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양길현 교수/제주대학교 윤리교육과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고 제주미래담론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다.

무언가를 도모할 때, 우리는 흔히 ‘운7 기3’이라고 한다. 아니 운이 9라고 말하는 이들도 꽤나 된다. 이는 그만큼 인간의 나약함과 하늘의 위대함을 지적하고 있는가 하면, 또 무언가를 이루었다고 뽐내기보다 겸손해야 하고 주위 분들에게 고마워해야 함을 설파하고 있는 명귀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마냥 사과가 내 입에 떨어지기를 기다리라는 것은 아니다. 운의 영향력이 크다고 하여, 인간의 노심초사를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운은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조정해 나갈 ‘무엇’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어떻게’일 것이다. 겸손한 자신감 내지는 유비무환의 자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지만, 이마저도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퍼스트 스타트업>(우마다 타카아키 저, 2018)을 읽다가, ‘4장 운: 조절가능한 행운을 위해’가 눈에 띤 건, 평소 필자가 운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타카아키가 조심스럽게 운 대응법을 제시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스타트업이 아이디어와 전략, 제품, 실행력, 팀웤 등을 잘 갖추었다고 해도 이른바 ‘운’이 뒤따르지 않으면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운을 몇 가지 요소로 분해하여 콘트롤할 수 있다면 ‘단 몇 퍼센트라도 성공 확률을 높일’(187) 수 있을 것이라고 하니, 어찌 눈이 확 뜨이지 않겠는가.

창업자는 위험요인을 다루는 데 있어서 ‘어느 분야에서 위험한 행동을 취하면 다른 분야에서는 진중하게 중심을 잡아 전체적인 위험 수위를 상쇄’(189)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이를 위해서 타카아키는 ‘바벨전략’이라는 이름으로 ‘안전 중심의 투자를 90퍼센트, 공격적인 투자를 나머지 10퍼센트 정도로 안배’(193) 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와 관련 필자는 스타트업이라면 이 보다 더 공격적이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으로, ‘운7 기3’처럼 ‘안(전)7, 공(격) 3’은 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의견이다.

타카아키가 주창하는 바, 억만장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자금을 잃을 위험보다는 미래의 가능성을 놀칠 위험에 더욱 민감’(190-191)하다고 본다면, 더욱 미래 가능성을 찾아나서는 공격적 투자가 요청된다고 볼 것이다. 물론 우리가 갖고 있는 자원 가운데 얼마를 공격적인 투자에 넣을 것인가는 각자의 판단과 몫이겠다. 어떻든 보수성 투자와 투기성 투자의 조합으로 일컬어지는 바벨전략이 시사하는 바는 유용해 보인다. 다만 좀 더 위험감당(risk-taking)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문제는 조금이라도 위험감당으로 나서도록 하는 방향으로의 사회안전망에 대한 사회적 합의이며, 이에 대한 정부정책에서의 우선성일 것이다.

나아가 부정적인 미지의 영역에 대비하는 것으로서의 위기관리를 넘어서서 ‘긍정적인 미지의 영역에 기대하는 것’(198)으로서의 혁신을 도모해 나가는 진취적 방향의 사회적 분위기도 중요하다. 만원 버스에도 의자에 앉는 사람이 있다. 버스 타면 서서 갈 수밖에 없다고 지레 짐작하고 버스를 타지 않으면, 영원히 버스 타서 의자에 앉아 가는 일은 생겨나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기회포착을 하려는 남다른 노력이 요청된다. 대한민국의 ‘한강의 기적’도 결국 수출주도산업화라는 기회포착에 성공한 대표적 사례라고 하지 않는가. 수많은 도전과 좌절 그리고 기사회생을 거치면서도 열정과 노력이 모아진 결과가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고 본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운은 조절할 수 없지만 도전하는 횟수는 우리 의사에 따라 얼마든지 조정 가능하다’(199)는 지적이 크게 다가온다. 그렇다. 결국 운을 조절하는 방법은 ‘도전의 양을 늘리는’(200) 것일 게다. 이른바 ‘양의 질로의 법칙’이 여기에서도 적용된다. 물을 데워가는 온도 양을 늘리게 되면, 100도가 넘어가는 시점에서 물은 수증기가 되는 질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건 과학 상식에 속한다. 사회와 인간의 삶에서도 양의 질로의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왜 무한도전인가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아인슈타인이나 에디슨, 바흐, 피카소 같은 천재들도 수작을 내기까지 많은 실패를 했다고 한다. 천재들이 그러한 데 하물며 우리 보통사람들이야 도전이 성공할 가능성은 더욱 적다. 그렇다고 의기소침할 필요는 없다. 너무 큰 ‘질’을 추구하고 너무 많은 ‘운’을 거머쥐려는 욕심만 줄이면 되리라 보기 때문이다. 큰 욕심 없이 도전하고 시도하는 횟수를 늘려가노라면, 언젠가 100도 되어 물이 수증기로 화하리라는 기대가 현실이 될 날이 오리라고 본다.

결국 ‘실패를 했어도 도전 가능한 상태를 유지’(204)하는 게 절대 중요하다. 문제는 어떻게 ‘오랫동안 살아남느냐’(204) 이다. 여기서 기대되는 게 바로 ‘서로 돕는다’는 인간사회의 덕목이다. 상부상조와 구휼은 동서고금의 사회적 가치이다. 일반 백성들에게 기본적 안전망을 확충해 주어야 할 정부의 새로운 책무가 요청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필자는 4차산업혁명 시대에 부응하여 한국사회에서 크게 요청되고 있는 생존방식 찾기의 하나로 스타트업이 널리 각광을 받고 있는 만큼이나, 보다 공세적인 바벨전략을 채택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한국사회 전체 차원에서의 대응책이 요청된다고 보고,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상부상조의 기본소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다시금 해 본다.

타카아키가 강조하는 바, ‘안티프레질(Antifragile)’(195)로서의 삶의 기본적 안전망을 한국사회가 마련해 줄 수 있다면, 그만큼 한국 국민들은 보다 진취적으로 스타트업을 찾아 나설 수 있으리라 본다. 운이 나빠도 기본적 삶이 어느 정도 보장된다면, 우리는 운을 탓하는 게 아니라 새로이 무언가를 찾아나서는 유럽 대항해 시대나 미국 서부 개척시대와 같은 창발성과 프런티어가 가득한 나라가 되고, 그런 모험들이 모아지는 누적의 결과에서 한국사회의 미래가 달라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 점에서 기본소득은 사회적 안티프레질에 다름 아니다.

#관련태그

#N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