동체의 고 맥그린치 신부님이시다.

64년 동안 제주도의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다가 선종하신 고 맥그린치(Patric James Mcglinchey. 한국명: 임피제) 신부에게 우리나라 정부는 지난 2018년 6월 5일 맥그린치 신부의 봉사 정신을 기리기 위해 명예국민증과 기념 동판을 고인의 조카 레이몬드 맥그린치와 천주교회 유지재단 마이클리어던 신부가 헌정식에 참석해 받았다. 명예국민증은 2002년 한일월드컵 히딩크(Guus Hiddink) 감독이 최초로 수여했으며 2016년 소록도에서 43년간 한센인을 위해 봉사한 마리안느 및 마가렛 수녀님이 받았다.

고 맥그린치 신부님은 멀고도 먼 나라 아일랜드 도네갈 주에서 9,000km의 여정 끝에 1953년 4월 14일 새로 임명된 세 명의 사제들과 부산에 도착했다. 일 년여 동안 전라도에서 한글을 익히고 보좌 신부로 있은 후 1954년 4월 헨리 대주교는 그를 제주도 한림에 초대 본당 신부로 보냈다.

보잘 것 없는 허름한 목선을 타고 제주로 들어오는데 한라산 아래로 펼쳐진 풍광이 참 아름다웠다. 고 맥그린치 신부님은 이 아름다운 곳에서 사역하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렸다. 하지만 막상 배에서 내리고 현실을 돌아보니 6.25 전쟁으로 인해 제주도는 빈곤과의 전쟁이었다. 그가 사용할 성당은 조그마한 여섯 평 남짓한 집에 방이 두 개가 있었는데, 이 중 하나는 전교사인 신순영 씨와 남편이 사용했다고 한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취임한지 13개월 만인 1955년 5월 한림 성당이 건립되었다. 당시의 어려운 시대적 상황으로는 기적 같은 일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종교를 떠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듯이 리더의 의지와 공동체가 하나가 되면 반드시 성취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맥그린치 신부님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4-H클럽이다. 우리나라 청소년 공동체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4-H클럽은 1945년 해방 직후 낙후된 농촌의 부흥을 위하고 청소년에 희망과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미국에서 도입 되었다.

당시 구자옥 경기도지사와 경기도 군정관 인앤더슨 중령, 이진묵 경기도문정관 등이 미국의 4H 활동을 도입했으며 경기도 일원에 ‘농촌청소년 구락부’를 결성하여 1950년까지 1,900여 마을에 5만여 회원이 참여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6.25 전쟁으로 중단 위기에 있었으나 전쟁이 끝나기 전인 1952년 12월에 4-H운동을 정부가 국책 사업으로 채택함에 따라 전국적으로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다.

제주한림에서 가장 먼저 1957년 3월(1958년 2월 공식 등록함)에 4-H클럽(남녀25명)을 조직하게 된 것은 맥그린치 신부님의 역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필자도 청소년기에 4-H(Heart, Hand, Health) 클럽 활동을 하며 교육도 받고 노래도 부르곤 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 덕, 노, 체로 불렀으며 지금도 마실 탐방을 하다보면 그때의 흔적을 종종 볼 수 있다.

4-H 클럽이 생기면서 1957년 3월에 가축은행을 만들었는데 또 하나의 기적은 여기가 출발점인 것 같다. 열악한 환경 속에 교인 청소년 25명으로 구성을 해서 출범을 했다. 처음에는 10대 청소년 4-H 회원들이 새끼돼지 한 마리씩 분양 받아 키웠다. 10대 청소년들이 양돈 사업으로 시작해서 소, 말, 양들을 사육하며 한국 최대의 목장으로 거듭 났다.

뿐만 아니라 이 사업을 기반으로 한림수직을 설립하여 제주도민 1,300여명의 일자리를 창출하였고 그 후 우유 및 치즈, 사료공장을 세웠다. 생산물을 통한 수익금으로 병원, 양로원, 요양원, 유치원, 노인대학 등 사회복지시설을 설립하고 운영하고 있다.

또한, 자라나는 어린이들을 위해 1985년 9월에 ‘성이시돌 유아원’을 금악리와 신창리에 개원을 했다. 그 뿐만 아니라 고산리에도 유치원을 세워 운영하고 있으며, 지금은 이들 모두가 어린이집으로 개명되어 운영을 하고 있다.

(재)이시돌 농촌산업개발 협회가 사회복지와 교육에 투자와 지원을 서슴없이 하고 있는 것은 맥그린치 개발 모델의 목표인 “개발 이익 잔치의 주인공은 지역 주민이다”라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지역 공동체의 근본을 주시해야 될 것이다.

지역개발의 민주주의를 몸소 실현하신 고 맥그린치 신부님은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개발을 우선시 해왔다. 그래서 함께 참여하고 함께 잘 살 수 있는 4-H 가축은행, 한림신협, 한림수직, 협동조합, 마을 공동목장, 협업농가 등 다양하다.

스물다섯의 꽃다운 청춘에 제주에 와서 64년 동안 제주도민을 위해 일을 하며 헌신하다가 선종하신 고 맥그린치 신부님, 그야말로 오병이어의 기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의 제주는 수많은 희생과 봉사자들이 있었기에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이 되었다. 점점 무너져가는 우리의 공동체를 복구하기 위해서는 행정의 지나친 간섭과 규제가 완화되어야 하겠다. 필자 역시 마을 공동체의 리더로서 일을 하다보면 행정 편의주의 때문에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누구나 살고 싶은 곳, 한 번쯤은 가고 싶은 곳, 행복을 꿈꾸는 곳이 제주가 되려면 작은 공동체의 완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근래 들어 제주의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주민과 정주민이라는 편견보다 제주도민으로써의 공동체의 행복을 위해서는 고 맥그린치 신부님의 숭고한 희생과 봉사 정신이 살아 있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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