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민예총이 ‘개발만능시대, 예술을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주제로 20일 오후 2시 제주문학의 집에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사진=김재훈 기자)

제주민예총이 ‘개발만능시대, 예술을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주제로 20일 오후 2시 제주문학의 집에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강정효 제주민예총 이사장은 “환경문제로 얘기를 나누다 정책 토론회를 열자, 초심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으려 창립선언문을 살펴봤다.”며 “초심을 되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점검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토론회 좌장을 맡은 김동현 제주민예총 정책위원장은 “‘뭐라도 하자’는 생각으로 이번 자리가 마련됐다. 제주민예총이 자체적으로 현안 문제를 얘기하는 데 소홀히 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의견을 나누며 변화가 필요한 우리 스스로에게 채찍 같은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날 첫 발제에서 김동현 정책위원장은 비자림로를 지키기 위 뭐라도 하려는 사람들이 비자림로에서 진행한 행동들을 제시하며 그것이 곧 미학적인 예술적 실천이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김동현 정책위원장은 ‘삶의 정치와 예술의 역할’을 주제로한 발제에서 제주문학에 대해 얘기하며 외부의 ‘발견’에 대해 저항한 것이 제주문학 4·3예술을 통해 나타났다며 4·3의 역사적 진실을 추구하는 문학적, 예술적 대응을 해온 제주의 예술가들이 그보다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승만 저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된 ‘제주 재건’의 신화와 개발로 인한 폭력에 대해 본격적으로 재점검해야 한다는 것.

개발로 인한 국가권력의 폭력이 4·3과 맞닿아 있다고 설명한 김 정책위원장은 1964년 제주도종합개발계획 수립 등 중앙으로부터 하향식으로 진행된 제주 개발을 근대적 기획이라고 규정했다. 이로 인해 문화 담론이 관광이라는 키워드와 엮이며, 개발이 곧 근대이고, 근대가 곧 문화며 관광으로 등치돼 왔다고 분석했다. 문화 역시 이와 같은 맥락 안에서 이해되어 왔다는 것이다.

문화(文化), 일반적으로 한 사회의 주요한 행동 양식이나 상징 체계를 말한다. 김 정책위원장에 따르면 제주도는 박정희 정권 이래 본격적으로 중앙 중도의 개발에 시달리며 지역 고유의 정체성을 지닌 문화를 잃버렸다.

김 정책위원장은 제주문화예술 행정 역시 그러한 관점을 유지해오고 있다고 지적하며 ‘문화 다양성’으로 포장된 정책들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폭력에 대해 외면하고 게으르게 인식하도록 방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 정책위원장은 현재 제주 지역의 문화가 ‘모던한 것’에 초점을 두고 왔다고 개탄했다. 이는 ‘변방’ 제주에 내면화된 콤플렉스에 기인한다며 그 극복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근대라는 이름으로 은폐된 폭력의 극복을 위해 제주의 예술가들과 제주민예총이 “순수한 미학이 아니라 진실의 정치학을 향해 달려가는 날카로운 투창”의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하며 “그것이 제주 문화예술이 지향해야 할 하나의 가능성”이라고 전망했다.

발제 중인 강정 평화활동가 엄문희 씨.(사진=김재훈 기자)

이어 강정평화 활동가 엄문희 씨가 ‘강정 10년, 예술은 무엇이었는가’에 대해 발표했다. 강정의 투쟁이 이유에 대해 “불행히도 미래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 엄문희 씨는 국가 안보를 뛰어 넘는 아젠다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탄식했다.

그는 강정에서 가장 많이 불리는 고유명사가 ‘구럼비’라면서 강정에서 구럼비의 서사가 갖는 힘에 대해 얘기했다. 강정 해안에 넓게 펼쳐져 있던 구럼비바위 지형은 강정해군기지 반대 운동이 전개된 투쟁의 터전이자, 사수의 대상이었다.

구럼비는 국가 폭력 및 개발로 인해 ‘사라진 것들’의 상징이 되어가고 있다. 엄문희 씨는 이에 대해 ‘박탈을 재경험 하지 않으려는 장치로서 박탈 경험을 전승한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았다. 구럼비 서사가 예술적 도구들을 거치며 폭력에 대해 얘기하는 또 하나의 신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셈이다.

