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들어가는 숲 속

'구상난풀을 만날 수 있을까?'

계곡따라 나뭇잎들이 갈색으로 꼬닥꼬닥 마른 오솔길

저절로 발걸음이 멈춰서는 곳

주의를 살피다 눈에 들어오는 푹신한 부엽질 위로 올라 온 

'애기버어먼초'

한참을 걷고서야 작은 기쁨 하나를 만났다.

애기버어먼초는

버어먼초과의 여러해살이 부생식물로

줄기는 곧게 서고 식물체 전체가 하얀색을 띠고

꽃은 8~9월 줄기 끝에 2~13개가 두상꽃차례로 모여 핀다.

 

애기버어먼초와 눈 마주치며 놀다 발길을 옮기는 순간...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때 살짝 들어오는 햇살 아래

일찍 세상 구경 나온 붉은빛으로 반짝이는 '구상난풀'

마법의 성으로 빨려들어가는 듯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무리지어 솟아나는 구상난풀은

웅크린 모습이 엄마 뱃 속에서 금방이라도 기지개를 펼 듯 

포근하고 정감가는 모습은 향기로움이 남아있다.

투구를 쓴 꼬마병정은 조용히 숨어있다가

바다 속을 누비는 잠수함의 잠만경처럼  

숲 속의 아름다운 빛과 풍경을 놓칠까봐, 아니면 타들어가는 숲을 지키느라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바람에 아예 주저앉아 버렸다.

구상난풀은 노루발과의 여러해살이 부생식물로

나무나 잎이 썩은 부엽질이 많은 곳에서 양분을 얻고 살아간다.

엽록소가 없어서 스스로 광합성을 못하다보니

대부분 어두운 숲 속 빛이 잘 들지 않는 음지의 습기가 있는

축축한 곳에서 주위 영양분으로 살아간다.

부생식물의 서식지는 매우 불안정하다.

다른 식물의 뿌리와 공생하는 균근식물 '구상난풀'

균뿌리식물은 엽록소가 없어 자체적으로 광합성을 하지 못하는데

구상난풀도 엽록소가 없어 식물 전체가 연한 황갈색을 띤다.

노루발과 수정난풀속의

나도수정초, 수정난풀 등이 여기에 속한다.

구상난풀은 제주도와 남부지방에 자생하며

제주도 한라산 구상나무 숲 속에서 처음 발견되어 붙여진 이름으로

구상나무나 소나무, 삼나무 숲 밑에서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다.

줄기는 밀생하고 다육질이며 원기둥 모양으로

얼핏 보기엔 잎이 없는 것 처럼 보이지만

어긋난 잎은 불규칙하고 퇴화되어 줄기에 얇은 비늘같은 것이 촘촘하게 돌려나고

윗 부분에 불규칙한 톱니가 있다.

20~30개의 잎이 달리고 키는 20cm 전후로 자란다.

미황색에서 갈색을 띠는 전체가 연한 황색으로

둥근 줄기 끝(하나의 꽃대)에 여러 개의 꽃이 달리는데

종모양의 꽃은 7월부터 피기 시작하고 꽃이 필 때는 아래를 향한다.

8개의 수술과 적갈색 꽃밥(암술)은 햇빛을 받으면 꽃 부분이 검게 변하고

끝이 뾰족한 긴타원형의 꽃잎은 톱니모양으로 잔털이 있고 꽃밥을 감싸고 있다.

꽃받침조각은 열매가 커지면 떨어진다.

색깔이 곱지 않은 누런빛깔이다 보니 퇴색된 것 처럼 깔끔하지는 않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력적인 모습에 시선이 머문다.

열매는 9월경에 위를 향해 둥글게 달리는데 끝부분에 암술대가 남아 있다.

식을줄 모르는 불볕더위와 열대야  

파란 잎들이 하늘을 가려 바람 한 점 없는 여름 숲은

시원하기보다는 줄줄 흘러내리는 땀방울,

숨막히게 하는 찜통더위와 한바탕 전쟁을 치루는 동안

숲도 조용한 듯 하지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햇빛과의 전쟁을 치룬다.

이방인의 방문을 경계하는 새들의 삐죽이는 소리

나뭇잎에 모습을 감추고 자기들의 영역을 침범했다고 놀래키지만

워낙 더운 날씨는 숲 속 주인도 맥없이 꼼짝하지 않는다.

여름 숲 속을 지키는 꼬마병정 '구상난풀'

깊은 숲의 습한 곳에서 생명을 불어넣는 부생식물들의 숲 속 생활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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