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태(90·서귀포시 강정동) 어르신은 누굴 원망할 생각은 없다며 모진 고문과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혀 살아온 지난 세월의 고통을 시대를 잘못 만난 탓으로 돌렸다. 조병태 어르신은 하루 빨리 불법군사재판에 대한 재심이 진행돼 한을 풀고 싶다고 말했다.(사진=김재훈 기자)

-늦었지만 어르신들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재심 결정이 나왔습니다. 당시 어떤 명분으로 어르신을 경찰이 잡아갔는지요?

올해 90살이다. 이제 기억도 깜빡깜빡한다. 당시 일들을 짧게 말하긴 어렵다. 48년이었다. 4·3으로 난리가 났던 당시 어느 날 마을 전선이 끊어졌다. 다른 인부들과 함께 그걸 보수하러 갔다. 고치고 내려오는데 지서에서 잡아갔다. 법환 지서로 갔다. 거기서부터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거기서부터 고문이 시작됐다.

-고통스런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해 죄송합니다.

이튿날 열 시 쯤 서귀포 경찰서로 가서 한 일주일 동안 계속 고문당했다. 한 1주일 동안 계속 당했다. 안 한 일도 했다 말해야 했다. 고문을 연구한 모양이지. 물도 먹였다가, 거꾸로 매달아 놓기도 했다가 별 일을 다 당했다. 그 땐 고문당하다 죽어도 하소연할 데가 어디 한 곳도 없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고문 뒤에도 힘든 시간을 겪으셨을 텐데요.

그 뒤에는 제주시에 있는 유치장으로 옮겨졌다. 재판인지 뭔지 이리저리 끌려 다녔다. 거기서 한 20일 정도 있었던 것 같다. 그 뒤에 배에 태워져 인천형무소로 옮겨졌다. 그때 21살 이하는 인천으로 갔다. 1년 형을 받고 그곳에서 10개월을 살았다. 그 이후엔 빨갱이라는 딱지가 붙은 채 지금껏 살아야 했다.

-다행히 이번에 재심 결정이 났는데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누굴 탓할 생각은 없다. 시대가 그랬다. 말도 못할 시대였다. 그런 시대에 태어나서 그런 일을 겪었다. 지금까지 살게 돼 감사하다. 우리들이 이젠 나이가 있다. 하루 빨리 죽기 전에 한을 풀고 싶다. 이 문제가 해결된 뒤에 죽어야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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