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 가’.

김수희가 불렀던 노래 ‘애모’의 한 소절이다.

1990년대 히트했던 가요다. 절절하고 애잔한 감성을 담은 노랫말은 물기 젖은 김수희의 허스키한 목소리에 실려 듣는 이들의 심금을 울렸었다.

이 노랫말이 최근 남북관계의 패러디 물로 등장해 쓴 웃음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정부의 북한 눈치 보기나 굴욕적 저자세 행태를 꼬집는 ‘서글픈 익살’이다.

‘김정은 앞에만 서면 (정부 또는 대통령은) 왜 작아지는 가’.

비판은 시니컬하다. 마음은 허전하고 씁쓸하다.

“왜 이 지경까지인가”. 부끄럽고 참담할 수밖에 없다.

문재인정부가 들어서면서 추진하고 있는 국방ˑ안보 정책이 그러하다.

특히 군 관련 정책들은 불안하고 조마조마하다.

“군대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발가벗겨 김정은에게 바치려하는 것이 아니냐”는 격하고 독한 된소리도 거침없이 나오고 있다.

군(軍)은 국토를 지키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국가방위의 최 일선 조직이다.

부단한 훈련을 통해 필승의 신념을 가진 강한 군대 양성이 필요한 이유다.

여기에 군의 정체성이 깃들어 있다. 군의 사명과 군의 정신도 녹아 있다.

그러나 이미 추진하거나 진행 중인 군 관련 정책은 이와는 사뭇 다르다.

‘강군(强軍)은 강한 훈련을 통해서 양성되는 것’이다. 일반론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연례적으로 실시하던 중요하고 실제적인 한미연합훈련이나 독자 군사훈련 등을 유예했거나 중단 또는 연기했다.

훈련 없는 군대는 이미 군대가 아니다.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그러기에 정부의 각급 훈련 회피 방침은 강군을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군을 허약체질로 바꾸려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국방부의 군복무기간(육군ˑ해병대 기준)을 21개월에서 18개월로 단축하는 정책도 그렇다. 전력 약화 또는 차질이 우려되는 부분이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은 2016년 연구보고서에서 ‘보병기준 숙련도’를 발휘할 수 있는 기간을 ’최소 16개월 이상 필요하다‘는 분석결과를 내놨었다.

군복무기간 단축 정책에 보내는 부정적 시그널이 아닐 수 없다.

군복무기간 단축 정책은 일단은 달콤하다. 그러나 그것은 ‘달콤한 독’이 될 수도 있다. 군 전력 약화를 키우는 독이다.

그래서 ‘안보문제를 포퓰리즘 정책으로 추진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경고음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이른바 ‘국방개혁 2.0’에는 현재 상비병력 61만8000명을 50만 명으로 감축하는 방안도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되면 한국의 군 병력은 50만 명에 복무기간은 18개월이다. 이에 반해 북한의 군 병력은 128만 명이다. 군 복무기간도 10년이다.

드러난 단순 비교만으로도 전력 격차를 가늠할 수 있다.

군 병력 감축을 조급하게 추진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방부는 또 내년부터 군부대내의 제설(除雪)ˑ제초(除草) 사역을 민간 인력으로 대체하겠다고 발표했다.

황당하고 어이없는 일이다.

적설기에 전투가 실제 상황으로 벌어졌을 때도 민간 인력이 제설작업이나 제초작업을 해줘야 군이 총 들고 전투에 나설 것인가.

폭설ˑ폭우ˑ태풍 피해를 입은 대민지원사업도 접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민간인도 제 집 앞의 눈이나 골목길 쌓인 눈은 스스로 치운다. 일반회사 사원들도 마찬가지다.

군부대에서 민간 인력이 눈을 치울 동안 군인들은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도 궁금하다.

제설작업 등도 따지고 보면 광의의 작전 훈련이다. 거기서 강인한 체력을 단련시킬 수 있고 인내심과 협동심을 다질 수 있다.

군부대 경내 사역 임무도 병역 임무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군 병력을 흐느적거리는 연체동물로 퇴화시키지 않으려면 코미디 같은 ‘군부대 청소 민간 대행 정책’은 당장 그만두어야 옳다.

다음은 ‘국방백서’에서의 ‘군주적(軍主敵) 개념 삭제’논란이다.

국방부가 ‘2018 국방백서’에서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는 문구 삭제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을 빚고 있다.

군대는 적을 전제로 한 조직이다. 적이 없다면 군대의 존재이유가 없다.

그런데 북한 정권과 북한군이 우리의 적이 아니라면 우리의 적은 누구인가. 어디를 향해 총구를 겨눌 것인가.

군의 정체성은 적을 제어하고 국토방위와 국민을 지키는데 있는 것이다. 적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물론 전쟁 중이라도 적과는 대화는 할 수 있다. 그것이 평화의 길로 가는 것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화나 평화 협력을 구실로 본연의 국방임무를 포기하거나 약화시키는 것은 이적행위이거나 자해(自害)나 다름없다.

‘비핵화가 전제되지 않는 평화 협정’은 장밋빛 환상이다. 허울 좋은 말장난일 뿐이다.

북한만 바라보며 북한 눈치만 보는 ‘발가벗은 국방ˑ안보 정책’은 그래서 위험하고 아슬아슬하다.

북은 비핵화 합의 이행에 한 발짝도 나서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제재해제와 종전선언만 노래하고 있다. 한국정부도 덩달아 여기에 장단을 맞추고 있다.

완전한 비핵화 담보와 실행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섣부른 종전선언은 시기상조다. 위험한 도박이다.

북의 의도는 뻔하다. 북은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통해 유엔군 사령부 해체, 주한미군 철수 등을 주장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한미동맹 약화나 무력화, 이를 통한 남한 내 국론분열과 남남갈등을 통한 적화통일의 수순을 밟을 것이다.

현재 진행되거나 추진 중인 문재인 정부의 국방ˑ안보 정책은 이러한 북의 의도에 말려들고 있다는 일각의 우려가 현실화 된다면 큰일이다.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 가’라는 가요 노랫말의 패러디를그냥 익살로만 넘겨버릴 수만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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