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주민주권이 실현되는 마을자치혁명을 꿈꾸며]

신용인/ 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올해 4월 중순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신용인 교수죠? 저는 도 주민자치위 협의회 김삼일 회장입니다. 이번에 우리가 주민자치제도를 개선하고자 TF팀을 꾸렸는데 교수님께서 위원으로 참여해주실 수 있나요?"

지난 12일 저녁 제주에 있는 어느 리조트에서 서울지역 마을활동가·공무원 등 200여 명이 참석한 워크숍이 열렸는데 필자는 그 자리에 초빙되어 '마을공화국의 꿈'이란 제목으로 강의를 했다. 강의를 마치고 소감을 들어보니 가장 감명 깊었던 부분으로 제주지역 주민자치위원들이 자기 손으로 '주민자치 제도개선 TF팀'(이하 'TF팀')을 꾸렸다는 점을 꼽았다.

어떻게 주민자치위원들이 스스로 그런 팀을 꾸릴 생각을 했는지 그저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필자가 알기로도 주민자치위원들이 자치제도 개선을 위해 자발적으로 TF팀을 꾸린 것은 전국 최초가 아닌가 싶다. 그 경위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제주지역에는 2개 행정시, 43개 읍·면·동이 있고, 읍·면·동마다 주민자치위원회가 구성되어 있다. 주민자치위원회는 시와 도 단위로 협의회를 두고 있다.

시 단위로는 제주시 소속 26개 주민자치위원회를 구성원으로 하는 제주시 주민자치위원회 협의회(이하 '제주시 협의회')와 서귀포시 소속 17개 주민자치위원회를 구성원으로 하는 서귀포 주민자치위원회 협의회(이하 '서귀포시 협의회')가 있고, 도 단위로는 43개 읍·면·동 주민자치위원회 모두를 구성원으로 하는 제주특별자치도 주민자치위원회 협의회(이하 '도 협의회')가 있다.

평소 제주지역 주민자치위원들 사이에서는 무늬만 자치인 현행 주민자치제도에 대해 여러 차례 문제 제기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제도개선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올해 2월 6일 서귀포시 협의회 정례회의가 열렸는데 그때도 약방의 감초처럼 주민자치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그러자 현봉식 동홍동 주민자치위원장이 우리가 막연하게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구체적인 제도개선안을 마련하자고 하며 이를 위한 TF팀을 꾸릴 것을 제안했다. 참석자 모두 현봉식 위원장의 제안에 공감했고 만장일치로 도 협의회에 TF팀 구성을 건의하기로 의결했다.

3월 26일 도 협의회 임원회의가 열려 서귀포시 협의회의 TF팀 구성 건의를 도 협의회 정례회의 안건으로 상정하기로 결정했고, 이어 4월 9일 열린 도 협의회 정례회의에서는 '주민자치 제도개선 TF팀' 구성을 결의하고, TF팀 위원으로는 제주시 지역 읍ㆍ면ㆍ동 주민자치위원장 5명, 서귀포시 지역 읍ㆍ면ㆍ동 주민자치위원장 5명, 그리고 외부 법률전문가 2명 모두 12명을 두기로 했다.

이에 제주시 지역 몫으로는 고영찬 한경면 위원장, 고창근 건입동 위원장, 김기성 용담1동 위원장(제주시 협의회 회장), 이상민 이도1동 위원장, 한재림 일도2동 위원장이 선정되었고, 서귀포시 지역 몫으로는 고방협 서홍동 위원장, 김삼일 중앙동 위원장(도 협의회 회장), 현봉식 동홍동 위원장, 현승태 예래동 위원장, 홍동표 대천동 위원장이 선정되었다.

외부 법률전문가로는 필자와 허용진 변호사를 섭외하기로 했고 섭외 작업은 김삼일 도 협의회 회장이 직접 맡기로 했다. 그래서 필자가 김삼일 회장의 전화를 받게 된 것이다.

4월 26일 TF팀 첫 회의가 열렸다. 논의 과정에서 허용진 변호사는 주민자치를 제대로 하려면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이하 '제주특별법')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 주장에 위원들 모두 공감하자 필자가 제주특별법 개정 관련 초안을 작성해 다음 회의 때 보고·논의하기로 했다.

TF팀 회의는 그 후 5월 10일, 6월 14일, 7월 9일 등 모두 4차례에 걸쳐 열렸고, 7월 9일 제4차 회의에서 주민자치 제도개선을 위한 제주특별법 개정을 제안하는 '주민자치 제도개선 보고서'(이하 '보고서')를 확정하고, 이를 도 협의회 정례회의에 보고하여 공식 추인을 얻기로 했다.

