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인간의 욕심 가운데, 돈이 1위일까 아니면 장수가 1위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1위와 2위 차이가 무색할 만큼 막상막하일 것이다. 돈을 많이 벌기는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점점 더 개인 노력만으로 되지도 않는 세상이다. 돈 벌기가 쉽지 않은 이유가 한 둘이 아니지만, 그래도 온통 세상은 어떻게 하면 돈 벌이를 잘 하게 할 수 있을 것인가에 집중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일자리 위원장을 맡아 선두 지휘할 정도로
돈 벌이와 관련 제주는 그다지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지 않다. 내노라 하는 대기업 하나도 없는 데다, 관광객이 1,500만이 넘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70만도 채 안 되는 도내 인구수의 시장으로는 돈 벌기가 쉽지 않을 터이다. 그런데도 진난 몇 년간 매달 평균 1,000명 내외의 이주민이 폭발적으로 제주를 향했다. 물론 제주가 특별히 남다른 기회의 땅이어서가 아니다. 그건 타 지역에 비해 풍광이 좋은 자연환경과 상대적으로 저렴한 땅 값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주 섬이 주는 환상이 겹쳐서 일어난 일시적 열풍이었다.
자연 이외에 제주가 갖는 경쟁력은 무엇일까? 10월 2일자 <조선일보>에 그 하나의 답이 언급되었다. 즉, “100세 이상 장수인(10만명 당 100세 이상)이 많은 시도는 제주가 1위”라는 것이다. 시도별 100세 이상 장수 노인 수는 경기도가 892명으로 가장 많지만, 제주도는 100세 이상 노인 수가 105명이지만 인구 10만명 당 비율로는 16.9로 가장 높다. 그렇다면 제주가 앞으로도 계속 장수의 섬으로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향후에도 계속하여 ‘세계가 제주로’ 향하도록 하는 비법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장수의 섬 제주가 앞으로도 지속가능하도록 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마냥 ‘제주는 장수의 섬’이라는 통계 숫자에만 매달려서는 미래가 없다. 언제 통계치가 바뀔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여기서는 2가지만 좀 더 생각해 보기로 하자,
첫째는, 장수에는 개인적으로는 유전자의 영향이 클 수도 있지만, 동시에 환경적 요인도 만만치 않다고 볼 것이다. 얼핏 생각해 보아도 먹고 잠자는 것은 물론이고 스스로 건강관리를 해 나갈 수 있도록 지근 거리에 다양한 산책로 등 운동시설이 갖추어져 있는 게 중요할 것이다. 또한 가능한 한 스트레스를 덜 받도록 살아가는 삶의 방식과 문화라든가 지근거리 지인들과 친밀성을 확보해 나가는 다양한 채널과 관계망의 확보, 그리고 현대화된 병원 치료를 쉽게 받을 수 있는 접근성 등의 요인들이 건강장수에 영향을 미칠 터이다. 이 가운데 필자는 1일 생활권의 공동체적 괸당문화가 70만 제주도민들에게 노후의 심리적-인간관계적 안정을 주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점에 주목을 하고자 한다.
제주는 전통적으로 그리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상당한 수준으로 친목의 공동체 사회를 이루고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다양한 연줄의 인간관계가 70만을 얽히고설키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이 부재하고 땅 부자가 없는 만큼이나 빈부 차이도 적어 70만이 고만고만하게 상대적 박탈감이 없이 더불어 살아가는 게 가능하다. 돈 벌이가 조금 안 된다고 해도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그런가 하면 오름이 지천으로 널려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어디서든 트래킹이 가능하다. 경제적 여유가 조금만 있으면 타 지방에서는 한 번 나서기가 쉽지 않은 골프도 제주에서는 쉽다. 오름은 물론이고 각종 올레길, 바당길 걷기가 여러 친목 단체에서 하루 멀다하고 열린다. 영양 먹거리인 싱싱한 채소는 온화한 날씨 덕분에 사시사철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집에서 밥해 먹기가 싫으면 가까운 동네 지인 만나 세상사 나누면서 외식을 하는 것도 일상사가 되었다. 막걸리 한 잔에 온 세상을 한바탕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담론을 즐기는 게 제주도민의 하루 일과이다.
이게 다 제주가 공동체적 친목 사회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제주를 찾아온 이주민들에게도 제주의 친목 사회적 흐름에 얼마나 빨리 적응을 잘 하는지가 행복의 열쇠이며 장수로 가는 지름길이 될 터이다. 처음에는 배타적이지만 금방 ‘우리가 남이가’가 통하는 게 제주사회의 온정성이자 포용력이다. 다만 최근 딱히 이주민 열풍 때문만은 아니지만 제주의 땅 값이 치솟아 제주에서도 빈부의 차이를 눈에 띠도록 드러내 보이고 있다. 누가 어디에 얼마나 땅이 있고 또 그 땅이 얼마나 올랐는지를 쉽게 일 수 있는 제주의 친목사회에서 빈부 차이의 등장은 항차 제주사회에 내재하여 있었던 ‘상대적 평등화’의 심리적 안정을 크게 훼손시켜 나갈 전망이다.
다른 하나는, ‘준비되지 않는 장수는 불행’일 수 있다는 데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른바 노후준비이다, 지금까지 노후준비는 개인의 몫으로 치부해 왔지만, 이제는 사회적 몫으로 바뀔 때가 되었다. 꼭 정부에게만 넘길 사안이 아니라는 얘기이다, 제주도정을 넘어서서 제주도 친목사회의 내적 활력이 노후준비에도 서로 도움을 주고받도록 다양한 장치를 하나씩 마련해 나갈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제주도 내 다양한 모임이 경조사를 공지하고 거기에 상부상조로 가 보는 걸 제일의 규범으로 삼고 있다.
문제는 딱 거기까지이다, 여전히 판막이이다. 회비 낸 회원들 간의 상부상조에 한정되어 있다. 각종 모임의 울타리를 넘어서서 비회원들에 대해서 가끔씩은 십시일반으로 ‘작지만 큰’ 도움이나 기부를 하는 건 아직 많지 않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제주 친목사회가 기존의 울타리 치기의 한계를 넘어서서 통 크게 틀과 운영을 바꾸어 나갈 때가 되었다. 앞으로 크고 작은 복지사업 모임이 많이 생겨 각종 친목회들이 서로 손잡고 매칭으로 세상을 돌아보기 시작하면, 승수효과가 지역사회에 넘쳐 장수를 찾는 사람들이 제주로 열 지어 찾아 들어오리라 본다. 평화의 섬 제주가 ‘나와 작은 우리’만이 아닌 ‘큰 우리의 공동체’가 되고, 그 결과는 지속가능한 장수의 섬으로 되리라는 전망이다. ‘오래 살고 싶으면 제주로’가 자연 풍광에 이은 두 번째 제주의 매력이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