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3일은 단군기원(檀君紀元)4351년(서기2018년) 개천절이었다.

기원전 2333년, 나라의 시조 단군(檀君)이 최초의 민족 국가인 단군조선을 건국했다. 개천절은 이를 기리고 기념하는 날이다.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이 건국이념이다.

단군의 건국은 민족사의 출발점이다. 한민족의 정체성과 민족적 자긍심이 여기에 녹아 흐르고 있다.

‘우리가 물이라면 새암(샘)이 있고

우리가 나무라면 뿌리가 있다‘.

정인보 작사․김성태 작곡의 ‘개천절 노래’ 앞 소절이다.

민족전통의 구심점으로 인식돼온 ‘개천절’이 ‘한민족의 원천(源泉)이며 한나라의 뿌리’임을 집약한 노랫말이다.

‘개천절’은 단군을 우리시조로, 단군조선을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로 보는 보편화 된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1919년 상해임시정부에서도 음력 10월 3일 개천절을 국경일로 제정했고 광복 후 1948년 대한민국 정부에로 이어졌다.

1948년 9월 25일, ‘대한민국 연호에 관한 법률’에서 단군기원 즉 ‘단기(檀紀)’를 국가공식 연호로 법제화 했다.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따라 양력 10월 3일을 ‘개천절’ 국경일로 정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북한에서도 개천절을 기념일로 정해 행사를 치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러기에 ‘개천절’은 국가를 세운 ‘건국일’로서의 역사적 전통성과 법적 정통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민족적 건국 절’인 것이다. 이는 역사의 시공(時空)을 관통해온 민족사의 상징이다.

그런데도 나라를 세운 ‘건국 일’이 진영논리에 빠져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진보와 보수간 ‘진흙탕 싸움‘ 때문이다.

진보진영은 1919년 4월 11일 ‘상해임시정부 수립 일’이 ‘대한민국 건국일’이라는 주장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같은 시각이다.

문대통령은 2017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2년 후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이고 내년(2018년) 8월 15일은 정부수립 70주년이기도 하다”고 했었다.

이는 ‘대한민국이 건국된 해는 1919년이고 1948년은 정부가 수립된 해’라는 입장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정치권력이 역사의 영역에 들어와 역사를 재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것은 반역사적이다. 오만이요 독선이다. 전체주의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국가 최고 권력이 역사를 주무를 수 있는가.

‘1919년 건국’을 말하는 대통령의 인식은 결국 국론분열의 신호탄이었다. 대통령 발언이후 진보와 보수 간 대립이 격화되고 있어서다.

대통령 발언이 ‘갈등과 분열’의 씨앗으로 자라고 있음이다.

국조(國祖), 단군할아버지께서 이들의 악다구니를 어떻게 보실지, 엉뚱하고 발칙한 상상을 지울 수가 없다.

일반론에 근거한다면 국가의 구성 요소는 ‘영토․국민․주권’이다.

이를 토대로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외교력을 갖추고 실효적 통제력을 행사 할 때라야 국가가 성립될 수 있다’는 이론이다.

그렇다면 ‘1919년 상해임시정부’는 이러한 국가의 요건을 갖추었었는가.

냉정하게 말하면 애석하게도, 그리고 불행하게도 그러질 못했었다. 영토도 없었고 주권적, 실효적 지배권도 갖추지 못했었다.

‘1919년 상해 임시정부’를 진정한 의미의 ‘대한민국 건국 정부’로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의 나라에서 내 나라를 세웠다’는 말 자체가 성립 되지 않는다.

그리고 1919년에 나라를 건국했다면 1919년 이후의 독립운동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논리에 맞지 않는다.

이미 나라를 건국했는데 독립운동을 한다는 것은 모순이어서 그렇다.. 독립운동 완성이 건국의 토대이자 발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1919년 상해 임시정부는 독립운동의 구심점으로서 향후 실질적 건국을 준비하는 운동 주체이며 과도기적 결사체로 해석 하는 것이 온당한 일이다.

‘임시정부’는 용어자체가 ‘정식’이 아닌 ‘임시’적이다. 건축물에 비유하자면 이른바 ‘가건물’인 셈이다.

1919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면 ‘임시정부’라 부를 이유가 없다. ‘건국정부’라야 맞는 말이다.

엄밀하게 따지자면 ‘1919년 상해 임시정부’의 정신을 이어받아 ‘1948년 대한민국 건국정부를 탄생시켰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과 정신을 이어받은 것과 대한민국 건국은 별개의 문제다.

따라서 대통령 말 한마디에 대한민국 건국이 왜곡되어서는 곤란하다. 대한민국 건국이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재단되거나 해석될 수가 없는 것이다.

신중하고 무겁고 엄중해야 하는 것이다. 역사의 해석은 역사에 맡겨야 한다.

문대통령은 스스로도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실상 1948년부터 시작된 대한민국 건국 초대 대통령 연대기를 이어받았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1919년 건국을 고집하는 것은 자가당착(自家撞着)이며 자기 모순이다.

1998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도 1948년을 기년(紀年)으로 삼아 ‘대한민국 50년(제2건국)’이라고 했었다. 1948년을 대한민국 건국시점으로 본 것이다.

그래서 이를 모를리 없는 문대통령의 ‘1919년 건국 론’이 어디에서 연유된 것인지 아리송하기만 하다. 저의(底意)가 무엇인지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1919년 이전에도 나라가 있었다. 고조선(단군조선)부터 현재 대한민국까지 수많은 나라 이름이 명멸했다.

거슬러 올라 현재 대한민국 정부 이전이 상해 임시정부라면 그 이전에 ‘대한제국’이 있었다. 또 그전에는 ‘조선왕조’도 있었다.

고려․신라․백제․고구려․부여․발해 등등을 거슬러 오르면 단군조선까지 이를 수 있는 것이다.

‘1919년 상해임시정부’를 ‘대한민국 건국 정부’라고 외골수 고집을 부리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국가의 3대요소라는 ‘국민과 영토와 주권’을 두루 갖춘 현대국가다.

1948년 최초의 민주적 선거로 초대 국회가 구성됐다. 여기서 제헌헌법을 제정하여 탄생한 것이다.

UN도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로 인정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대통령이 앞장서서 ‘대한민국 건국일의 혼란’을 야기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온당한 일도 아니다.

그래서 내년(2019년)이 걱정이다. 대통령의 고집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으로 둔갑시켜 국론을 분열시킨다면 그렇다.

‘통합의 대한민국’이 ‘분열과 갈등의 대한민국’으로 주저앉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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