7월 26일 도 협의회 정례회의에서는 보고서를 만장일치 박수로 원안 그대로 의결했다. 이로써 보고서는 도 협의회의 공식 입장이 되었다. 한편, 도 협의회는 그날 이철준 연동 주민자치위원장을 TF팀 위원으로 추가 선정했다.

보고서는 제주특별법에 읍·면·동 주민의 자치권 규정을 둘 것을 제안하는 획기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보고서의 제안대로 제주특별법이 개정된다면 제주지역의 경우 읍·면·동마다 주민 손으로 마을헌법을 만들고 마을정부를 세울 수 있게 된다. 제주지역에서 전국 최초로 읍·면·동 마을공화국이 생기는 것이다. 보고서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① 읍·면·동 주민자치위원회 또는 일정 수 이상의 읍·면·동 주민이 주민자치조직에 관한 자치조례안을 만들어 도지사에게 주민투표를 청구한다(주민자치조직 : 마을정부, 자치조례 : 마을헌법)

② 도지사는 주민투표 청구가 법적인 결격사유가 없는 한 해당 읍·면·동 주민을 대상으로 자치조례안에 대한 주민투표를 실시한다.

③ 자치조례안이 주민투표에서 가결되면 도지사는 그 자치조례안을 도의회에 발의한다.

④ 도의회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발의된 자치조례안을 그대로 의결한다.

⑤ 자치조례안이 없는 읍·면·동의 주민자치는 도의회에서 통상의 절차에 따라 만든 조례에 따른다.

보고서는 그 밖에 주민자치조직(마을정부)의 법인격 및 자치권 근거, 읍·면·동 자치특례 확대 등을 제주특별법에 둘 것을 제안하고 있다. 또한, 기대효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현행 주민자치제도는 권한이 미약하다는 점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읍·면·동의 특성이나 차이를 반영하지 못한 채 붕어빵 찍듯이 일률적으로 시행되고 있다는 폐단이 있다. 예컨대, 제주 본토와 멀리 떨어져 있고 인구가 1,825명(2018. 5. 31. 기준)인 추자면과 제주 시내권이며 인구 53,472명(2018. 5. 31. 기준)인 노형동의 주민자치 여건은 매우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행 제도로는 그러한 다름을 반영할 수가 없다.

반면, T/F안('보고서'를 뜻한다)에 의하면 읍·면·동마다 저마다의 특성과 자치역량에 맞는 주민자치모델을 결정·실시할 수 있게 되어 차별적이고 다양한 형태의 주민자치를 꽃피울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한편, T/F안 대로 제주특별법이 개정된다고 하더라도 제주지역 43개 읍·면·동 모두가 동시에 풀뿌리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주민자치모델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T/F안은 읍·면·동 주민이 원하는 경우 스스로 합법적인 방법을 통해 주민자치모델을 만들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만약 읍·면·동 주민이 원하지 않는다면 별도의 자치조례안을 만들지 않고 현행 조례대로 주민자치를 할 수도 있다. 결국, T/F안 대로 제주특별법이 개정될 경우 제주지역 43개 읍·면·동마다 해당 주민이 맞춤형 주민자치모델을 결정·시행할 수 있게 되어 지역 특성에 맞는 발전이 이뤄질 수 있고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현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제주가 대한민국의 주민자치 선도지역으로 우뚝 서게 될 것이다."

이처럼 보고서는 읍·면·동 주민이 자치를 할 것인지 여부, 자치를 한다면 어떤 조직과 권한으로 할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국가뿐만 아니라 읍·면·동 차원에서도 주권재민(主權在民)이 구현되어야 함을 천명한 것이다.

TF팀은 8월 29일 도지사 집무실에서 원희룡 제주지사를 만났다. 보고서를 접한 원희룡 지사는 이렇게 말했다.

"일단 실무 검토가 필요하다. 실무 검토 후 가능하다면 추진 의지 있다. 실무부서와 긴밀한 협의 바란다."

이제 공은 실무부서로 넘어갔다. 실무부서는 보고서 검토 후 어떤 판단을 내릴까?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비효과라는 말이 있다. 초기에 시작된 아주 작은 변화가 나중에는 엄청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 말은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노턴 로렌즈가 1972년에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텍사스에 회오리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한 강연에서 유래한다.

주민자치위원들이 스스로 TF팀을 꾸리고 제도개선안을 마련한 것은 어쩌면 나비의 작은 날갯짓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작은 날갯짓이 대한민국에 주민주권을 실현하는 마을자치혁명의 커다란 태풍을 몰고 오지 않을까? 그 날이 어서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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