엄문희 씨는 해군기지 공사가 진행 중인 해군기지 공사현장 펜스에 문을 그린 사진을 강정마을에서 진행된 대표적인 예술 작품 중 하나로 제시했다. 문정현 신부가 서각을 하는 모습, 해군기지 앞에서 춤을 추는 모습 등을 영상을 통해 투쟁 현장에서의 예술의 의미를 곱씹었다.

발제 중인 한진오 극작가(사진=김재훈 기자)

3번째 발제자로 나선 한진오 극작가도 김동현 정책위원장과 같이 제주예술의 현주소를 통시적 관점에서 살폈다. 한진오 작가는 탐라국(제주도)를 대한제국의 식민지로 규정한 대한제국 수립 반조문을 거론하며 그 같은 역사적 인식이 현재에도 남아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한제국 수립 반조문에는 제주를 식민지로 규정하는 내용이 다음처럼 명시돼 있다.

“대한제국 수립 반조문에 우리 태조가 왕위에 오른 초기에 국토 밖으로 영토를 더욱 넓혀 북쪽으로는 말갈의 지경까지 이르러, 상아, 가죽, 비단을 얻게 되었고, 남쪽으로는 탐라국을 차지하여 귤, 유자, 해산물을 공납으로 받게 되었다 사 천리 강토에 하나의 통일된 왕업을 세웠으니”

그는 박정희 정권에서 미신타파운동으로 제주 신화와 토속신앙 등 제주의 문화가 전멸하다시피 하게 된 점을 거론하며 그로 인한 영을이 아직 제주에서 진행되는 굿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물영아리오름습지 리조트와 테마파크 조감도를 제시하며, 신화를 테마로 작업한다는 리조트와 테마파크가 정작 남원의 신화와 전설 남원의 역사는 하나도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하와이에 방문했던 기억에 대해 얘기했다. 그는 하와이에 관광지마다 노숙자 촌이 있었다면서 제주 특별법에 반대하며 제주를 제2의 하와이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며 산화한 양용찬 열사를 떠올렸다.

한 작가는 지역 예술가들에 대해 “고상한 예술의 프레임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현장에 사람이 없다. 답사는 다니지만 현장에서 싸우는 사람은 없다. 예술인들이 4·3예술은 열심히 해왔지만 언제부턴가 사회 현장을 떠났다”고 개탄했다.

그는 “양윤모 영화평론가로부터 ‘과거에 진보적인 것은 진보적인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현장을 지켜보지 않고 상상하며 생생한 체험없이 작업이 이뤄지지 않는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이어 그는 “헝클어진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 미래를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싸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공유와 연대다. 고고한 작가주의에 빠지지 말고 현장을 찾는 것도 예술행동이라 인식하고 그러한 실천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발제 중인 고은영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사진=김재훈 기자)

끝으로 고은영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자본주의에 살해당한 유령들의 연대자:정치인과 문화예술인’을 주제로 발표를 이어갔다.

고은영 위원장은 자본주의에 의해 사람들이 지워지고 ‘유령이 되어 가고 있는’ 전지구적 문제들이 제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며, 신화역사월드와 버자야 그룹 등의 외국계 자본에 휘둘리고 있는 제주의 현상황을 우려했다.

고은영 위원장은 제주에 지역성을 훼손하는 ‘세계 표준’에 따른 방식들이 지배하고 있는 데 대한 우려를 피력했다. 규제 완화와 그 틈새를 지역 정치인과 행정이 넓히고, 지역 연구자와 교육자, 혁신가 들이 자본에 포위당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드러냈다.

또 고 위원장은 JDC가 ‘지속가능한 개발’로 포장하며 저항자들을 유순한 도민으로 길들여 가고 있다는 문제를 지적하며, 세계7대자연경관·제주평화포럼·신화역사공원· 국제관함식·가짜 다문화주의 등의 ‘가짜 트로피’들로 제주의 실제 상황이 가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고은영 위원장은 난개발에 휘둘리는 제주도민들이 지역정체성 회복의 기회를 마련하기 위한 방안으로 “예술을 잘 모르지만 관계를 구원하는 예술이 필요하다”며, “우리 자체를 재발견 할 때가 되지 않았나, 그 답을 우리는 사실 알고 있다. 예술이 그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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