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오사카에서 45여년을 살고 있는 제주 출신 김길호라고 합니다. 

늦었지만 제주도지사 2기 당선을 축하드리며 앞으로도 제주도정을 잘 이끌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오늘 원희룡 지사님께 공개 편지를 드리는 것은 지난 8월 21일 '제주의 소리' 김봉현 기자가 쓴 기사 <"제발 돈 내고 먹읍시다." 부서장 '공짜 점심' 관행 논란>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이 기사를 읽는 순간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러한 관행이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을 수 없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지난 4월 제주특별자치도 행정시스템인 올래 내부의 소통게시판 '존단이'에 올라온 어느 공무원의 글이었습니다.

"김영란법이 만들어지고 아침마다 청렴 관련 교육자료가 뜨는데... 왜 각 국마다 과장님, 국장님 점심 식사비를 내주는 관행은 안 바뀌나요?"

"이게 김영란법에 저촉이 된다면 청렴 교육자료에 한번 띄어 주시지요. 윗분들 점심값 내주는 문화를 바꾸자고. '싫으면 사지 마세요'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것은 위에서부터 솔선수범하여 바꿔야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내용에 대해서 공짜밥이 싫다고 어떤 국.과장들은 스스로가 내고, 오히려 부하 직원들의 점심값을 내주는 사례도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난 해 인천시에서는 공무원들의 상급자 중식(점심)접대 순번 지정이 청탁금지법과 지방공무원법을 위반했다는 지적이 국회교통위원회에서 제기되었다고 합니다.

순번제로 돌아온 상사의 점심 접대 담당자는 그날 상사 분이 점심을 드실 것인지부터 파악하여 메뉴는 무엇으로 해야 하는지 전전긍긍 고민을 하면서 대처한다고 합니다.

또 이런 내용도 있었습니다. 한달에 몇번 하는 당번인지 몰라도 그게 무슨 큰일이냐고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공무원도 있고, 한편 최근에는 고길림 제주부시장이 부서장 밥사주기 관행을 없애라는 의견도 제기되었다고 합니다.

가끔 일본에서 고국의 뉴스를 보면 대통령이나 군 수뇌들이 군 부대를 방문하여 스스로 식기를 들고 줄을 서서 배식을 받고 장병들과 식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의 퍼포먼스에 지나지 않지만 흐뭇한 모습이었습니다. 지위 상하를 막론하고 똑 같이 배식을 받고 식사 중에 그런대로 격식 없는 대화도 나눌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럼 '공짜 점심' 먹기는 어떠할까요. 부서 상사들이 식당에 들어오면 부하 당번이 자리를 안내하고 준비된 식사를 들도록 권하고, 식사 마치면 부서장은 잘 먹었다고 자리를 뜰 것입니다.

저는 지금 회사에 다니면서 점심은 도시락을 전문으로 배달하는 업자가 갖고 온 것을 먹고 있습니다. 그 전에는 사내 식당이 있어서 아줌마가 언제나 점심 준비를 했었습니다.

또 그 전에는 밖에 나가서 일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고역이었습니다. 오늘 점심은 무엇을 먹을까 하고 메뉴를 생각하는 것이 매일 되풀이되는 한낮의 스트레스였습니다.

지금은 이 스트레스에서 해방이 되어서 얼마나 마음 편한지 모릅니다. 이렇게 자기 점심 메뉴에도 스트레스가 쌓이는데, 상사의 점심 메뉴까지 고심하고 마련해서 점심값까지 내야 하는 담당 부하 공무원의 스트레스는 말이 아닐 것입니다.

점심 시간까지 외부 손님의 방문으로 아니면 바쁜 업무 때문에 점심 챙길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부하 공무원이 상사를 위한 점심 준비를 했다면 당연하고 흐뭇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 속의 준비가 아니라 매일 계속되는 관례라고 하니까 놀랐습니다. 더욱 놀란 것은 이렇게 준비한 점심 식사비까지 부하가 지불해야 한다니 언어도단입니다.

도대체 어떠한 논리와 근거 속에 이러한 관행이 오늘까지 자행되고 있는지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저는 부끄러웠지만 이 사실을 일본인 동료에게 말하고 의견을 물었습니다.

"이미지나 분위기 속에서는 그런대로 이해 할 수 있으나 실지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는 어처구니없고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하고 그는 저에게 되물었습니다. 저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와리깡(나눠 물기: 각자 물기:割り勘)문화'가 일반적인 일본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기도 하지만 고국에서 군대까지 갔다 와서 성인이 다된 후, 일본에 온 저 역시 납득하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이 관행은 공무원의 접대문화에 쐐기를 박은 김영란법 운운 이전의 문제입니다. 인간으로서 사회생활을 하는데 지극히 보편적이고 도덕적인 사회 윤리에 어긋난 행위로서 용납 못할 처사입니다.

지금 한국에서 툭하면 나오는 지위의 상하 관계 속에 문제시 되고 있는 것이 갑질 논란입니다. 이 관행 역시 표면화 되지 않은 갑질의 하나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품앗이 관례라고 할지 모릅니다.  언젠가는 부하 공무원도 상사가 되면 받을 수 있는 예우이니까 적금 붓기처럼 생각하면 된다고 말입니다.

그럼 그 지위까지 오르지 못한 나약한 공무원은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월급도 상사보다 금액이 적은데 퇴직 때까지 상사에 대한 예의라고 미화 시켜서 마무리한다면 너무 가혹한 일입니다.

이 기회에 원희룡 도지사님은 점심을 어떻게 해결하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저만이 아니고 다른 분들도 조금은 알고 싶어 할 것입니다.

'제발 돈 내고 먹읍시다'의 고질적이며 부끄럽고 경악스러운 이 부조리 관행에 대해 제가 도지사님께 제안이 있었서 오늘 이 공개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간단합니다. 도지사님께서 "업무지시"라는 공문 한 장을 산하 각 부서에 보내면 해결될 문제입니다. 지위 상하를 막론하고 식사 주문은 물론 식사비까지 각자가 지불하라고 하고 위반시는 처벌한다고 하면 이 부조리는 없어 질 것입니다.

저에게 고국의 국내 사정을 너무 모른다고 나무랄런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니까 쓰고 있습니다.

'모르는 것이 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저는그 '약'을 제공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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