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양영수/ 제주대학교 교수를 퇴임한 후 전업소설가로 활동 중

남자와 여자 세 사람이 애정관계에 얽혀들 경우에는 두 사람만의 관계에 비해 밀고 당기는 역학관계의 복잡 미묘함이 훨씬 더하게 마련이다. 남녀 간의 애정삼각관계가 옛날 사람들의 이야기에서는 비교적 단순하게 나타날 것으로 생각한 필자는, 제주도신화와 그리스신화 가운데 러브스토리를 비교해 보기로 했다. 평화모티브의 제주신화와 투쟁모티브의 그리스신화는 남녀 주인공들 간의 애정삼각관계 양상에서도 분명한 차이를 보일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우선 제주신화에서 애정 삼각관계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는 점이 그리스신화와 다르다. 토산리 일뤳당 본풀이에서, ᄇᆞ름웃도 하르방신은 큰부인이 ‘돗괴기부정’을 저지른 것을 탓하여 마라도로 귀양 보내지만, 작은 부인이 직접 큰 부인에게 찾아가서 귀가를 종용하여 데려옴으로써 한 남자와 두 여자가 동거하는 공생관계를 이룬다. 큰 부인을 용서해야한다고 남편에게 진언하는 작은 부인의 뚝심이 놀랍다.

‘그딴 일에 정배(定配)가 무슨 일입니까. 나는 하루에도 몇 백 번씩 실수를 해집니다. 성님에게 귀양을 풀어주십시오.’

부인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돗괴기부정’을 범하여 남편에게 소박맞을 때에도 가족관계를 청산하는 것이 아니라 살림을 안팎으로 분산하는 정도로 하고 따로 살림 차리는 부인의 생계 보장도 해준다는 것은 여성의 발언권이 미약하지 않다는 것일 터이다. 이같은 서사구도는, 제주시 궁당, 신풍리, 토평리, 보목리 등 제주섬의 여러 마을 본풀이에 나타난다.

남녀 간의 애정 삼각관계가 아슬아슬한 긴장 속에서 공존과 공생관계를 이루는 스토리가 서귀포 본향당 본풀이이다. ᄇᆞ름웃도 하르방신은 이웃나라 유람 길에 어느 명문가의 가택에서 예쁜 처녀를 보고서는 주인의 환심을 얻어 혼례를 치르는데, 알고 보니 신부는 의외로 추모였고, 염탐을 해본 결과, 앞서 본 미인의 언니 고산국이 자기 배필임을 알게 된다. 고심하던 ᄇᆞ름웃도는 처제인 지산국과 내통하여 고산국 몰래 둘이서 한라산까지 도망쳐 오는데, 이들의 배신을 알고 뒤쫓아 온 고산국은 울분을 참고 남편과 동생에게 동서쪽으로 마을을 갈라서 살 것을 선언한다.

이들 두 자매는 현실적인 애정 삼각관계를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애정욕구를 적정선에서 절제하는 공생관계를 도모함으로써 애정파탄의 비극을 막고 있다 하겠다. 남자들 여러 사람이 여자 한 사람을 두고 사랑 다툼을 벌이는 스토리는 제주신화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주목할 만하다. 여자들 여러 사람이 남자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부다처의 러브스토리가 제주신화의 특징인 것은, 옛날 제주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여자들이 차지하는 위치가 막중하고, 여자들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랑문제가 더 중요한 관심사였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의 전통사회가 남존여비였다고 하지만, 제주신화에 나타난 확실한 여성상위 국면을 고려하면, 어쩌면 남자의 권능은 겉보기 간판이고 내실에 있어서는 여성의 권능이 남자보다 더 상위인 점이 많지 않았나 싶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남녀 간의 사랑다툼으로 말하면, 한 여자를 두고 여러 남자가 다투는 경우도 있고 한 남자를 두고 여러 여자가 다투는 경우도 있다.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여러 남성과의 밀회 스캔들을 일으키며, 천하제일의 미인으로 알려진 헬렌에게도 여러 구애자들이 모여든다. 오딧세우스가 출타 중에는 그의 부인에게 청혼하는 남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리스신화에서 남자가 다수인 사랑다툼의 경우에는 다툼의 목표인 여성에게 별다른 위해가 가해지지 않는다. 남자들끼리의 사랑다툼은 그 자체로 결말을 짓게 되고, 누구의 인생을 파멸시키거나 하지 않는 것이다.

아프로디테나 헬렌이나 페넬로페는 오직 사랑을 즐기러 세상에 나온 것 같다. 용맹한 청년 이다스로부터 ‘평생 보장된’ 사랑을 받는 귀공녀 마르펫사는 아폴로신의 구애를 ‘일시적인 것’이라고 거부하지만, 이런 일이 누구에게도 파경을 불러오지 않는다.

남자가 여럿인 애정 삼각관계의 다툼은 누구의 파경을 초래함이 없이 해결이 되지만 여자가 여럿인 삼각관계의 갈등은 잔혹하고 비통한 참사로 이어지는 것이 그리스신화의 러브스토리이다. 남자 하나에 여자가 둘인 애정삼각관계가 제주신화와 그리스신화에 나타나는 양상의 차이도, 경쟁자들 간에 평화적인 공생관계가 이루어지느냐의 문제에서 드러난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서귀포본향 본풀이의 ᄇᆞ름웃도와 트라케왕 프로크네의 스토리이다. 흑심을 품은 남자가 자기 처제의 미모에 혹하여 부정을 범한다는 점에서 이들 스토리의 서두 부분은 아주 유사하지만, 그 결말은 극명하게 대비된다. ᄇᆞ름웃도 스토리에서는 할망신의 기지와 뚝심에 의해 이루어지는 공존과 공생의 묘방이 프로크네 스토리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경쟁관계에 있는 여성들 간에 질투와 해코지의 비극이 벌어지든가 버림받은 여성으로부터 남성에게 처절한 앙갚음이 일어나는 것이 그리스신화의 삼각관계 러브스토리이다.

미남청년 아도니스의 슬픈 이야기는 매우 상징적이다. 불륜의 태생인 아도니스의 미모에 혹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지하세계의 여왕신 페르세포네가 벌이는 극렬한 사랑다툼은 그에게 기쁨과 영광이 아니라 파멸을 초래한다. 미의 여신은 마법 붙은 속옷을 보여줌으로서 아도니스의 사랑을 얻는데, 이를 본 페르세포네는 (아도니스하고는 연적관계인) 전쟁신 아레스를 꼬득여 멧돼지 공격을 가하게 함으로써 아도니스를 죽인다. (아도니스가 죽으면서 흘린 피에서 아네모네의 붉은 꽃이 피어났다는 이야기이다). 지하세계 명부(冥府) 여왕신으로서의 권능으로 아도니스를 차지하자는 것이다.

결국에는 최고신 제우스가 중재자로 나섬으로써 두 여신들 사이에서 아도니스의 사랑이 꼭 같이 양분되는데, 동절기의 사랑은 지하세계 여왕신이 차지하고 하절기의 사랑은 지상세계 사랑신이 차지한다. 그리스신화에서는 한 여자의 사랑을 받으면서 만족할 수 있는 남자가 또 다른 여자의 사랑을 받으면서 파경에 이르는 비련의 이야기가 이밖에도 많이 있다. 바다의 신 글라우크스에게는 마녀 키르케, 늠름한 청년 다프니스에게는 강의 요정 에케나이스, 바다 위를 걷는 거인 오리온과 사냥꾼 케팔루스에게는 새벽의 여신 에오스가 기존의 무탈하던 애정관계를 파괴하는 침입자가 되어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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