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신용인/ 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9월 11일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는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자치분권종합계획’(이하 ‘종합계획’이라 한다)을 확정·발표했다.

종합계획은 문재인 정부의 자치분권 의지를 담아 주민주권 구현, 중앙권한의 획기적 지방 이양 등 6대 전략과 33개 추진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종합계획은 특히 주민주권을 강조했는데, 이에 대해 정순관 자치분권위원장은 “자치분권의 최종 지향점이 주민에게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담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중 필자가 주목한 것은 주민주권 구현을 위한 추진방안 중 하나로 ‘읍면동장 주민추천제 도입’을 명시한 부분이다. 읍면동장 주민추천제란 주민이 투표를 통해 추천한 후보를 자치단체장이 읍면동장으로 임명하는 제도를 말한다.

물론 제주의 경우는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종합계획은 ‘제주․세종형 자치분권 모델 구현’ 편에서 “마을․읍면동 자치 등 풀뿌리 민주주의 강화, 직접민주주의 활성화로 ‘주민 중심의 분권모델’ 완성”을 천명했다. 읍면동장 주민추천제를 훌쩍 뛰어넘어 ‘읍면동자치’까지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읍면동자치를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제주특별법을 개정해야 하는 등 넘어야 할 산도 많고 시간도 상당히 걸린다. 반면, 읍면동장 주민추천제는 법령이나 조례 개정 없이 도지사가 결단만 내리면 당장이라도 도입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자치단체에서 읍면동장 주민추천제를 시행한 사례가 여럿 있다. 광주 광산구는 지난 2014년 8월 수완동장을 시작으로 송정1동장·도산동장·첨단1동장·우산동장 등을 주민추천제로 선출했다. 아쉬운 점은 공무원에게만 후보 자격을 부여했다는 것이다.

세종특별자치시는 올해 조치원읍에서 ‘읍면동장 시민추천제’를 시범적으로 도입했다. 이번에는 공무원을 대상으로 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민간인에게도 개방할 방침이라고 한다. 서울 금천구에서는 2015년 공모 형식이지만 민간인을 동장에 임명한 바 있다. 독산4동 황석연 전 동장이 그 주인공이다.

제주에서는 2017년 11월경 일도2동 주민자치위원회 등이 제주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일도2동장 주민선출제 시범도입을 주장했다. 하지만 일회성 행사로 그치고 말아 아쉬움을 낳았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도 읍면동장 직선제가 시행된 적이 있었다. 1955년 동장 선거, 1956년 읍면장 선거가 그것이다. 해방 후 아직 국가의 기틀이 제대로 세워지지 못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민주주의와 풀뿌리자치를 구현하기 위해 주민 손으로 읍면동장을 뽑은 것이다.

그러나 읍면동장 직선제는 불과 2년 만에 막을 내렸다. 1958년 이승만 대통령이 독재체제를 강화하면서 임명제로 변경했기 때문이다. 이제 막 피려고 한 읍면동자치의 싹이 잘려나간 것이다.

4·19 혁명 후 민주화의 열망에 따라 읍면동장 직선제는 부활되었으나 제대로 시행도 하기 전에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났고,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은 다시 임명제로 바꿔버렸다. 이처럼 현행 읍면동장 임명제는 독재의 산물임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 후 1987년 6·10 민주항쟁, 2017년 촛불시민혁명이라는 민주화의 큰 물결이 있었다. 그럼에도 독재의 산물인 읍면동장 임명제는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

마을 주민의 손으로 마을의 수장도 선출하지 못하면서 주민주권과 읍면동자치를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까?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읍면동 주민의 손으로 읍면동장을 선출해야 할 당위는 너무나 분명하다.

이에 특별자치도인 제주에서 주민주권과 읍면동자치 구현을 위한 첫걸음으로 읍면동장 주민추천제 도입을 제안한다. 읍면동장 주민추천제가 성공적으로 시행된다면 본격적인 읍면동자치로 나아가는데 중요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읍면동장 주민추천제의 방식은 다음과 같다.

“읍면동 유권자 주민 중 무작위 추첨으로 선발된 약 500~1,000명의 주민추천인단을 구성한다. 읍면동장 후보 자격은 공직선거법상 지방의회의원 및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피선거권이 있는 해당 읍면동 주민이다. 주민추천인단은 읍면동장 후보들 중 1위와 2위 후보를 선출하여 도지사에게 추천한다. 도지사는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는 한 1위 후보를 읍면동장으로 임명한다.”

위 방식은 작년 8월 11일 청와대가 발표한 ‘사회혁신 첫 프로젝트, 혁신읍면동 추진계획’의 읍면동장 주민추천제 예시를 참고한 것이다. 당시 청와대는 “주민 천여 명을 주민추천인단으로 구성, 주민투표를 통해 1, 2위 후보 선출, 지자체 인사위원회에 결과 제출”이라고 예시한 바 있다.

위 방식으로 읍면동장 주민추천제가 도입된다면 제주에서는 사실상 읍면동 주민이 자기 손으로 읍면동장을 선출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제주는 주민주권과 읍면동자치를 실현하는 첫걸음을 떼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대한민국 3,500개 읍면동 전 지역에서 읍면동자치와 주민주권을 구현하는데 제주가 마중물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읍면동장 주민추천제 도입에 대한 도민사회의 활발한 논의를 기대한다.

#관련태그

#N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