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허상수/ (사) 한국사회과학연구회 이사장

2012년 3월 9일 아침 강정마을 앞 해변은 아수라장이었다. 무도한 집행자들에 의해 구럼비 바위들이 여지없이 부서져 나갔다. 이를 좌시할 수 없던 사람들은 군사주의와 개발주의를 거부하는 신성한 항의행동으로써 이 불법·위법·편법공사를 온몸으로 막아보고자 폭파 현장으로 나아갔다. 이날 처음으로 한데 마음을 모은 천주교와 기독교 성직자들은 해군이 설치한 철제펜스를 뚫고 밭 안으로 들어갔다. 바로 3일전부터 국방부와 해군측은 처음으로 강정마을 해변 밭 가운데를 폭파하기 시작했다. 성직자로써 이들은 평화마을 강정공동체가 무너져 나가는 것을 그냥 묵과할 수 없었다. 경건하고 거룩한 평화 행동이었다.

신문·방송을 통해 강정해변이 파괴된다는 소식을 보고 서울서 내려간 필자는 특별한 의도나 목적도 없이 이들이 열어 놓은 틈새로 그 밭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2012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된 영국인 평화운동가 앤지 젤터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젤터는 1999년 다른 여성 활동가 2명과 함께 스코틀랜드에 있는 트라이던트 핵잠수함 기지에 들어가 컴퓨터 장비와 서류들을 밖으로 던져버림으로써 반핵평화운동의 신기원을 기록했다. 5개월 동안 구금된 상태에서 1개월간 재판을 했다. 법원측은 더 큰 해악을 막기 위한 행동으로 판단하고,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녀는 1980년대부터 전 세계에서 반핵·반전·환경운동을 벌여오면서 100회 이상 체포되었던 경력의 소유자였다. 그녀는 제주경찰에 잡히기 전에 이미 용역인부들에 의해 폭행을 당해 가슴에 멍 자국이 완연했다.

경찰은 우리를 강제로 끌어갔다. 우리는 경찰차 안으로 잡혀 들어가 의자에 앉아서 한참을 기다렸다. 수많은 이들이 찻길을 막아서 있었다. 우리를 잡아넣은 경찰승합차가 나가는 것을 막으려는 몸부림이 이어졌다. 처음에 28명이나 되는 사람들은 서귀포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제주동부경찰서로 옮겨져 2박 3일 동안 갇혀있었다. 보통 1박 2일이면 풀려나던 일이 늘어져 누가 구속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젤터는 자신의 이름을 ‘구럼비’라고만 말하고 묵비권을 행사했다. 강우일 주교가 신부들을 면회하기 위해 방문했다. 다행히 모두 풀려나 강정마을로 돌아갔고, 나는 서울로 되돌아갔다. 젤터는 끝내 영국으로 추방되었다.

10월이 되어서야 제주지방법원에서 재판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경찰서에서 조사받을 때 형사가 추궁했던 “철제 공구를 들고 가서 기물을 부술 것을 공모했다”는 혐의사실이 검찰 기소장에 그대로 옮겨졌던 것이다. 그리고 법관 판결문에도 마찬가지였다. 한 마디로 공정한 재판다운 재판이 아니었다. 검사는 경찰조서를 반복해서 읽었고, 나는 그런 사실이 없었다고 강력하게 부인했다. 판사는 나의 진술을 신경 써서 들으려 하지 않았다. 사건 경위를 소상히 작성하여 경찰서와 검찰청, 법원에 제출했으나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강정마을에서 일어난 평화생명운동은 이처럼 철저히 법원 판사에 의해서 다시 한 번 짓밟혀졌다.

더욱 가슴 아픈 일은 다른 강정마을 주민들과 평화지킴이들이 더 많은 항의시위집회사건에 휘말려 수많은 액수의 벌금을 내거나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특히 어떤 사건은 1심과 2심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으나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에 야기된 일이라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당시 법원은 정부의 환심을 사기 위해 법을 제멋대로 해석하고 판단했던 것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사법 행정권을 남용하는 한편, 법관과 재판의 독립을 침해했다. 지난 6월 5일(화) 법원 행정처가 공개한 대법원 내부 문건에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협력 사례’로 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 건설 관련 대법원 판결이 명시된 것이 확인되었다. 양승태 대법원은 상고 법원 입법 추진을 위한 협상 전략의 일환으로, 해당 판결을 사법부가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최대한 협조해 온 사례’로 표현했다. 문건에 언급된 판결은 정부가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하는 데 근거가 되었던 중요한 판결이었다. 한 마디로 이 대법원의 판결 행위는 불법·편법·위법이라고 볼 수 있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정당화해준 것이었다. 대법원 판결을 통해 양승태 대법원은 입법 ‘거래 수단’으로 삼은 것으로 확인되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법원의 독립을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다. “헌법 제103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그러나 재판을 받아 본 사람들은 과연 법관이 한국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재판하고 있는지 의아해 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판사들은 노골적으로 또는 암묵적으로 재벌이나 부자, 권력 편을 들고서는 재판을 잘했다고 우긴다. 예를 들면 주권자인 국민은 자신들의 법 감정과 상식에 반하는 판결을 하는 법관을 보거나 누가 보더라도 증거를 없애고 도망을 갔을법한 범죄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는 판사를 보며 한숨을 쉴 수밖에 없다.

이번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의 사법 농단과 판사 길들이기, 부당한 재판 개입과 특정 재판에 대한 불법거래, 상급법원 설치를 위한 국회와 변호사단체에 대한 영향력 행사는 한 마디로 헌법파괴행위로서 3권 분립 원칙 훼손, 재판과 법관의 독립 침해, 직권남용이다. 왜냐하면 당시 대법원 법관은 헌법의 법관 독립성을 정면 위반하면서 법률을 자의적, 임의적, 비양심적 방식으로 적용, 해석하여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종용과 협박, 주문과 강요, 요구와 기대에 의해 심판하고, 대법원장을 위해 처신하였던 것이다.

