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이었다. 아이가 40도를 오르내리는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다. 불 덩이었다.

놀란 엄마가 몸이 펄펄 끓는 아이를 들쳐 업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숨넘어가는 아이를 보면서도 진료를 거부했다.

자신들이 거래하는 보험회사 환자가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아이는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경우도 있었다.

‘셋째 손가락과 넷째 손가락 절단 사고로 한 사내가 응급실에 실려 왔다.

응급상황인데도 의사는 환자의 보험가입 여부부터 확인했다. 환자가 “보험이 없다”고 했다.

그러자 의사는 “셋째 손가락 접합에 6만 달러가 들어간다고 했다. 그러면서 ”셋째 손가락 접합 수술을 받을 경우, 넷째 손가락 봉합은 1만2천 달러로 싸게 해 주겠다“고 말했다‘.

심각한 환자의 절단된 손가락 상태를 보면서 이를 ‘패키지 상품’으로 흥정하는 것이었다.

돈이 없는 환자는 1만 2천 달러짜리 넷째 손가락 봉합을 할 수밖에 없었다. 가운데 손가락은 쓰레기통에 버렸다‘.

미국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Sicko)'의 장면들이라 했다.

‘마이클 무어’감독이 2007년에 제작했던 영화다.

돈으로 사람의 목숨을 흥정하는 비인간적․비윤리적 미국의 ‘민영의료보험체제’를 고발한 영화였다.

미국 의료제도와 민간의료보험 회사의 횡포와 부조리를 폭로하고 열악하고 무책임한 국가의 의료체계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미국은 1인당 의료보험에 지출되는 의료비가 세계에서 가장 높다. 그러나 의료복지 수준은 선진국 중 최하위다.

민간의료보험 중심의 의료상업화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예다.

미국의 의료시스템은 ‘영리병원’이 주도한다. 의료보험 민영화가 만들어낸 괴물이다. 당연히 해당병원과 연결된 의료보험 회사의 리모컨에 조종될 수밖에 없다. ‘돈 먹기 게임’인 셈이다.

미국에서는 의료보험 회사와 관계가 있는 병원에서만 치료가 가능하다.

돈이 없고 해당 병원과 연결된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한국의 경우는 다르다. 건강보험 당연 지정제를 채택하고 있다.

모든 병원이 비영리병원이다. 의무적으로 국민건강보험과 계약을 맺어야 한다.

따라서 어느 병원도 건강보험환자를 거부 할 수 없다. 빈부격차나 신분차이에 관계없이 국민모두가 차별 없이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다큐멘터리 ‘식코’는 의료 민영화 문제, 특히 ‘영리병원’의 폐해가 거론될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최근 제주에서도 ‘영리병원’ 개설 문제로 시끄럽다.

중국 부동산 개발회사가 투자한 ‘국제녹지병원(이하 녹지병원)’이 논란의 핵이다.

2015년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녹지병원 사업계획서 검토 후 사전 승인을 했다.

제주도지사가 인허가 권을 가졌지만 이를 무시해 버렸다. 한국의 보건 의료 체계에 엄청난 후 폭풍으로 작용할 것임을 알면서도 ‘영리병원(녹지병원)’ 도입에 선제적 조치를 취한 것이었다.

이는 당연히 영리병원 개설과 관련한 일련의 책임이 정부에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지방정부는 들러리 일 뿐 이었다.

아무튼 녹지병원은 778억 원을 들여 건물을 지었다.

서귀포시 토평동 헬스 케어 타운 내 2만816평방미터 부지에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다.

성형외과, 피부과, 가정의학과 등 4개 진료과목을 개설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다수의 도민들과 시민사회 단체 등의 격렬한 반대 탓이다.

이와 관련, 민주노총 공공운수 노조 의료연대 본부가 제주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8월16일~17일)를 실시했다.

결과는 녹지병원 개설 반대가 61.6% 였다. 찬성은 24.6%.

그렇다면 왜 이렇게 반대 여론이 높은가.

영화 ‘식코’에서 보여줬듯이 ‘영리병원’의 횡포와 폐해에 대한 우려 때문이 아니겠는가.

영리병원은 말 그대로 ‘돈 벌이 병원’이다. 돈벌이에는 자비가 없다. 못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현행 국민건강보험으로는 진료를 받을 수 없다. 내국인 진료가 가능하더라도 환자가 높은 의료비 부담 능력이 있거나 해당 병원과 연결된 민간 의료보험에 가입해야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반대론자들은 이렇게 될 경우, 국민의 건강권이 민간 보험사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다는 논리다.

의료서비스 양극화로 현행 국민 건강보험 체계의 근간이 흔들릴 것이라는 주장이다.

‘영리병원’에 깊숙하게 숨어 있는 함정을 말하는 것이다.

찬성론자들이 내세우는 ‘의료 선진화’, ‘생산 유발효과’, ‘고용창출’, ‘환자들의 의료선택권 보장과 의료 서비스 확대’ 등은 허구라는 것이다.

의료 민영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추임새를 놓는 ‘꽹과리 장단’이라는 비판이다.

영리병원이 비영리병원보다 더 비효율적이며 의료의 질이나 의료서비스도 악화 될 것이라는 정부 보고서도 있었다.

이른바 ‘런던 팀’ 보고서다.

2005년 5월 당시 보건복지부가 한국 보건산업연구원에 용역을 의뢰해 작성했던 ‘영리병원 의료기관 도입 모형 개발 및 시뮬레이션을 통한 의료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 분석’이라는 긴 이름의 보고서다.

영국 의료 전문가 3명이 분석했던 내용이다.

여기에 따르면 1980년 이후 진행된 모두 149개의 관련 연구 가운데 절대 다수인 88%의 보고서가 ‘비영리병원이 영리병원보다 의료의 질이 우수하거나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이를 보면서 지금 제주에서 진행되는 ‘녹지병원 숙의 프로그램’의 결과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녹지국제병원 숙의 형 공론 조사위원회(위원장 허용진)가 지난 9일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10월 3일까지 숙의를 거쳐 ’녹지병원 개설 허가 여부‘에 대한 권고안을 마련하는 것이어서 그렇다.

어떤 결과가 도출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다만 상당수 도민들은 현행 국민건강의료 보험으로 유지되는 ‘건강권’이 훼손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사람의 생명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다. 건강권은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유치하는 최소한의 기본권이다.

따라서 ‘건강권 보장‘은 국가의 책무다.

한국의 국민의료보험 체제는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선진적 의료보장 제도다. 함부로 유린해서는 아니 된다.

물론 지속 가능한 건강보험 재정의 확보를 비롯해 공공의료의 보장성을 강화하고 질 높은 의료 시스템을 위한 개혁은 필요하다.

그러나 ‘영리병원’은 이의 대안이 될 수 없다. 그 함정에 빠져서는 곤란하다.

‘국내 1호 외국인 영리병원’으로 기록될 ‘녹지병원 숙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숙의 형 공론조사 위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인 것이다.

#관련태그

#N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