지금까지 나타난 언론 보도에 의하면 그 유형과 수법이 주권자들의 상식과 상상을 훨씬 초월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일본과 한국 외무부, 청와대를 의식해 강제징용 재판을 법원은 5년간이나 연기했다는 것이다. 또한 법원이 “일본군 위안부”(성노예) 사건에도 개입한 정황이 있다면서 검찰은 그 관련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외교부를 압수 수색했다. 외교부는 2016년 11월, ‘손해배상시 한국이 국제법을 준수하지 않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밝힌 의견서를 국내 최대 법률회사인 김앤장을 통해 대법원에 제출한 사실이 이번 법원행정처 문건에서 발견된 것이다. 일본군 성범죄 피해자인 할머니들을 생각하지 않고, 이른바 국익을 앞세워 재판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행동을 한 것이다. 더욱 가관인 점은 이런 사실 확인을 위해 법원행정처 국제심의관실 압수수색 영장을 법원 판사가 기각했다. 법원 구성원끼리 봐 주기가 아니냐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사실상 수사방해라는 지적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뿐 만이 아니다. 2억 6천만 원의 뇌물을 받은 게 들통이 나서 곧바로 구속된 현직 판사 때문에 여론이 악화되는 것을 무마하기 위해 다른 사건의 선고를 앞당겨 발표함으로써 국민들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도록 했다는 것이다.

2013년 10월, 박근혜 정부의 고용노동부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법외노조라고 일방적으로 통고하여 사실상 불법화했다. 전교조는 이런 법외노조 통보처분을 효력 정지해 달라는 신청을 했고, 항소심은 이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양승태 대법원장의 법원행정처는 불과 10일 만에 이 항소심 결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문건을 작성했고, 대법원은 실제로 항소심 결정을 뒤집었다. 전교조는 길 밖으로 쫓겨났다. 법원행정처 임종헌 전 차장으로부터 압수한 이동저장장치(USB)에 청와대의 관심사항만 모아 놓은 것으로 보이는 폴더가 있었고, 이 안에 전교조 문건만 8건이나 포함되어 있었다.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집행정지 관련 검토’ 문건은 정다주 기획조정심의관(현 울산지법 부장판사)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마디로 법원은 청와대의 눈치를 보고, 입맛에 맞는 재판을 하고 선고를 함으로써 3권 분립 원칙을 한 순간에 팽개친 꼴이다. 이런 증거만으로도 법관 직무유기에 해당하는 범죄행위이다.

대법원장은 뭘 믿고 이런 범죄행위를 눈감고 조장하고 지시했을까? 양승태 일당은 오래전부터 ‘민사판례연구회’라는 법원내 최대조직에 몸담고 있었다. 신입회원은 ‘서울대 법대 재학중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성적 최상위권’을 동시에 충족하는 현직 법관 가운데 기존 회원의 추천을 받아 선별 입회시켰다고 한다(한겨레 2018. 8. 3. 6면 사법농단). 이런 독특한 선발 방식도 문제지만 더욱 심각한 점은 회원이 누구인지 알 수 없도록 비공개 해 왔다. 1977년 고 곽윤직 서울법대 교수와 제자들이 만든 이 괴물 같은 ‘서클’은 현재 한국 법원을 좌지우지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비밀조직이 되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대법관 14명 중 무려 8명이 이 특별조직의 전·현직 회원이었고, 이번 사법농단 의혹에 회원 다수가 연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주요보직 독점과 사조직화를 서슴치 않았다고 자인하고 있다. 명실상부한 법원내 ‘조직폭력집단’이나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이들은 법원 판사들을 길들이고, 제압하고, 법원을 장악하기 위해 상급법원을 만들려고 시도했고, 이를 위해 청와대의 양해와 지원을 유도하기 위해 대통령의 입맛에 맞는 재판을 해 주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를 반대하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에게 전화압력을 가하고, 입법부의 성향까지 분석하여 법원에 유리한 생각을 가진 의원을 늘리고, 불리한 의견을 지닌 의원수를 줄이려는 조직적 활동을 준비하고 실행했던 것이 폭로된 것이다. ‘국민은 이기적이고 법조인은 이성적’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그 법원행정처를 뭐라 평가하고, 앞으로 어찌할 것인가?

정리하자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대법관과 법원행정처장 등 일단의 헌법유린세력에 의해 자행된 모든 판결과 법원행정조치는 전부 무효이며, 불법이며, 취소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 본질은 ‘헌정파괴로 이어진 사법권력 남용’이다. 이제 불법을 가려주면서 불의에 눈감고, 정치권력에 아부하고, 돈을 밝히는 자를 단지 법의를 입었으니 법관이라고 존중해 줄 필요는 더 이상 없다. 어서 국회는 특별재판부를 구성할 수 있는 특별법을 제정해서 여전히 기득권층에 빌붙어 있는 법원을 단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아직도 법원 내에 잠복해 있는 반헌법 행태의 법관들을 축출해 낼 수 있는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법원과 법률을 갖고 장난질을 일로 삼아 온 법률쓰레기와 마찬가지인 ‘민사판례연구회’ 회원들을 발본색원하여 해체해야 한다. 무릇 법관이라면 헌법과 법률, 법률가의 양심에 따라 시시비비를 가리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에 앞장서야 하지 않겠는가? 사법부는 어서 빨리 깡그리 환골탈태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야 헌법과 법률을 지키는 정의의 수호자로 되살아 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탄핵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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